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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와 돌멩이 May 27. 2022

나의 동네, 상도 2

16.11.13


1


 바이올린의 영원한 현처럼 새벽의 울림은 가늘고 길다. 밖에는 이따금,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고양이들이 울부짖는다. 그냥 고양이가 울어, 라고 말해버리면 안되겠다. 고양이가 우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운다는 것, 사람들은 눈물을 보면 운다고들 하지. 이 시간이면 산 중턱에 견고히 서 있는 절에서 종소리가 들려온다. 그 질서한 종소리가 고양이의 우짖음과 섞인다. 한 동네의 이런 모습은, 새벽이라 좀 더 서늘하게 다가오는 이 소리는, 여태껏 거쳐 온 수많은 하루의 일들에 비하면 분명 사실처럼 느껴진다. 때로 이런 바깥의 소리가 더 진실 같다. 사람에게서 들리지 않는 정직한 소리들. 술에 취해 갈지자로 언덕을 오르던 취객에게도 이 울음이 전해질까? 창밖을 내다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비가 오는 새벽이면 동네는 운다. 만약 누군가 곁에서 울고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다 울게 가만히 소리를 들어줄 것. 어떤 호의도 그의 슬픔을 저지할 순 없을 테니, 감당할 수 없을 테니, 같이 울어주거나 아득한 선율로 귀에 담아둘 것. 때가 되면 그 선율을 따라 울어볼 것. 그런 생각을.


 하지만 동네의 슬픔은 도리어 새벽에 깨어있는 나에게 있음직했다. 이 밤이 깊어지도록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무얼 하는지? 아무도 물어오지 않는 담담한 안부에 멀뚱거리는 눈으로 바깥을 응시한다. 하루를 다 보내느라 지친 허리를 베개에 기댄다. 두통은 멈추지 않고 바깥은 아직도 경우輕雨다. 사실 간밤 공원에서 세상 절반의 비겁들이 씻겨 내려가는 조금 기이한 기분을 받았는데, 용기는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을 향해 가는 일이라는 걸 거의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편도에 나는 탑승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직 달아날 준비가...' 하지만 세상의 모든 진실은 그 누구에게도 준비를 허락한 적 없었다. 우리는 그저 거짓을 말하면서 시간을 빌려올 뿐이었다. 진실을 감당할 시간을. 죽은 시간을 위한 애도를. 잠을 가로막는 이런 우울들은, 비가 오는 동네의 울음과 조율하여 깨어있음의 종말을 기다리기로 한다. 잠에 들면 모든 게 끝장이야, 일어나면 우리는 다시 하릴없이 살아가야 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이윽고,

 종소리는 멎고 동이 트기 시작한다.


2


 그러니까,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정말이지 참담했다. 도무지 사실에는 관심이 없단 식으로 등을 돌렸던 결심은 여름이 되서야 자신이 녹아 흐르는 걸 알아차린 것이었다. 이 겁 많은 겨울아, 너라는 계절은 잊을 만하면 이 땅에 내려와 모든 기분들을 깡깡 얼리는구나. 그래서 내 안의 너를 찾아 헤매게 만드는 구나. 겨울 너는, 날 얼리고. 여름 너는, 날 가둔다. 너라는 계절을 해마다 보내며, 너라는 의미를 수도 없이 매만지다, 결국 너는 은유였다는 지나친 진실을 마음에 박고서, 뚝뚝 떨구는 눈물로 텅 빈 종이에 헛된 글자를 박는데. 넌 날 떠나고 등을 돌렸다. 한 번도 도착한 적 없는 겨울의 여왕처럼, 소문만 무성해졌다. 잔인하고 매정한 소리. 하지만 돌이킨다 해도 용서는 서로를 피해갈 일이다. 누구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을 일이다. 그건 너무나 외로운 일이니까, 남겨진 한 손은 얼마 못 가 남은 손과 함께 자기 얼굴을 감쌀 테니까.


