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17
FMD(Fasting Mimicking Diet)를 시작한 지 약 10개월이 흘렀고, 현재는 1달 1번 기준으로 6회차 진행 중이다. 미용이 아닌 건강 목적으로 식단에 마음이 이끌린 건 작년 8월. 막상 시작하기까지 심리적 허들이 높았다. 가장 먼저, 집에서 이 복잡한 재료들을 하나하나 다 사서 매 끼니마다 만들어 먹어야 한다고? 거기에 생 오이는 끔찍이도 싫어하는 유전자가 있는 탓에 오이가 들어가지 않은 식단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 번은 간편 식으로 먹는 FMD 도시락이 있어서 먹었던 적이 있는데, 억지로 오이 먹느라 정말 고역이었다. 억지로 먹으라면 구역질 참으면서 먹을 수는 있지만 심리적으로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역시 건강에 유의미한 활성화가 도모될 수 있다는 인식에 믿음이 생기니 허들은 결국 넘어졌다. 레시피는 보미가 선물해 준 책에서 갖고 와 1인 가구 자취생 입장에서 만들 수 있는 걸로 조합했다. 덕분에 매 끼니마다 들어가는 재료의 정량을 미리 알 수 있어 준비하는 데 수월했다. 지금은 아무런 심리적 허들 없이 편하게 해먹고 준비하고 그런다. 정신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지, 금액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후기를 남긴다.
첫 달에 FMD를 준비하는 데 약 25만 원이 들었다. 있는 재료는 거의 없고, 매 끼니마다 소량(약 30g에서 많게는 50g)밖에 들어가지 않기에 골고루 여러 가지를 섭취하려면 결국 최소한으로 다 사야 했다(5일 치 식단을 구성하기 위해 구입해야 하는 항목은 약 54개였다). 운 좋게 엄마 집에서 재료를 받아 오면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2일차에 간식으로 사과 80g을 먹어야 하는데, 이거 때문에 사과를 사려면 최소 1kg, 금액으로는 계절마다 차이가 있지만 5,000~10,000원까지 치솟는다. 그렇다고 한 개만 사기에 또 부담스럽다(1인 가구 기준으로 판매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한테 사과 1개를 받게 되면 식단에 들어가는 중량은 충분히 초과하는 것. 이 같은 조건들 때문에 준비하는 데 약 25만 원이 들었다.
5일에 25만 원이면, 매 끼니마다 약 5만 원 어치를 먹는 것인데, 칼로리는 첫날 1,100kcal, 2일차부터 800kcal를 섭취하기 때문에 금액적으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5일차까지 식단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날부터 남은 식재료를 먹기 시작하면 넉넉히 2주간 끼니, 만약 극단의 효율을 추구하면 한 달까지도 가능하다. 물론 현실적이지는 않다. 그리고 처음 살 때 산 거를 다음 식단 때 쓸 수 있기에 소급되는 것들도 있다. 기름류가 특히 그런데, 생들기름과 현미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은 한 번 살 때 소량으로 사더라도 3달은 간다. 견과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건조된 나물과 버섯을 활용하면 훨씬 소급시킬 수 있다.
이렇게 누적되면 다음 식단 때는 약 15~20만 원으로 내려오고, 좀 더 현명함이 생기면 10만 원으로도 준비 가능하다. 그랬을 때 최소 10일 치 식비를 10~20만 원으로 잡으면 매 끼니당 1~2만 원으로 잡히므로 그렇게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니다. 물론, 몸에 건강한 것만 넣어주는 건 기본이다. 이런 방식으로 FMD를 5번 진행했고, 지금은 6회차 3일째에 있다.
원래 FMD 중에는 담배도 피지 말고, 커피도 되도록 마시지 말아야 한다. 살다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먹는 중독' 끊기는 그나마 간접 체험으로 훈련병 때 해본 게 전부였다. 훈련병을 거친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들어가는 순간 '간식'은 사라지기 때문에 평소에 '당 의존도'가 얼마나 높았는지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그러다가 주말에 종교 행사에서 초코파이나 몽쉘 따위의 초코를 입에 갖다 댄 순간 영적 체험에 근접해지는 건 거진 모두가 겪는 일이다. 하지만 FMD 식단은 다르다. 바빠서 끼니를 거르거나, 작업에 몰두하느라 먹는 걸 제쳐뒀던 시절은 몇 번 있었어도 철저히 제한된 식단을 하는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이름부터가 '단식 모방 식단'이다. 몸이 단식을 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속이는 식단이다. 이를 상품으로 유행시킨 롱고 박사의 식단 구성은 지중해식이라는데 해외 배송도 해외 배송이지만 왠지 심리적 허들이 좀 있었다. 사실 금액으로 따지면 별 차이는 안 난다. 하지만 배대지를 이용해야 하는 식으로 배송이 까다롭기 때문에 결국 한국식에 맞춰서 조달할 수 있는 재료로 식단을 짜는 게 더 편리하다. 원래는 단식 따위 하지 않다가 몸에 아무것도 넣지 않으면 가장 먼저 두통이 심하게 찾아온다.
첫 FMD 첫날 머리가 너무 아팠다. 금연은 1~2일차에 때려쳤다. 식단이라도 끝까지 버티는 게 목적이었다. 하루 식단은 총 3개로 나뉜다. 약 300kcal 되는 끼니를 2번 먹고, 간식으로 과일과 견과류, 생들기름을 먹는다. 처음 만들어서 먹었을 때 의외로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맛도 좋았다. 그런데 정말, 금방 소화가 된다. 그리고 미친듯이 먹고 싶은 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 번도 안하다 시작한 첫날은 두통이 극심하다. 버티는 게 보통의 최선이라면 최선이랄까. 몸에 기력이 빠지기 시작하고, 하루에 정해진 식단으로만 먹고 버티다 다음 날이 되면 정말 미친듯이 배가 고프다. 예민해지고 스트레스가 누적된 정신 상태가 된다. 2일차가 가장 고비다. 이 날은 되도록 혼자 있어야 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 버티는 게 한계다.
