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과 회고의 힘
첫 시험을 준비해 보는 여느 사람들처럼 나도 토플 공부 수기를 많이 찾아보았다. 짧은 시간 내에 토플을 끝내고 싶었던 내게 눈에 띈 글들은 단연 짧은 시간 안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 '한 달 만에 토플 100점 받기', '노베이스 공대생 토플 105점 후기', '벼락치기로 토플 100점 넘기기'와 같이 - 자극적인 제목의 글이었다. 물론 이런 글은 희망을 심어주기도,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토플 공부를 하는 팁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종종 헛바람이 들게 하기도 했다. 많은 경우 토익과 같이 다른 영어 시험을 준비해 본 사람들의 수기이기도 했고,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한 방에 고득점을 한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을 터였는데 섣불리 들뜬 채로 요행을 바라는 마음은 위험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두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 안에 두 번 시험을 쳐서 101점을 받았다. 미래에 또다시 토플과 씨름할 나를 위해, 그리고 내가 처음 토플을 시작했을 때와 같은 마음일 사람들을 위해 학습 기록을 남기려 한다. 나의 토플 공부는 꾸준함과 회고로 압축할 수 있다. '진인사 대천명'을 마음속에 새기며 묵묵히 나아가고 회고를 통해 개선할 부분을 발견한다 - 뭐든 묵묵함과 똑똑함이 함께 갖춰져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
(*2023년 7월 26일 부로 시험이 전면 개정되니 이 점을 감안하고 토플 공부의 태도와 전략, 멘탈 관리 정도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Voca
단어는 요리에서 재료와 같다. 아무리 훌륭한 레시피(문제풀이 팁, 전략 등)가 있다고 해도 재료가 부실하면 완성도 있는 요리를 할 수 없다. 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토플 단어책 중 가장 유명한 초록이를 선택했다. 처음에 단어책을 펼쳤을 때는 2/3 이상이 모르는 단어였다. 하루에 하나씩 학원을 오가는 길에 외웠고, 나는 눈으로 단어를 외우면 안다고 착각을 하는 사람이라 음원을 들으며 영어 단어와 뜻을 적고 채점을 하면서 외웠다. 틀린 단어는 표시를 했고, 세 개 이하로 틀리면 얼추 외운 것으로 간주했다. 보통 세 번 정도 영어 단어와 뜻을 적고 채점하는 것을 반복하면 다 외울 수 있었고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처음에 외울 때는 동의어는 제외해서 하루에 60개 정도 외웠고, 뜻이 여러 개인 단어는 모든 뜻을 외우고 무엇보다 절대 밀리지 않았다.
책을 다 뗀 후에는 그동안 채점했던 것을 다시 확인해서 처음 테스트를 했을 때 틀렸던 단어들을 모아서 다시 외우기 시작했다. 처음 테스트를 했을 때 틀렸던 단어들은 내가 기존에 잘 몰랐거나 내 머리에 확 들어오지 않은 단어라는 뜻인데, 이런 단어들은 한 번 외워도 금방 날아가기 때문이다. 한 번 추리니 단어의 양이 1/3 정도로 줄어들었고, 압축 단어장이 한 페이지 분량(대략 70개)이 될 때까지 외우고 압축하기를 반복했다. 압축한 단어들을 외울 때는 동의어까지 함께 외웠는데, 동의어 외우기는 단어 암기 자체에도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리딩에서 동의어 문제를 대비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다의어의 경우 뜻 별로 동의어를 모두 외우는 것이 실수를 방지하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Reading
수능 국어 지문을 읽는 것은 그냥 책을 읽는 것과 다르듯이, 리딩에서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읽기 전략이 필요하다. 수업에서 얻은 가장 큰 팁을 요약하자면 '지문 중에서 읽어야 할 부분을 잘 찾아서 읽자.'이다. 예를 들어 문제에서 A에 대해 물어본다면 지문에서 A를 언급한 부분을 찾아가서 읽어봐야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헷갈리는 선지가 있다면 선택의 기준은 지문이 되어야 한다. 토플은 과도한 추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흔히 토플은 paraphrase가 많은 시험이라고 하는데 paraphrase는 추론이 아니라 똑같은 뜻을 말만 바꿔서 한다는 뜻이다. 문제를 풀고 틀린 문제를 고칠 때마다 '지문 속에 답이 있었네!'라고 탄식했다. 헷갈리는 선지가 있을 때는 지문에서 문제와 연관된 부분(키워드와 가까운 부분)을 다시 한번 읽고 같은 의미를 가지는 선지는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해커스 정규 리딩책으로 유형을 하나하나 익히며 연습을 했지만 유형을 다 익힌 후에는 지문 한 세트를 푸는 연습을 했다. 먼저 지문을 읽지 않아도 되는(뜻이 여러 개인 단어라 헷갈린다면 주변 문맥을 봐야 한다) 동의어 문제를 빠르게 풀고 9번 삽입 문제가 나오는 단락을 확인한 후, 요약 문제로 넘어가 주제 문장을 읽었다. 그러고는 지문으로 돌아가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지문 한 세트를 견딜 수 있게 되면 세 개의 지문을 연달아 푸는 연습을 했다. 시험을 보고 나서 더 확실하게 느낀 건데, 고민이 되는 문제를 빠르게 넘겨서 6~8분 정도의 검토 시간을 확보하고 문제를 모두 푼 후에 다시 돌아가서 풀면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정답률도 올라갔다.