 겨울은 추위가 오해라고 손짓한다. 오해, 오해라니. 우리가 손을 잡고 걸었던 다리는 착각으로 된 징검돌이었을까? 자칫 실족했다간 손을 놓거나 둘 다 익사할 빠르기의 시간에 포위당한 섬이었을까? 어째서 손을 잡고 있는 동안은 세계가 물구나무를 섰을까? 동네에 머물던 그해 여름은 생애의 모든 여름을 통틀어 가장 열렬했다 말해도 괜찮을까? 그러니까, 항상 여름이었다. 모두가, 더위 같은 건 기억도 안 나던 여름밤이었다. 사찰 우물에 담긴 잉어들처럼 한 여름밤의 꿈을 꿨던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돌이킨다 해도 나는 또 겁 많은 겨울이 되어 나를 숨기고, 여름이 되서야 녹고, 헛된 글자를 박아대고, 아무것도 결정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여기서 너는 너만을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또 나는,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 없던 나는, 어떠한 주어도 될 수 없겠지만. 여름이 오면 누구보다 매미를 가장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3


 그러니까 이 동네, 상도.

 산이 있어 높이가 있는 동네, 상도. 고개에 오르면 도시 서울의 빛들을 둘러볼 수 있고 더 내다보면 한강을 가로지르는 대교의 별자리도 보이는 동네. 그 수많은 빛들이 밤이면 나타나 자기 앞을 밝히는데, 모두들 집은 잘 찾아갔는지, 아니면 집을 떠나왔는지, 거리의 배회가 한눈에 들어오던 동네. 내려다 볼 수 있던 그 높이는 유년의 외로움을 더욱 밝게 했고, 그림자는 더욱 어둡게 만들었지. 점점 내 안의 집을 앗아가는 것만 같았지. 살았던 대부분의 기억들이 묻힌 동네. 하지만, 그 기억들을 꺼내려고 하면 온몸이 굳는 걸 피할 수 없다. 한 번도 말해지지 않은 기억 앞에서. 그건 꽝꽝 언 강의 표면 밑으로 유유히 헤엄치는 붕어들을 바라보는 일처럼, 깨질까봐 조심스럽고 오싹한, 바로 그 경험. 붕어들은 자신의 경계에 포착되지 않는 시선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붙잡히지 않는 기억도 마찬가지다. 이런 쓰기는 허공을 향해 채를 휘두르는 것처럼 헛된 일일까? 어류들이 물을 대하는 것처럼 나는 동네를 대하며 살았고, 벗어나서는 결코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곳이 아니면 기억들은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유년이었다. 아니 정정하도록 하자. 단 한 번뿐인 유년이었다. 그 시절 모든 기억들의 모태는 동네였고, 하나의 세계였고, 전부였다. 따라서 내가 살았던 대부분의 기억들이 이 동네에 묻혀있음은 곧 이 동네에 대해서 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는 무력, 그 자체의 사실이었다. 반대로 2014년 여름, 서울 곳곳을 산책하고 다니던 그때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각색의 동네들은 외부인인 나에게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건 마치 그 동네에서 살아왔다는 기억마저 스칠 정도로 친숙한 것이었는데, 왜 그런 기묘한 추체험이 되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도시 서울이라면 으레 특징지어지는 주거 형태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혹은 지형이 제한한 구획의 산물일까? 앙리 르페브르(Henry Lefebre)의 말마따나, '공간의 양상은 인간의 행태를 그대로 규정'하기 때문에,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는 건 바로 그가 사는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동네들은 나의 유년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 기억나지 않던 동네의 기억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 성장이라고 하는 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갑작스럽게 꿈에서 깨듯 어른이 된다. 그때, 너무나 강한 힘에 이끌려 빠져나오고만 저 곳에, 아직 울고 있는, 잡고 있던 손을 놓쳐버려 놀란 아이가 있음에 황망해하지만. 사람이 흔히 꿈을 잊어먹는 것처럼, 그 유년은 쓰지 않으면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비밀이 되고 만다. 본인도 알지 못하는 본인의 비밀이. 그렇게 자신이 살고 있는 이곳이 물속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 어류들과 마찬가지로, 어른은 피부가 된 유년에 어떠한 신경도 쓰지 않게 될 것이었다. 상처가 나기 전까지는.