그러다 3일차가 되면 슬슬 할 만해진다. 점점 여유가 생긴다. 기분도 좀 더 나아지고, 몸도 이제 공복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4일차까지 수월히 지나가고, 5일차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그렇게 식단이 끝나면, 이미 몸이 적응해 버려서 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먹는 거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그냥 남은 식재료 구워 먹고, 몸이 가벼워진 걸 느낀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맑아진다. 처음 FMD를 마쳤을 때 샘솟는 긍정적인 기운과 간만에 가벼워진 느낌을 만끽하는 정신력은 꽤 달콤했다. 이거 때문에 거진 2달에 한 번 꼴로 FMD를 하게 됐다.
물론 충분히 더 효과볼 수 있는 걸 스스로 가로 막은 건 바로 담배다. 지금은 금연도 하고 있다. FMD 2회차부터는 예민함도 사라진다. 다시 평소처럼 먹고 싶은 거 먹고, 시발비용으로 정크 푸드 몸에 쳐 넣고 해도 2회차 첫날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 일단 두통은 없고, 먹고 싶은 거 미친듯이 생각나는 건 똑같아도 예민해지지 않는다. 혹은 조금 예민해진다 해도 통제 못할 수준까지 가지는 않는다. 2회차 2일차도 마찬가지다. 견뎌내는 건 마찬가지지만 확실히 할 만한 느낌이다. 그러다 또 3일차부터는 쉬워진다. 2일만 버티면 3일부터 5일까지는 쉽다. 그렇게 FMD 3회차, 4회차 쭉 거치다 보면 점점 쉬워진다. 6회차인 지금은 금연도 하고, 식단 중에 운동도 한다. 몸에 기력이 없어서 좀 버거운 느낌은 들어도 못할 정도는 또 아니고, 무엇보다 정신 자체가 냉정하게 할 수 있다는 감각 신호를 준다.
이번에 담배도 같이 끊으면서 다가온 변화 중 하나는 바로 시간의식이다. 놀랍게도, 시간이 느리게 가고 있다. 이건 정신이 활성화되었다는 증거인데, 나한테 담배가 맞지 않은 건지, 혹은 담배 때문에 머리가 돌지 않기 시작한 건지 좀 더 확실한 체험을 하고 싶다. 맞다 싶으면 바로 끊어버릴 거 같은데 아니더라도 몸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건 소중하기 때문에 굳이라면 굳이랄까. 커피는 확실히 줄이긴 줄였지만 완전히 끊지는 않고 있다. 달달이랑 커피는 못참지...
FMD는 살을 빼기 위한 목적은 아니지만 살도 쭉쭉 빠진다. 살 좀 빼야겠다 스스로를 옭아맨 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어서, 여태 살 좀 빼야지 하는 건 정크 푸드 많이 먹지 말자는 식의 스스로에게 가하는 경고에 그쳤을 뿐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근데 FMD를 한 번 하면 최소 4kg은 빠진다. 지금 72kg 나오는데, 하기 전에는 80kg에 가까웠다. 살면서 가장 살이 많이 쪄본 적은 85kg 이상이었던 고2 여름인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여름 방학 때 한 달 동안 약 15kg을 뺐는데, 당연히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고 그냥 심리적으로 먹고 싶지 않아지고 새벽마다 허망한 마음 달래러 바깥 쏘다닌 게 '나도 모르게' 살이 빠지는 결과가 되었었다.
FMD는 한 번이라도 하면 좋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2번 혹은 6번 등. 나는 1년에 10~12회를 목표로 삼고는 있다. 현실적으로 여건이 안 되어도 6~8번. 그만큼 효과가 좋다. 가만히 두면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하는 몸의 균형을 조율하는 느낌이다. 기계 장치로 보면 유지보수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때는 몸에 들어오는 걸 최대한 제한하고 몸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정화 작용을 믿는다. 면역에의 숭배 의식이다. FMD 한다고 이렇게까지 의미부여 할 필요는 없지만, 21세기 인간학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면역이기도 하다. 8~9월이면 FMD 1년차가 되는데, 꾸준히 하면 할수록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기대된다. 이미 고혈압이나 당뇨 전조 증세, 복부 비만, 몸 관리에 어떠한 신경도 쓰지 않아 이미 난리난 상태라면 의사랑 상담 후에 진행하라고 한다. 어쨌든 '단식'이라고 하는 행위는 몸을 죽음으로 내모는 듯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 짓거리도 건강한 30대니까 마음껏 편안히 하지 이미 무신경으로 망가뜨려 놓고 할라하면 엄두도 나지 않을 테다. 특히 정신 작업을 밥먹듯이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싶다. 문제가 없다고 느껴지면 상관없겠지만 원하는 걸 하는 데 지장을 느낄 만큼 뇌 기능에의 통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래도 꾸준히 시도해 볼 만하다. 일단 나는 효과 보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지만, 이 책에 나온 레시피 중 '스무디'는 절대, 절대, 절대 따라 해 먹지 마시오.... 진짜 조오오온나 맛이 없습니다. 그냥 각 재료를 지져서 후추 좀 뿌려서 재료 본연의 맛으로 각각 먹는 게 낫지 굳이굳이 죄다 섞어서 갈아갖고 스무디로 마신다는 건 도대체 왜? .... 비위가 강한 편에 속한 나도 정말 구역질 참아가며 먹은 뒤로 매번 따로 먹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