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사랑 5

도취와 유취幽趣

by 사과와 돌멩이


22.09.23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들고 서울숲에 갔다. 일어나서 밥을 차려 먹고, 오늘은 새송이 버섯이랑 아스파라거스랑 파프리카랑 닭가슴살이랑 컬리플라워 지져먹었다, 아 블루베리도. 그리고는 근 1년간 공생한 어루러기랑 작별하려고 피부과에 들린 뒤 소나기 맞으면서 자전거를 탔다. 근데 피부과 사람들 신기했다. 접수 받는 직원부터 의사까지 반존대로 거침없이 대했다. 친절과 불친절을 넘나드는 익명인을 만나면 도시가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다.


비가 그칠 동안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었다. 저자는 존나 열심히 책을 쓰고 살았는데 제목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었다. 도시에서 살다보면, 특히 산업자본주의의 영향을 지겹도록 받다 보면 으레 한 번쯤 벗어나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 휘말릴 때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들의 사례를 엿볼 수 있었다. 20대에 이미 고민이 끝난 내용이었는데, 특히 '나의 쓸모'에 대해 골몰하며 살아가던 시절 나의 마침표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변화하기였고, 저자도 나름의 반면교사로 삼는 이야기(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나 1960년대 미국 코뮌 운동 등등)를 통해 세상을 포기할 게 아니라 책임으로 느끼기를 권고했다.


그래도 본인이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모순이나 불가능의 현실에 대해서는 역시 함묵할 뿐이었다. 삶의 무게라고 불리는, 나는 이걸 '1인분'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자생력의 기반에 대해서다. 그는 각종 현대 예술의 감각 복원 프로그램에 적극 동조하는 사람으로서, 현대 도시가 제공하는 가속화된 감각 입출력을 느슨하게 만드는 걸 제안하며 이를 '관심'이라고 논지를 확장시킨다. 20대 중반에 이런 분위기에 쉬이 동참할 수 없었던 나의 맥락 속에서는 유아적 향유, 그러니까 감각 대상들을 낭만적 자연으로 한정할 수 있게 돕는 현실 기반들에 대한 무관심에 더 이상 못 본 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취미로 새 관찰하기를 말하며 존 케이지 덕분에 귀가 뚫리고 행위 예술가 덕분에 눈이 뚫려서 파악하게 되는 각종 (자연{인공}) 환경을 챕터마다 소개하고 있었다.


비가 그치자 서울숲을 걸었다. 10년만이었다. 서울숲 자체에 가는 건 얼마 안 됐지만, 오늘과 그때의 간격이 10년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합류했을 때 나는 혼자 빨빨거리며 도시의 인공들을 누리는 데 많은 시간을 썼었다. 그때 처음으로 '혼자'로서 입장한 곳이 서울숲이었다. 연못 근처 숲에 누워 하염없이 멍때리던 시간이었다. 길바닥에 눕는 버릇이 아마 이때부터 생겼더랬다.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 잔물결을 일으키는 연못을 보고 있자니 익숙한 감정이 느껴졌다. 철학적으로는 생태적 관계라는 말이 그나마 어울릴 법한데, 나는 이걸 도시 한복판에서 구현하고 시로 표현하고 싶었다. 벤치에 앉아 있었더니 개미들이 나를 더듬거렸다. 내 몸을 타고 오르는 작은 곤충 개미, 나는 그저 형태를 갖춘 하나의 사물이었다. 나에게서 전혀 감각되지 않는 그 감각으로 나를 더듬으며 나에게 작은 간지럼을 줬다. 견과류를 집어 먹으며 나부끼는 잎을 느꼈다. 인공 공원인 서울숲의 관리를 위한 무늬만 나무 새장도 시야에 들어왔다. 다리 위에서 카메라들이 찰칵찰칵 거릴 때 어디선가 새 소리가 들리고. 몇몇 여자들은 서로 찍어주기 위해 연못을 빌리고 나뭇잎을 빌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읽으면서 환기되었던 건 나의 관심이었다. 수년간 실마리조차 잡지 못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병적 도취자가 되었으니, 세간의 적절한 용례와는 별개로 나는 나 스스로를 나르시스트로, 자기도취자로 일단 내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부당하거나 부적합하거나 도리어 전혀 연관이 없는 면모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때로는 진실에 직면하기 위해 누명을 자처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특히 그 진실이 그동안의 삶을 지탱해온 것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붙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만적 자기 반성은 정당화와 합리화를 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진실과 위장이 너무 딱 달라붙어 있어서 갑자기 떼어내면 아무는 데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나는 언어를 사랑했고, 언어만이 세계와 관계맺는 유일한 통로라고 굳게 믿었었다. 연원이 무엇이 됐든, 인간은 본래 언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가 없다. 언어를 언어의 방식으로 살게 할 수가 없다. 인간은 언어를 수단이자 도구로 여기는 데 특화된 동물이다. 이 몰입에 일차적으로 균열을 줄 수 있었던 건 쇼펜하우어의 박사 논문과 정현종 선생님의 한 문장이었다. 그 문장과 함께 시 한 편이 있다.