4


 다시 여름이 왔을 때, 5년 뒤 철이가 은하철도를 타고 지구의 별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세기말 아이들이었던 우리는 티비에서 상영되는 만화들과 남겨진 오후를 같이 보내곤 했는데, 기억에 남을 만한 만화들이 많았지만, 2021년에 은하철도 999를 타고 영원한 기계의 몸을 얻으러 떠나는 철이의 모험이 유독 인상 깊었다. 그것은 97년도의 일이었고, 앞으로 24년 뒤의 일이었지만,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19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5년 뒤에 정말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다. 철이는 지구를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지구에는 아직도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철이의 꿈은 불멸이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지구를 떠나야만 한다고 믿었지만, 철이는 앞으로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나와 또래가 기억하는 철이가 아닌 다른 철이가 나타나 다시 2051년의 우주철도를 타고 불멸을 찾아 떠난다 할지라도, 더 먼 미래에 나비 우주선을 만들어 못 살게 된 지구를 떠나려 한다 해도, 그곳엔 언제나 아이들이 함께 있어 정말로 떠나버리진 않을 것 같다. 그 증거로, 철이의 여행을 지켜본 우리의 눈동자가, 여전히 그 꿈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상도로 이사를 왔던 98년 5월, 때는 이미 외환위기의 그늘이 부모의 눈가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물론 그 그늘은 우리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서야 알게 된 사실들이 참 많았고, 그렇지만 당시 우리는 세기말 아이들이었으니까, 컴퓨터와 학원과 전혀 와 닿지 않는 종말 같은 절망 같은 소문만 무성한 겁들이 주변에 떠돌아다니던 그런 시기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노는데 여념이 없었다. 놀이에서 만큼은 모두가 꿈이 있었다. 비록 그 꿈이 동네에 국한되어있고, 우리들에 한정되어있고, 그런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한 그런 꿈이었지만, 전부였기 때문에 결코 소박하다거나 작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까지 온몸이 절도록 몰두하고 신경이 곤두섰던 시절도 생각해보면 드물었다. 그때 우리는 담마다 암호를 써놓는 놀이에 푹 빠져있었다. 그 놀이는 찰나에 결정된 제안이었지만, 곱씹어보면 꽤 복잡한 규칙을 전제로 두고 있었다. 먼저, 암호는 알아볼 수 있어야 했다. 가령, 동혁이 바보라는 메시지를 넣기 위해 자음과 모음을 이중적으로 흐린다거나 간격을 두어 멀리서 봐야 알아볼 수 있다거나 등의 어떤 조건 하에서는 반드시 알아볼 수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 놀이의 목적은 바로 전달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메시지라도 그냥 전달되는 것보다는 복잡하고 꾀까다롭게 전달되는 것이 보내는 이와 받는 이에게 재밌는 건 분명했다. 또, 암호를 해독하게 될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같이 놀던 우리끼리의 신뢰이자 동맹과도 같은 것으로, 각자가 사는 집, 행동반경 따위를 공유하고 있어야 어떤 담벼락에 암호를 남겨놓을지 고민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이 놀이는, 반드시 전달되어야 재밌는 놀이이자, 전달받고 싶은 욕구가 강할수록 재밌는 놀이였다. 집으로 돌아가다 암호를 발견한다 해도 시큰둥이 지나쳐버리면 놀이 자격의 박탈이었다. 암호에 관심이 없는 아이는 놀이에 낄 수 없었다. 우리는 이런 놀이를 꽤 오래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암호를 기억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성이 구 씨였던 그 친구가 남긴 암호는 나에게 여전히 해독불가다. 그는 마치 남기려는 마지막 메세지를 남기다 중간에 끊긴 것처럼 불완전한 암호를 두고 떠난 것 같았다. 그가 이사를 가고서 그의 집은 허물어지고 완전히 다른 집과 사람들이 들어서게 되었지만, 그의 집 맞은 편 담벼락에 새겨져있던 암호는 나에게 남긴 것이 분명했다. 당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넘쳐날 정도로 많았던 나는 항상 친구와 놀고 싶어 했는데, 그중에서도 구 군은 나와 잘 어울리던 가까운 친구였다. 우리는 주로 구 군의 집에서 놀았는데, 가면 구 군의 어머니가 사과도 깎아주고, 방해받지 않고 놀 수 있는 방도 있었다. 우리는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동네 골목에서 공을 차고 놀거나 둘이서 할 수 있는 온갖 놀이를 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만 놀라고 제재할 어른이 나에겐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놀이는 항상 구 군의 어머니에 의해 끝이 났고, 그럴 때마다 나에겐 항상 아쉬움과 외로움이 동시에 찾아오곤 했다. 그런 구 군이 갑자기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나는 세상 절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구 군은 그런 집안의 결정에 별다른 억울함이 없어보였고, 당사자도 아닌 나보다 담담한 편이었기 때문에 난 그의 앞에서 울 수가 없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상도동에 오고서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구 군이 동네를 떠나고서도 그의 집을 몇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의 집 맞은편 담벼락에 새겨진 암호는 바로 그때 발견한 것이었고, 내 이름 뒤에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자음 ㅅ과 ㄱ, 그리고 ㅇ은 여전히 선명하다. 어떤 방법으로 읽어야 하는지 알아내지 못한 사이에 그 담벼락은 얼마 못가 허물어졌기 때문에, 원본을 잃어버린 나는 그 암호를 지켜본 눈동자의 기억만을 파본으로 간직할 뿐이다.


