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내 몸 하나 뉠 곳
여행자가 아닌 워홀러로서 호주에 도착한 내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집 구하기와 잡 구하기였다. 호주로 떠나기 2주 전부터 Flatmates와 Gumtree를 열심히 찾아보며 집주인들과 컨택을 했다. "안녕, 나는 한국에서 온 OO이야. 한국에서는 공대생이었고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깨끗한 사람이야." 등의 문장으로 집주인들에게 나를 세일즈 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집도 잘 안 찾아지고 겨우 찾아서 컨택을 해도 답이 오지 않아 점점 불안해졌다. 결국 2만 원 내고 좋은 집 찾을 수 있으면 결제하자 싶어 Flatmates 유료 플랜을 구매했다. 유료 플랜을 구매해서인지, 타이밍인 건지 그 이후로 Flatmates에서 내 조건에 맞는 집을 몇 군데 찾을 수 있었고 내 소개를 보고 집주인으로부터 먼저 컨택이 오기도 했다. 구글 캘린더가 inspection 일정으로 채워질수록 내 마음은 편안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급할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호주에 도착한 다음날 집을 네 개나 보러 갔다. 전날 새벽 2시에 도착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체크인 전에 은행과 통신사에 갔다 왔기 때문에 하룻밤 자는 것으로 피로가 모두 풀리지는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첫 번째로 방문한 집은 퍼스 시내로부터 10km 정도 떨어진 벤틀리(Bentley)에 위치했는데, 집주인 분이 아침 7시에서 7시 반 사이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하셨다. 집이 빠르게 결정되지 않으면 불안에 시달릴 것 같아 졸린 눈을 비비고 6시에 일어났다.
첫 번째 집을 방문하고 inspection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호주에 오기 전에는 망원에서 잠실까지 20km 정도 되는 거리를 매일 출퇴근했기 때문에 10km 정도 떨어진 곳이면 살만 하겠다 싶었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10km와 퍼스에서의 10km는 전혀 달랐다. 퍼스 시내는 몇 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았고 조금만 벗어나면 교외 느낌이 확 들었다. 버스에 안내 방송이 없어 구글맵에 초집중하면서 가다가 마침내 첫 번째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렸을 때 호주의 광활함이 피부에 와닿았다.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욕실이나 부엌 곳곳에 때가 껴 있는 모습에 이 집은 바로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다음 집들도 모두 이러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에 수심이 한 층 깊어졌다.
교외에 있는 집을 두 군데 더 들른 후 방문한 마지막 집은 이스트 퍼스(East Perth)에 있는 집이었는데 유일하게 시내에 있는 집이자 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였다. 시내에 위치한 데다 수영장도 딸려 있는데도 렌트비가 저렴한 것이 약간 의심스러웠다. 그렇지만 inspection을 해보니 집 내부도 괜찮은 데다 여러모로 워홀러인 내가 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바로 계약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고비가 더 있었다. 힘들게 고른 이스트 퍼스의 집은 12월 28일부터 입주가 가능했다. 호스텔에서 일주일을 더 지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호스텔은 시내와 정말 가깝고 청결해서 지낼 만했으나 집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 없었다. 4명이 한 방을 함께 썼고, 잠시 왔다 떠나는 사람들이라 유의미한 교류를 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새로운 사람이 오면 인사를 하고 어느 정도의 관심을 보였으나 왔다가 떠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최소한의 관심마저 사그라들었다. 가장 참기 힘든 건 집밥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제 값 못하는 음식을 매일 비싸게 사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내 방을 갖게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고생했다는 의미에서 팩 하나 붙이고 자는 거였다. 이사한 날 대청소를 하고 팩을 붙일 새도 없이 기절해 버렸지만. 오직 나만 있는 내 방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비로소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주방에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고, 양송이와 시금치를 볶고, 바삭한 토스트가 튀어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행복했다.
포항이든, 서울이든, 퍼스든 타지에서 지내면서 내 몸 하나 뉠 곳의 소중함을 점점 깨닫는다. 내 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조그만 공간 하나 찾는 게 뭐 이리 어려운지. 문득 뮤지컬 <빨래>에서 나영이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한 걸음 두 걸음 걷자. 내 방까지.
날 기다리는 내 방까지.
대학교 2학년 때 <빨래> 공연을 할 때는 <빨래>가 시대에 뒤처진 뮤지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빨래> 넘버의 가사가 점점 공감되는 걸 보면 나도 타향살이에 익숙하면서도 타향살이의 서늘함에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