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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me soupe Feb 22. 2022

고래와 공룡







Le marais





마레의 작은 아파트.



세 번째 숙소는 보쥬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마레 지구의 작은 아파트였다. 파리의 건물이 다 그렇듯이 건물 자체는 무척 오래되고 낡은 것이지만 건축 디자이너인 집주인이 내부를 새로 개조했다고 말에 선택했다. 가운데에 벽처럼 보이는 미닫이문을 두어 한 공간을 방 두 개로 나누어 쓸 수 있도록 만들었고 샤워부스와 화장실을 분리해놓아 작지만 작지 않게 잘 꾸려진 아파트였다. 이 아름다운 창을 열면 보쥬광장과 카페테리아가 내려다 보였다. 



다만 , 

차를 오래 달려 오후 늦게 다시 파리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도대체 파리의 교통 체계는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정말 다들 알아서 피해 달리는 방법뿐인지 개선문에서 좌회전을 시도하다가 죽을 뻔(정말 나는 그대로 죽는 줄 알았건만 - 충돌을 가까스로 면한 반대 차에 타고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매우 평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한 후로 나는 거의 혼이 나간 상태였다. 자다 깨다를 반복한 아이들은 너무 지쳐있고 긴 시간 운전을 하고도 교통 체증 때문에 두 시간째 개미처럼 파리 시내를 기어가고 있는 그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보쥬공원 앞에 도착했는데 숙소 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도착해서 연락을 하면 열쇠(그놈의 열쇠)를 놓아둔 장소를 가르쳐주기로 했는데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는 것이다. 한 시간 만에 연락해온 주인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비밀번호를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뭐야 열쇠가 아니라 비밀번호였어? 화가 나는 상황보다 어서 집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기에 아이들을 안고 장대비를 뚫고 아파트로 뛰기로 했다. 그런데 1층 입구에 번호키가 달려있다. 보내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갔는데 그렇다면 집 현관은 또 무엇으로 열 수 있단 말인가. 방 앞에 도착했지만 방은 역시 열쇠 문이었고 열쇠는 어디에도 없었다. 방탈출 게임도 아니고 숙소에 왔지만 숙소 문을 열지 못하다니 다시 차로 돌아와 집주인(또 답이 없는 그놈)의 메시지를 기다려야 했다. 삼십 분이 지나서야 열쇠는 집 앞에 놓여있던 두꺼운 발매트 밑에 있다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가르쳐 달라는 메시지에는 떠나는 그날까지 답을 받을 수 없었다. 후기가 거의 없던 숙소였는데 알고 보니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동양인들이 주로 이런 수법으로 약 올림을 받았더라. 많은 분들이 마레의 숙소를 물으셨는데 추천해드리지 못한 이유. 


차가운 비를 맞고 떠느라 무척 고단했던 우리는 트렁크에 고이 담아온 마지막 컵라면과 햇반으로 가장 소박하지만 이 순간 최고일 수밖에 없는 저녁식사를 하고는 따뜻한 이불속에서 곤히 쉬었다.


















고래와 공룡


재희와 아빠는 일층 카페에 아침으로 먹을 빵을 사러 나섰고 태오는 창가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창 한번 스케치북 한번 번갈아 보기에 녀석의 작품이 내심 기대되었는데 다 그렸다며 내게 보여준 것은 고래와 공룡이었다.


그래 태오야 오늘은 드디어 고래와 공룡을 보러 간다! 



















스톡 한단.


퐁토르송 시장에서 산 스톡 한단으로 마레의 아파트가 이틀 내내 향기로웠다. 컵에 꽂아 작은 주방의 어여쁜 창 앞에 두고 보았다. 많이 걸어 지쳐 돌아와도 좋아하는 꽃향기가 있어서 잠깐 머무는 곳이지만 집처럼 편안했다.








파리의 아침. oil on canvas. 31.8x40.9cm. 2020. 김윤경

그리고 어여쁜 순간은 동생의 그림에 담겼다. 













창문 너머 기우뚱한 아파트를 보며 너무 오래되어 주저앉은 걸까 원래 저렇게 지은 걸까 남편과 한참 동안 실없는 소리를 하던 그날 아침.



















Place des vosges

보쥬 광장.



광장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중앙에 이렇게 아담한 분수가 있는 작은 공원이다. 오후가 되면 사람들은 이 잔디 위에 스카프 한 장을 깔고 누워 간단한 음식을 먹거나 기타를 치고 책을 읽으며 쉬었다. 참 좋아 보였는데 나도 참 낭만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쯔쯔가무시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잔디에서 개똥을 두 번 밟은 후로 나는 아이들에게 잔디에 절대 앉지 말 것을 당부했다. 멀리서 보아야 아름다운 것이 또 있는 것이라며. 




































Museum national d'histoire naturelle.

파리의 국립자연사박물관



실물 크기의 여러 동물들이 한 곳을 향해 걸어가듯 놓였다. 고래의 어마어마한 뼈 화석과 바다 동물이 0층. 덩치가 큰 육지동물과 나무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작은 녀석들이 1층을 그다음 층에는 새와 설치류, 3층에는 곡식 과실과 흙이 놓였다.

층을 하나씩 오르며 천천히 둘러보는데 안 그래도 어두컴컴한 실내, 옆 벽면과 천장까지 둘러싸인 수많은 창에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날씨와 시간을 창의 색감과 빛 거기에 더해진 소리로 정말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이 정도 비가 내리는 것이라면 한국에는 영영 못 돌아갈 것 같다.


눈치를 챘을까. 자연사 박물관 전체가 노아의 방주를 표현하고 있는 것.

곧 비가 그치고 노란 해가 내리쬐더니 천정창에 무지개가 떴다. 아이들에게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자세히 그려진 그림책을 여행을 계획하며 여러 번 읽어주었다. 재희가 엄마 이거 그거다! 하고 먼저 알아차려주어서 기뻤다. 형아가 얘기해주니 태오가 아 나도 그거 알아.라고 했지만 이 배가 진짜로 가고 있다는 형아의 농담에 너무 진지해져 버린 녀석은 정말로 집에 돌아가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태오만의 고래 크기 비교 사진.

생각보다 너무 커서 깜짝 놀란 태오의 표정이 정말 귀엽다. 



















GALERIE DE PALÉONTOLOGIE ET D’ANATOMIE COMPARÉE.

고생물 박물관. 


태오를 위해 옆 건물의 공룡도 보러 갔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뼈 화석들이 놓인 곳. 디플로도쿠스의 뼈를 꼭 보고 싶다던 태오의 기분은 이 사진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La menagerie du jardin des plantes.


박물관 앞은 유월의 장미가 한창이었다. 이곳은 동물원과 식물원, 몇 가지 박물관이 한데 모여있는 정말 넓은 장소인데 각 건물과 건물 사이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이 가꾸어져 있다. 꼭 무엇을 관람하지 않더라도 파리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빠와 태오가 공룡을 한 번 더 보러 간 사이 재희와 나는 벤치에 앉아 쉬었다. 어제 그렇게 퍼붓던 장대비는 꿈처럼 먼 일 같았다. 일 년에 몇 번 없을 가장 아름다운 날씨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Paris France. 19. juin

고래와 공룡


글과 사진pomme soupe. 김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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