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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me Jul 08. 2023

아등바등 첫 토플 공부 1

결심부터 책 정리하는 날까지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일찍 한국에 들어와서 붕 떠버린 5월에 토플 공부를 하기로 했다. 호주에서 귀라도 조금 트고 왔으니 이때 영어 점수를 따놓는 게 딱이겠다 싶었다. 살다 보니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짧고 굵은 한 줄 또는 점수에 대한 필요성도 느꼈고, 토플 점수 때문에 기회들을 허망하게 떠나보내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도 전보다 강해졌다. 앞으로 영어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낼 수 있는 시간도 없어 보이기도 했고. 이런 모종의 이유들로 토플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고, 의지가 박약한 나이기에 종로 해커스 현장강의를 등록하고 스터디도 신청했다. 


원래 시험은 짧고 굵게 끝내는 게 좋기도 하고 비용의 부담도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었다. 목표는 100점. 대학에 입학했을 때 딱 한 번 기관 토플을 본 적이 있었다. 모르는 단어만 빽빽하던 긴 문장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정신이 혼미해지고, 스피킹에서는 얼어붙어 문장도 아닌 단어 몇 개를 생각나는 대로 뱉어내서 결국 기초영어부터 수강해야 했던 사람의 첫 토플 목표치 고는 꽤 높은 점수였다. 그렇지만 목표로 하는 대학원에서 90점 후반대의 점수를 요구했기 때문에 100점을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토플 학원 첫날, 노량진의 공무원 학원처럼 거대한 교실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아있을 줄 알았는데 학기 중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교실도 작고 그렇게 빽빽하지도 않았다. 1교시였던 스피킹 선생님이 토플이라는 시험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해 주셨다. '내가 앞으로 한 달 동안 팔 놈이 이렇게 생긴 놈이구나.' 토플이라는 '시험'에 통달한 선생님들의 팁은 토플은 영어를 정말 잘하는 사람들만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 시험이면 뭐든 요령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10시부터 1시 30분까지 3시간 30분이나 되는 연강이었지만 과목 당 수업시간은 45분 정도라서 금방금방 지나갔다. 수업이 끝나면 본격적인 단련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5층으로 올라가서 스터디를 진행했다. 모두 스터디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 스터디에서 무엇을 하고 규칙을 어떻게 할지 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다들 열의가 있어서 친목 모임으로 전락하거나 중간에 터지지는 않았다. 스터디에서는 주로 초록이 단어와 리딩 부교재 단어 시험을 보고, 리스닝 음원을 같이 듣고 문제를 푼 후 스크립트에서 함께 문제로 출제될만한 포인트나 정답 신호 및 근거를 찾아서 이야기했다. 결석하면 얼마, 숙제 안 하면 얼마 이렇게 벌금 조건을 까다롭게 관리하지도 않았고, 각기 다른 점수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노력의 양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이 스터디는 온전히 스터디원의 의지를 보조해 주는 역할을 했고, '첫 스터디 때 100점이 목표라고 말했는데 100점에 걸맞은 노력을 해야지.'라는 생각은 지속적인 노력의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하루에 다섯 시간 동안 학원 조교로 일하면서 토플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 대학생 스터디원, 갑자기 유학을 준비하면서 토플 공부를 시작한 고등학생 스터디원, 경기도 안양에서 종로까지 매일 학원과 집을 오가고 주말 내내 알바를 하는 대학생 스터디원을 보며 오로지 토플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는 나의 상황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학원에 오고 토플 공부를 하는데 토플 하나만 하는 내가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공부를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초록이 단어책을 다 외웠을 때, 살면서 처음으로 단어책 하나를 다 외워본 게 신기했다. 스터디가 아니었으면 내 초록이 단어책은 Day 10 전까지만 너덜너덜해졌을 거다. 


내가 고등학생 때 누군가 영어는 계단식으로 실력이 향상된다고, 일정 노력이 쌓인 후에야 실력이 확 는 게 느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토플 공부를 하며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 말이 다시 생각났다. 처음 일주일은 고통 그 자체였다. 수식어 끊어 읽는 연습부터 했는데 내 머리는 모르는 단어들이 세네 줄씩 나열된 낯선 문장들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한 문장 내의 여러 구와 절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내용도 머릿속에서 뒤섞이기 일쑤였다. 리스닝도 음원에서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들리긴 하지만 한 귀로 들어왔다 한 귀로 빠져나가서 노트하는 것마저 쩔쩔맸다. 단어, 리딩, 리스닝에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쓰다 보니 스피킹과 라이팅은 복습을 거의 하지 못한 채 수업을 근근이 따라가는 정도였다. 