해커스 정규 리딩책이 끝난 후에는 액츄얼 테스트 책으로 연습을 했는데 액츄얼 테스트의 지문이 정규책 지문보다 길어서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다. 여러 후기에서 보면 액츄얼 테스트 책의 난이도가 실제 시험보다 높다고 하는데, 실제 시험보다 어려운 단어가 조금 더 많이 나오고 지문 난이도가 약간 더 높은 것 같았다. 모의고사를 풀기 시작할 때부터는 독서대 위에 책을 최대한 직각으로 세워놓고 종이에만 필기를 하면서 풀어서 컴퓨터 화면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놓고 연습을 했다. 그런데도 컴퓨터 화면으로 지문을 읽는 것과 인쇄된 지문을 읽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어서 시험 보기 전에 컴퓨터 화면으로 지문을 읽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Listening
리스닝 공부를 하며 가장 큰 깨달음은 '예측하며 듣기'의 중요성이었다. 토플 리스닝에서 conversation 음원은 3~4분, lecture 음원은 5~6분 정도로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음원을 들은 후에 문제를 확인할 수 있고, 전체 시간을 고려했을 때 한 문제 당 30초 이내에 풀어야 한다. 노트테이킹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그다음 내용을 놓치기도 하고 문제를 풀 때 해당 내용을 어디에 필기했는지 빠르게 찾지 못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기에 음원을 들을 때 화자가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잡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화자가 강조하는 내용이 곧 문제가 출제되는 부분이자 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중요한 내용은 강조하는 시그널이 있다. Actually, In fact, Indeed 이런 강조 표현을 사용한다든가 I'd like to, I think, Personally 등의 표현으로 화자의 태도를 드러낸다든가 하는 식으로.
이렇게 명백하게 강조하는 문제들은 비교적 쉽게 익숙해질 수 있었지만 디테일한 내용을 묻는 문제는 여전히 어렵고 오답률도 높았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나올 만한 디테일이고 어떤 것이 나오지 않을 만한 디테일인지 감이 오지 않았으니까! 이런 디테일은 노트를 하지 않으면 대부분 틀렸기 때문에 스크립트를 분석해 보며 중요도가 매우 떨어지는 디테일의 특성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했다. 또한 다음 내용을 놓치지 않으면서 최대한 많은 디테일을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노트테이킹 구조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예를 들어 나비의 생애 주기에 대해 설명을 한다고 하면 가로로 칸을 몇 개 나누어 칸마다 각 생애 단계에 대해 노트테이킹을 했다.
음원 속도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1.1~1.2배속으로 빠르게 듣는 연습을 했다. 빠른 속도의 음원을 들으며 더 빠르게 노트테이킹을 하는 연습을 하니 원래 속도의 음원을 보다 여유롭게 들을 수 있었다. 리딩과 마찬가지로 해커스 정규 리스닝 책을 끝내고 나서 액츄얼 테스트 책을 구매해서 풀었고, 액츄얼 테스트의 난이도는 실제 시험보다 1.1~1.2배 정도 어려웠던 것 같다.
Speaking
사실 스피킹은 내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영역이기도 하고, 아직 무언가를 터득하지는 못했기에 글 쓰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스피킹도 어느 정도 요령이 있다는 것은 깨달았고, 스피킹이 그렇게 유창하지 않다면 최대한 간결하게 말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느꼈다. (필요한 말도 생략하라는 것이 아니고, 물어본 것에 대해 듣는 사람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답은 해야 한다!) 채점관은 내가 개떡같이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듣는 외국인 친구가 아니다. 그러므로 직접적으로 의견과 근거를 말하는 게 중요하고, 꼭 필요한 내용은 아닌데 문법 실수를 할 것 같으면 아예 말하지 않아서 감점 요인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나는 말을 할 때 생각보다 수일치, 시제일치를 많이 틀렸는데 답변을 녹음하고 다시 들어보며 문법 실수와 비문을 체크하고 개선하면서 내가 자주 하는 문법 실수를 의식하고 고치려고 노력했다.
Writing
많은 사람들이 라이팅은 템플릿을 외우면 된다고 말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인 것 같다. 내 생각을 전혀 쓸 필요가 없는 통합형의 경우 정해진 글의 구조를 가지고 적절한 위치에 지문의 내용과 음원의 내용을 끼워 맞춰도 괜찮은 것 같지만, 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근거와 함께 서술해야 하는 독립형의 경우 템플릿에만 의존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독립형을 작성할 때 템플릿에 매몰되다 보면 A에 대해 물어봤는데 B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에세이를 작성하게 될 수도 있고, 오프 토픽에 대해 엄격해지는 요즘에는 감점이 클 수 있다.