말의 형량, 사랑 사설 셋 - 정현종 (13.09.03)


한 알의 말이 썩는 아픔, 한 덩어리의 말이 불이 타는 아픔, 말씀이 살이 된 살이 타는 무두질의 아픔, 제가 하는 바를 모르고 하는 저 죽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말의 이별의 슬픔, 이별 슬픈 말, 완강한 어둠의 폭력에 상처 입은 한 줄기 빛의 예리한 아픔의 아름다움, 어둠 긁는 말의 마디마디에 흐르는 피의 아픔의 아름다움, 어둠 슬픈 말, 꽃도 피면 시드나니가 아니라 시듦의 향기화, 죽음에 향기를 충전하는 삶의 필요성, 큰 죽음은 크게 반짝이고 작은 죽음은 작게 반짝임, 별 하나 나 하나, 두려움, 말의 두려움, 말 하나 나 하나의 두려움, 말을 사랑하는 두려움, 말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 말의 사랑을 모르는 자의 무신적(無神的) 폭력, 가없음, 분노, 가엾음의 분노, 분노의 가엾음…… 말이 머리 둘 곳 없으매 시대가 머리 둘 곳이 없다.


날짜 기록은 발췌한 나의 기록이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지만, 정현종 선생님의 수필집에 수록된 글 한 편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는, 말에 의해 대접받고 싶어 하는 만큼, 말을 대접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이 문장을 오롯이 알기 위해 수백 번을 곱씹었었다. 웃기게도, A4 2장 정도 되는 그 글 한 편을 처음 읽었을 때 나의 소감은 '뭔 소리지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다'였다. 그런데 평론가로 활동하시는 선생님이 친절히 독해를 해주시고(그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대학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건 학생 신분으로 참 복이었다는 회고가 든다) 다시 보니 이제서야 그 말뜻이 매만져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부터 말과 글을 있는 그대로 대접하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리석은 학생은 아집도 강하고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애송이일 뿐이었다. 나의 열망이 운좋게 '너는 너의 길을 가라'고 지지해주는 선생님들을 만나 꺼지지 않았을 뿐, 그렇다고 그 한계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걸 가뿐히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저 문장을 제대로 깨우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얼마나 오만하게 이해했으면 이 지경이 되도록 모르고 살 수 있는 건지. '말을 대접한다'는 걸 '말에 의해 대접받고 싶어 한다'와 연결짓고 있다는 걸 알아낼 수 없었다. 이 두 문장 사이에 놓인 공백, 말의 두려움을 전혀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이것이, 언어의 사랑에 대한 나의 유아적 의존성이다.