2주쯤 지났을 때였나, 리딩 과제가 좀 수월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외웠던 단어들이 지문에서 보이기 시작했고 리스닝도 강조하는 신호들에 집중하며 음원에서 중요한 내용들을 조금씩 걸러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30초 내에 문제와 선지들을 이해하고 답을 골라내기는 버거웠지만. 라이팅도 통합형은 템플릿을 숙지하니 지문과 음원을 적절히 조합해서 시간 내에 분량을 맞춰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조금씩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확실히 한 달 반이라 그런지 매일매일이 굵직하기만 해도 빠르게 종강일에 가까워졌다. 한 달 동안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토플 학원에 다니고 숙제를 하느라 사람 만날 틈도 없었고, 학원에는 퀭한 맨얼굴에 추레한 차림으로 다니곤 했었는데 종강일에는 그래도 사람답게 꾸미고 수업이 끝나고는 앤디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종강일은 화요일이었다. 그다음 날은 수요일인데 수요일에 학원을 갈 필요가 없다니 기분이 묘했다. 이미 관성으로 굳어져 아침 6시 반에 눈을 떠서 학원으로 향할 것 같았다. 스터디원 중 특히 내게 건강한 자극을 주었던 분과, 나와 함께 수업 전후로 열심히 질문을 하다가 말을 트게 된 수강생 한 분께 짧은 쪽지와 함께 초콜릿을 드리고 교실을 떠났다. 오늘 수업 후에는 스터디도 없었고, 과제도 없었다. 


종강일 후에야 진짜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학원을 다니기 전에는 한 달 수업 끝나자마자 시험을 보려고 했지만 종강을 하고 보니 너무 단기간에 밀어붙인 탓에 생긴 구멍들을 메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0일 정도의 자습 시간을 갖기로 했다. 독서실 특유의 고요함과 단조로운 분위기에 질색하던 내가 독서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원을 다니는 동안에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라도 있었는데 독서실에서 벽만 바라보며 공부를 하자니 외로움이 문득문득 밀려왔다. 호주에 있을 때부터 외로움을 탔었는데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토플 공부를 시작하느라 보고 싶은 얼굴들을 만나기는커녕 연락도 제대로 못했다. 새삼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시험공부를 해보니 돈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그러니 내 마음의 여유도, 사람들을 만날 여유도 없었다. 까마득한 동굴에서 천정의 희미한 빛을 올려다보며 수련을 하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시험날이 왔다. 한남동 시험 센터에서 시험을 봤는데 한 시험장 내에 25명 정도 시험을 보고, 책상도 넓고 칸막이도 사무실 칸막이처럼 잘 쳐져 있어서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리딩 더미에 걸려서 지문 4개를 읽었고, 늦게 간 탓에 리스닝을 풀 때 옆 사람들은 모두 스피킹을 하고 있어서 집중이 잘 안 됐다. 리딩 공부와 리스닝 공부에 집중하는 동안 스피킹을 너무 놓아버렸더니 첫 번째 유형에서 많이 버벅거렸다. 라이팅 통합형은 적당히 템플릿에 맞춰서 썼고 라이팅 독립형도 달달 외운 템플릿과 브레인스토밍을 끼워 맞춰서 썼다. 


시험 이틀 후, 토플을 끝내고 나면 뭘 할까 고민하며 기대 없이 지원했다가 합격한 회사에 출근했다. 그렇지만 시험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시험을 한 번 쳐보고 나니 부족했던 부분들을 체감할 수 있었고, 점수와 상관없이 부족함을 느낀 부분들을 보완해서 한 번 더 시험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슬그머니 들었다. <헤어질 결심>의 대사처럼 '토플은 흡연과 같아서 처음만 어렵다...'. 한 번 시험을 봐 보면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건강한 동기 부여가 될 수도, 미련한 집착이 될 수도 있겠지. 감사하게도 이번에는 엄마가 나의 의지를 응원해 주며 시험비를 지원해 주셨다. 그리하여 퇴근하면 도서관으로 가서 2시간 정도 공부를 하다가 수영을 하고, 독서실에서 2시간 정도 더 공부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후, 점수가 나왔다. 한 달 만에 100점을 한 번에 뚫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스피킹과 라이팅이 너무 안 나와서 점수가 대학원 커트라인이었던 96점조차 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이미 공부를 하고 있던 탓에 낙담하거나 우울해하지는 않았다. 그냥 토요일 아침에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점수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어 바로 독서실로 향했다. 그날은 공부를 하기보다는 왜 내가 이런 점수를 받았는지를 분석하고, 결과에 따라 영역 별로 목표 점수를 재조정한 후 목표 점수를 얻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회사를 다니면서 시험공부를 하는 건 생각보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소모적인 일이었다. 회사에서 해야 할 과제도 1년 동안 휴학을 한 나로서는 만만치 않았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토플도 당연히 중요했고, 7월 26일을 기점으로 시험이 개정되기 때문에 그전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압박은 배가 되었다. 회사에 다니며 업무와 관련 없는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게 피부에 와닿았고, 학생일 때 공부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시험 전날, 편의점에 가서 학원에 같이 다니던 언니가 보내준 페레로 로쉐를 교환해 왔다. '이번에는 행운의 초콜릿도 챙겨 왔으니 잘 될 거야.'라고 되뇌며 시험장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늦게 도착한 탓에 리스닝에서 지장이 있었던 점을 고려해 9시가 되기도 전에 도착했다. 출근을 시작한 후 피로에 시달려서 지문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는데 리딩 더미가 아닌 리스닝 더미에 걸려서 다행이었다. 스피킹은 근거가 엉성하고 조금 느리게 말하기는 했어도 실수 없는 문장으로 답하려고 노력했고, 라이팅은 통합형은 쓰던 대로 쓰고 독립형은 템플릿에 집착하기보다는 논리 구조와 수준 있는 어휘 사용에 집중하며 썼지만 278 단어로 20 단어 넘게 채우지 못했다. 