 그때부터였을까, 동네의 모습은 빠르게 허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하나둘 동네를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지구를 떠나는 철이처럼, 어떤 목적과 수단들을 하나씩 가져가는 듯 했다. 같이 놀던 아이들도 더 이상 동네에서 놀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의 키는 점점 자라났고, 뭘 할까, 보다 이걸 해야 한다, 는 것들이 점점 많아졌다. 저마다 각자의 일상을 선택해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동네에서 놀지 않게 되었다. 갈 수 있는 반경이 넓어질수록 다른 동네, 다른 학교, 다른 지역들을 드나들 수 있게 된 우리는 도시의 한 동네 안에서만 한정되었던 꿈들도 그 부피에 맞춰 키워가는 듯 했다. 변호사, 의사, 사업가, 과학자가 되고 싶다던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이 아니면 나타나질 않았으며, 사실은 막연하고 그게 어떤 것인지 몰랐지만 무엇이든 정해야 하는 분위기에 떠밀려 사라진 아이들도 많았다. 동네의 문방구 앞 시멘트 바닥, 아스팔트로 포장된 골목길, 슈퍼 앞 게임기에서 친구를 만나기란 더 이상 불가능했다. 우리의 놀이 시간은, '그럴 시간이 있으면 공부를 해야지'로 풀이되었고, 뜻대로 우리는 온갖 참고서와 문제집을 풀어 가는데 일상을 보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동네에 좋은 학원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게 우리, 세기말 아이들이 새천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목표와 수단을 갖추고서 살던 곳을 떠나는 것. 철이가 지구를 떠나는 것처럼.


 나는 사실 철이가 어떻게 됐는지 이야기의 결말을 알지만, 이야기는 결말을 위해 시작되는 게 아니라 결말을 보고도 못 본 척하기 위해, 어쩌면 아무도 모르게 다시 쓰기 위해,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서 놀았지만, 저마다 다르게 기억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이야기가 살던 이 동네가, 시간이 흘러 동네를 벗어난다 해도, 다른 동네에서 그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성장통을 거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동네를 허물처럼 벗어 어딘가에 두고 지금까지 온 것이겠지만, 그것은 그 자리에 여전히 남아있지 않고 당신의 눈동자에 파본으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두고 가야하는 그 마지막 순간에 뒤돌아 본 장면으로, 원본을 잃어버려 그 어디에서도 진실을 확인할 수 없게 된 그 기억으로, 몸과 마음 사이 그 아득한 시간성 속에서 우주먼지처럼 부유하며, 우연히 마주친 것들과 살을 붙여가며, 운이 좋다면 중력을 갖게 되며 그렇게, 당신이라는 그 자신과 함께 매 순간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운동하고 있을 것이다.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을 것이다.