나부끼는 잎들을 보며 안과 밖을, 자생력을 느꼈다. 바람이 어디로 어떻게 불든 잎은 거부하지 않고, 본인의 생을 산다. 이런 감각이 열리고 나면, 나는 늘 씁쓸했다. 그래서 이런 감각의 순간을 시로 쓰는 일에 메스꺼움을 느꼈다. 얼마나 깨지기 쉬운 언어인지, 흩날릴 거란 두려움에서 비롯된 거부감은 아니었다. 자연물을 대상으로만 이런 감수성이 확장되는 게 심장이 서걱거리는 느낌이었다. 90년에 도시에서 태어난 나는, 자연에 대한 신념이 없었다. 사회와 도시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책을 읽어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흔적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불가해한 출생에 있어서 환경은 이미 나에게 그런 걸 제공해주고 있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내 삶에 있어서 벌어지고 만 비극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 고통을 성찰하도록 부추겼을 따름이다. 그 덕에 나는 병리적 언어에 대한 민감성이 발달했다. 여기서 말하는 병리적이란, 고통을 회피하고 예방하기 위해 포착된 공격성이다. 이 부분에 나르시시즘이 달라붙어 있었다. 어느새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바깥의 '말'들에 대접받고 싶어 했고, 그렇지 않을 때 그 공백을 또 다시 말로 채우려고 했다. 여기는 기만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강력한 합리성이 개입되어 있다. 폭력과 잔인함의 완충 역할로서 '소통과 대화'에 소위 이성을 접목시키는 작업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도착해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이 과정의 든든한 신뢰 관계가 '법과 제도'에 귀속되어 있다. 하지만 사랑에서는 부차적인 역할, 돌려 말해 고통의 몸부림에 국한될 뿐이다. 이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 고통을 틀어막으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 루만에게 감사하다.


내가 또래 친구들과 잘 섞일 수 없는 인격으로 성장하고 말았다는 건 20대 초반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건 사회화란 이름으로 설명될 수 없는 구조다. 나는 관계의 발전과 지속을 굳게 믿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격적 소통에 소위 몰빵한 것이다. 하지만 도시는 비인격적 소통을 적극 권장하고, 또래 친구들은 이에 나만큼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반대로, 나는 비인격적 소통에 극도로 거부감을 느낀 나머지 그런 장소, 사람, 역할을 어떻게든 피하고 도망치며 산 것이다. 이를 비대해진 개성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실지로 포기할 마음 없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전심을 다한 게 도취의 죄라면 죄겠지만. 내가 느낀 소통에의 허무함과 관계의 외로움 등은 이 시대착오에 따른 죄값에 불과하다.


만약 자기도취의 구조를 또 오만하게 이해하여 나의 문제를 잘못 다룬다면,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어리석게 살게 될지. 사실 이런 건 별로 관심이 없다. 20세기부터 적극적으로 나타난 '보험 산업'에서 형성된 리스크라는 의식이 나에게 들어오기엔 너무 멀리 가 버렸으니까. 나는 삶을 사는 데 관심이 있지, 삶을 처리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 21세기 도시 사회랑은 너무 틀어질 수밖에 없는 태도지만, 어쩔 수 없다. 만약 변화한다면 그건 지금까지 발견할 수 없던 삶을 발견했다는 증거일 테니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조카는 언제 세상에 올까? 수정도 안 됐는데. 갑자기 딴 소리지만 누나랑 매형이 자녀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벌써부터 반길 준비 하고 있는 철딱서니 없는 삼촌이 있다는 걸 몰랐으면 싶다.






언어를 놓아준다는 건, 나에게 있어 지금까지의 삶을 놓아준다는 것과 동일한 무게의 악수다. 이 화해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아직 감은 안 오지만, 그동안 한 짓이 있어서 돌려받아야 할 책임이 막대하다. 시를 쓰기 시작한 이래로, 내가 얼마나 언어를 함부로 대했는지 감히 고개를 들 수 없다. 내가 이러니 다른 사람의 시를 볼 때도 얼마나. 그동안 소위 분리 작업을 한다고 했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수많은 작가들의 시론과 비평들을 얼마나 겉핥기로 읽었던 걸까. 언어는 기계 장치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기술은 본인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다. 그걸 반성과 성찰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니.


강박이 조금씩 와해되는 게 느껴진다. 자연에 대한 오만과 추상에 대한 오해가 만든 합작품이었다. 자연이 있었기에 인류에게 '자연'이 자리잡은 것인지, 인류가 자연을 욕망했기 때문에 자연이 된 것인지 조금 알 거 같다. 플루서 선생의 말마따나, 우리 세대는 분명 추상적 체계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개진시키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에 살고 있다. 기든스였나, 루만이었나, 추상적 체계의 만연이 개인적 무의미함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했는데(세넷이었나?) 마르크스의 고통과는 상황이 더 급진되었기 때문에 그 만연의 의미를 자연으로 구상화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다. 도취의 고착을 용해시키면 비로소 실마리를 붙들 수 있게 될까? 내 안에 자리한 언어의 사랑이 너무 시대착오적이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 탄력성이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나타난 건 시대불문 통하는 것이겠지만.