라이팅의 채우지 못한 분량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점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월요일에 또 토플을 등록했다. 토요일에 나올 점수를 보고 취소하거나 말거나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많이 지쳐있었다. 그만하고 싶었다. 여느 때와 같이 퇴근하고 도서관에서 리딩 Actual Test를 푸는데 머리가 맑지 않고 글도 잘 읽히지 않아 패닉이 왔다. 아빠한테 전화하다 보니 기진맥진함, 외로움, 간절함 등이 꾹꾹 눌린 채로 뒤섞인 눈물이 터져 나왔고 아빠는 내게 잠시 쉬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래, 일주일만 쉬어보고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다시 시작해 보자. 쉬면서 오랜만에 사람들도 만나고 일에도 집중할 수 있었지만 쉬면서도 마음이 영 편하지는 않았다. 하루에도 문득문득 '점수가 어떻게 나올까, 만약 점수가 안 나오면 7월 8일에 시험을 볼까 아니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7월 22일 시험을 볼까, 7월 22일은 정말 마지막인데...' 이런 한숨 섞인 상념이 들었다. 


그러다가 금요일 오후, 회사에서 구글 계정 인증 때문에 지메일에 잠시 들어갔는데 ETS로부터 'Your score is now available'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와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상태였는데 정신이 확 들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도저히 업무 중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4시가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다가 4시가 되자마자 튕겨져 나오듯 퇴근했다. 오늘 Y를 만나서 다행이다, 점수가 안 나왔으면 혼자서 우울해하는 대신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며 기분전환을 할 수 있고, 점수가 잘 나왔으면 기쁜 마음으로 Y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점수를 확인해 보니 세상에, 101점이었다! 특히 기대를 버렸던 라이팅에서 26점이 나와서 더 놀랍고 기뻤다. 총점이 오른 것도 기뻤지만 회사 일과 공부를 병행한 2주 동안 모든 영역에서 점수가 오른 것도 놀라웠다.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점수를 확인하고 마곡나루 역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폴짝 뛰기까지 했다. 


토요일 아침, 오늘은 조금 더 자도 된다. 어제의 짜릿한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오늘은 101점을 받았다는 것이 기쁘기는 해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이 되었다. 오전에 지난 두 달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방 한 구석에 켜켜이 쌓여있던 토플 책들을 정리해야지. 단권화 노트와 리딩 부교재, 라이팅 책은 남겨두고 다른 책들을 모아서 쌓으니 제법 되었다. 수능이 끝나고 책 정리할 때가 문득 생각났다. 그때도 모의고사 문제집, 교과서, 수능특강은 다 버렸어도 오답노트와 필기노트는 버리지 못했는데. 내 지식을 응축해서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쓴 노트는 다시 수능을 보지 않더라도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들여다볼 일이 없었지만. 그냥 버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이번 토플이 인생의 마지막 토플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3-4년에 한 번씩 모습을 바꾸는 토플과 씨름하겠지. 그렇지만 이번 토플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끈덕지게 해서 결국 해내는 과정' 전체를 짧은 시간 내에 경험하게 해 준 것 같다.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또래 대학생, 박사 유학을 준비하는 대학원생, 직장인 수강생들을 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치열함의 공기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영어에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다. 자료 조사를 할 때 영어 자료를 보고 멈칫하지 않게 된 것, 할 수 있다는 믿음. 첫 토플 공부가 내게 남겨준 가장 큰 자산이다. 


토플 공부를 하는 동안, 그리고 살면서 이런저런 굴곡을 겪을 때 늘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박노해 시인의 <동그란 길로 가다>로 글을 마무리한다. 






동그란 길로 가다


                                       박노해 시인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인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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