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에서 웨이트리스, 키친핸드로
주변에 취업 준비를 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나는 인턴십에 지원해본 적은 있으나,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기 때문에 벼랑 끝에 몰린 취준생의 절박한 심정을 알지 못했다. 삶이 러닝머신처럼 같은 속도로 우리를 밀어붙이는 와중에 다음 발걸음을 디딜 곳을 찾아야 하는 이들. 취준의 불안은 좋은 조건의 오피스직을 구하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종류의 일을 구하는 과정에서 따르는 불확실성은 사람을 불안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을 워홀 잡을 구하며 깨달았다.
불안은 퍼스에서 차 없이 가볼 만한 곳은 웬만큼 둘러봤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비싼 호스텔 숙박비에 얼마 없는 초기 자금은 훅훅 빠져나갔고, 같은 방을 쓰던 사람들은 모두 일하러 나갔는데 갈 곳이 없는 나는 호스텔 라운지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구인광고를 찾아보기 전 레쥬메를 작성하며 평생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호스피탈리티 관련 교내 근로 경력을 부풀려 쓰는 나를 발견했다. 남는 시간 동안 Seek이나 Gumtree를 열심히 뒤져봤으나 연말연초 휴가 시즌이라 그런지 구인광고 자체가 잘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거리로 나갔다.
거리에 나가보니 'We're hiring'이라고 쓰인 구인광고가 꽤 붙어있었다.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은 레쥬메를 100개는 돌린 후에야 연락을 몇 군데서 받았다고 해서 오프라인으로 레쥬메 40장 돌리기를 목표로 세웠다.
마냥 많은 줄만 알았던 시티 메인 스트릿의 구인광고들은 레쥬메를 돌려보고 나니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이미 집을 시티 근처에 구해놓은 후였기 때문에 교외 지역은 생각하기 어려워서 시티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3일을 내리 걷고 나니 퍼스 시티의 웬만한 골목에 익숙해졌다.
다행히 처음 레쥬메를 돌린 카페에서 트라이얼 연락이 왔다. 검은 옷을 입고 오라고 하길래 바로 검은 반팔 셔츠와 검은 슬랙스를 샀다. 11시에 트라이얼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러시 아워였다. 끊임없이 설거지감이 밀려들었고 벨이 울리면 서빙을 하러 나가야 했다. 맨손으로 남은 음식이 묻은 접시를 만지고, 디시워셔에 설거지를 밀어 넣기 전 뜨거운 물이 나오는 스프레이로 설거지의 오물을 씻어내고... 커피나 음식을 나를 때는 마치 접시에 내 목숨이 달린 양 잔뜩 긴장을 하고 걸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손을 보니 몇몇 손가락의 껍질이 벗겨져 있었다. 누군가 부드럽다고 했던 내 손은 곧 거칠어지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매니저가 트라이얼 시간이 끝났음을 알려주며 일을 해보니 어땠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설거지를 하며 튀는 물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웃으면서 활기찬 카페에서 일해서 좋다고 대답했다.
트라이얼 후에 되든 안 되든 곧바로 연락이 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날 저녁에도, 그다음 날에도 연락이 오지 않자 불안이 또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메모장에도 일요일까지 기다려보고 안 오면 포기하자고 적어뒀는데 크리스마스(마침 크리스마스는 일요일이었다)에 New employee form을 작성해서 회신해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일자리를 구하기까지 수많은 불안이 생겨났다, 녹았다가, 사라지기 무섭게 그다음 불안이 생겼다. RSA 자격증을 따기 전에는 RSA 자격증에 목을 매었고 레쥬메를 돌릴 때는 최대한 많은 레쥬메를 돌리는 것에 목을 매었고 레쥬메를 돌린 후에는 트라이얼 연락을 목을 매었다. 트라이얼 후에는 최종 연락에 애를 태웠고. 지금은 잡을 구했지만 언제든 잘릴 수 있는 은은한 불안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불확실성 앞에서 마냥 태연할 수만은 없겠지만 워홀이 끝날 즈음에는 한철짜리 불안에 목매지 않는 초연함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