말을 대접하는 걸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번에는 오만하게 굴고 싶지 않다. 의지다. 이런 삶이란, 오늘날 참으로 유취한 삶이겠지만 이것 만큼은 결코 포기할 마음이 없다. 자기 도취와 최선으로 타협한 선이니, 나 또한 이 선을 함부로 여겨선 안 된다. 유아적이니 사적이니 하는 사람의 환상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불가해한 사실이라고, 사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의 요청에 따를 수밖에. 산업자본주의 속에서 휘몰아치는 피상성과 이미지, 나르시시즘을 거부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욕심이 고도화되면 결국 초연함으로 둔갑될 텐데, 그럴 때마다 땅을 쳐다보기로 했다. 초연함은 날개가 꺾여서야 비로소 제 기능을 할 수 있기에, 지금은 믿을 수밖에.


과거에 대한 냉담함, 미래의 거부, 하루 하루 살겠다는 결심. 이런 마음들이 일상생활에서 라이프 스타일이 된 현대의 삶 속에서 꺼져가는 불빛 중 하나는 삶에의 개입이다. 나는 이 개입이 게임 플레이어에게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10대 때부터 줄곧 지켜봐왔다. 과거 선배 시인에게서 이 '삶에의 개입'은 비장하고도 기투企投와 같은 생으로써의 의지였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이 개입이 파편화되고 휘발적이게 되었다고 한탄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 '재미'만으로 엮어서 놀이나 게임으로만 다루고 싶지도 않다. 나는 우리 세대가 이 '삶에의 개입'을 위한 길을 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김정환 시인의 시 한 편,


시(둘) - 김정환


응 그건, 그들이 아직 너를 관상용으로만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지
너의 피와 땀과 더러움에 개입하기 싫다는 거야
바라는 것은 참신함뿐이야 그들은
몸 섞기는 싫다는 거지
응 그건,
나는 한몸이 되고 싶기 때문이지
같이 가고 싶기 때문이야
더러운 혈관이 깨끗한 식물보다
최소한 따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야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생애야 너의 일생으로
그들의 피와 살과 뇌세포가 되는 일이지
개입하는 일이야 서로의 삶에
모자란 만큼 피와 땀과
비린내나는 살덩어리로

- 좋은 꽃, 김정환, 민음사


익명성과 비인격적 관계를 양생하는, 현대 삶의 고난스러운 상황에서 이는 불가능한 일로만 여겨지고 있다. 언어를 놓아주자는 나의 마음은 이와 별 다르지 않은데, 나는 그 태도를 반대로 삼고 있다. 몸을 던지기 위해 던져질 준비를 하는 것. 제니 오델은 '아침에 유의미한 싸움을 하기 위해 밤에 힘을 충전하는' 의미로써 거부하는(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들을 역설한다. 이 과정이 꽤 험난하고, 험난한 이유는 우리가 이 행위에 온갖 자기 도취적 욕구들을 덧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할지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의 관심은 놓아줌으로써 나타나는 '공백'에 대한 관심, 즉 현실의 틈새다. 이건 확실히 예술가들의 비밀 코드였고, 철학자들이 수호하고자 개념 창안을 한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전문직이 아님에 유의하자. 의존성을 유도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오늘 10년만에 찾아간 서울숲에서 놓고 온 건 슬픔이자 보살핌이었다. 이별의 언어는 너무 과잉되어 말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 오늘날이지만, 나는 오늘 그들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아봤다. 분명, 오델 말대로 절제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너무나 깨지기 쉬운 것들, 그것이 언어의 사랑을 도취시킨다. 결국 나란 인간은 취약함에 맞서야 하고 그 과정 속에서 헛다리도 짚어보고 잘 딛기도 하고 나아가기도 한 것이다. 과정에 대한 인상은 없다. 늘 지금, 여기일 뿐. 희미한 깨우침으로, 나는 시간이 충동이라는 문장을 쓸 수 있게 됐다. 이제 잘 시간이 됐다. 조너선 크레리가 그러던데, '잠'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침략하지 못한 우리의 보물(비밀)이라고. 잘 지키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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