첫 시험을 봤을 때, 예상 점수와 가장 괴리가 컸던 영역은 라이팅이었다. 나보다 글을 잘 쓰는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뼈대에 맞춰서 글을 완성은 했으니 이 정도는 나오겠지 하는 자만은 우습게 꺾였다. 라이팅 연습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템플릿을 버려보기로 했다. 대신 유진선생님의 바른 독학영어 블로그의 명예의 전당에 제시된 주제로 30분 동안 글을 써보고, Grammarly로 문법 실수를 체크하고 응집력이나 전달력 점수는 참고하는 정도로 봤다. 그러고 나서 모범 에세이를 읽어봤다. 유진선생님 블로그의 가장 큰 장점은 획일화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에세이가 올라온다는 점이었다. 에세이를 써본 후 모범 에세이를 읽어보면서 '이렇게도 글을 쓸 수 있구나' 생각하기도 하고, 글쓰기를 할 때 좋은 표현이 있으면 정리해 두고 외웠다가 다음번에 써먹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셀프 첨삭을 하기란 어렵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자주 하는 문법 실수를 인지하고 염두에 둔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어휘도 에세이에 적합한 어휘들로 업그레이드시켜나갔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기업이 성공하려면 마케팅에 많이 투자해야 하는가'라는 주제가 나왔는데 평소에도 분량 맞추는 게 잘 안 되던 나는 시험에서도 20 단어 이상 분량을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번에 받았던 21점을 절대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26점이 나왔다. 첫 번째 시험과 비교해 봤을 때 두 번째 시험에서 20 단어 넘게 쓰지 못했는데도 괜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는 에세이의 질을 높이려 노력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but, so, good, bad... 이 정도의 단어를 남발하며 500 단어 에세이를 쓴 사람이라면 채점관은 이 사람에게 시간이 더 주어지더라도 그 정도 수준의 글밖에 쓰지 못할 것이라 판단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격식 있는 어휘를 사용하고 주제 문장과의 응집력과 일관성에 집중해서 채점관에게 '시간이 충분했다면 완성도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라는 인상을 준다면 분량을 조금 부족하더라도 생각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래도 이 점수를 받은 데는 여전히 운이 따라줬다고 생각한다.)
2주 만에 점수를 11점이나 올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회고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공부를 할 때도 항상 오답을 할 때 틀린 이유(ex. 키워드 연관 부분을 읽지 않음, 과도한 추론 등)를 찾아내서 나의 '나쁜 습관'을 인지하고 고치려고 했고, 첫 시험 점수를 받자마자 내가 왜 이런 점수를 받았는지,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목표를 재조정했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매일매일의 과업 단위로 정리했다. 이렇게 과목 별로도 회고를 했고,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된 요인, 도움이 된 요인을 찾아보며 시험 전반적으로도 회고를 했다. 돌아보니 첫 번째 시험 직전에 앤디와의 크고 작은 일로 감정 소모가 컸고, 시험장에 늦게 가서 LC 때 다른 사람들의 스피킹 소리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됐다. 그리고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부분은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부족한 시간과 체력이었다. 그래서 나는 잡념을 없애고자 카톡, SNS 빈도를 더 줄이기로 했고, 출퇴근 전후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최대한 체력과 시간을 아끼기로 했고, 시험날 9시 이전에 도착하기로 했다.
고3 시절 아빠가 한 말 중 정말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명품은 마감에서 차이가 난다.' 그렇다, 시험이 완전히 끝나고 시험장을 나서기 전까지 시험은 끝난 게 아니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시험을 보는 순간 가장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어줘야 한다. 나는 아침에 가장 머리가 맑으니까 오전 시험을 신청했고, 배부르지 않을 정도로 아침밥을 먹고 달달한 모카 한 잔으로 당과 카페인을 보충했다. 지난번에 간식을 안 챙겨가 후반부에 당이 떨어졌기 때문에 토플을 같이 준비한 언니가 준 초콜릿을 '행운의 초콜릿'이라 믿으며 가방에 넣어갔고, 9시가 되기 조금 전에 도착해서 두 번째로 시험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두 달 간의 은둔 생활과 시험비 30만 원을 떠올리며 전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시험을 쳤다! 시험을 치는 동안에는 내 눈앞에 있는 문제 외의 어떤 것도 떠올리지 않으려 했고, 그렇게 시험이 끝났을 때는 약간의 피곤함이 몰려왔다.
이렇게 나의 첫 토플은 끝났다. 조금 더 빨리 정리했더라면 혹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을 수 있을 텐데 나의 게으름 때문에 시험이 개정되기 거의 직전에야 글을 완성했다. 토플을 준비하고 있는 모든 사람과 또다시 토플 공부를 할 미래의 나에게 응원과 격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