5


  학교를 다니며 수도 없이 걸었던 은행나무의 긴 거리는 또 한 차례 썰물이 진 갯벌이 됐다. 학기가 오면 으레 학생들의 소란스러움이 끊이질 않지만 방학이 오면 느닷없이 처량해져서 보이지 않던 잡동사니들이 빼꼼 나타난다. 집과 학교 사이를 오고가며 고민과 시름을 지고 있는 나를 그 거리는 수년간 날랐다. 바람이 없는 곳, 나는 학교를 이렇게 불렀지만, 원래 그 호명의 본원은 산이었다. 동네에는 국사봉이라는 이름의 야트막한 산이 있는데, 유년을 외롭지 않게 했던 이 산은 산책하기에 알맞은 높이를 갖고 있어 시간이 흘러서도 자주 찾게 되는 산이다. 동네에 산이 있으면 산책로가 생기기 마련이고, 산 속의 생명도 살고 주민도 드나들기 위해 공생을 위한 울타리와 각종 문구들이 설치된다. 산에게는 모름지기 인간이 없는 편이 더욱 살기 좋은 형편인 게 맞지만, 그런 생각조차 반反인간적인 것이므로 산은 주어와 목적어가 되는 순간을 모면할 방법이, 인간에게는 없어 보인다. 더욱이 동네에 있는 이 산에도, 산책로도 있고 지금은 숲속도서관이란 것도 생겨 주민 생활에 좀 더 산을 가까이 두게 됐지만, 당시 유년 시절에는 숨은 길들도 많았고 야생동물(이라 부를만한 종 다양성은 실조 상태였지만)들도 자주 눈에 띄곤 했다. 또 그때는 산에서 나는 물은 몸에 좋다는 인식이 강했고, 약수터는 으레 건강해지는 물로 여겨졌기에 국사봉에서 식수를 받아쓰는 주민들도 여럿 있었다. 주로 새벽과 저녁에 아버지들이 플라스틱 물통을 역량껏 마련해 들고 나타났다. 주민에게 산이라고 하는 건 어떤 용도를 주기도 했고 그건 보통 건강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운동기구라든지, 약수터의 물이라든지, 오르내리는 산길이라든지 건강과 관련된 목적이 아니면 산은 다르게 사용되지 않았다. 유년에는 곤충 채집이나 이름 모를 온갖 풀들과 관련된 체험의 장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 범위도 산의 면적에 비하면 매우 협소한 것이라 동네에 있는 산을 형용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게만 여겨졌다.


 유년부터 산을 바람이 없는 곳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건 오솔길 때문이었다. 오솔길이라고 하는 건 혼자 걸어 들어가 나오는 길이며, 주변은 온통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나무들로 포위되어 있는 길이다. 그 길을 걷는 사람은 외로움보다는 고독에 더 가까워지며, 무엇보다 건물 사이를 걸을 때 듣지 못한 생소리들을 듣게 된다. 처음 오솔길에 들어서고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이 엄습할 때는 당황하다 이내 공포를 느끼게 되지만, 그 길을 똑바로 걷다보면 그 길이 명상의 길이라는 걸 알게 된다. 모름지기, 똑바로 걸어야 한다. 그것은 어서 다른 길이 나오기를 바라지 않는 걸 의미한다. 음미하며 걷는 것이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걷는 일이다. 그렇게 걷다보면 어느새 바람은 사라진다. 없어진다. 물론 이 순간 바람은 은유의 바람이지만, 세상의 모든 바람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감안할 때, 은유 그 자체로 사실이 된다. 그때에도 나는 책상 앞에서 온갖 결심들을 버리고 꾸기고 찢은 채 오솔길을 하릴없이 걸어 다녔다. 세상의 모든 것이 겉돌거나 떠나는 것만 같았고, 가끔씩 죽었다. 죽은 것들은 바람이 되어 어딘가로 떠나는 것 같았다. 그런 바람이 미지에서 불어올 때 나무들은 몸을 떨어도 말은 없었으니, 나는 떨어지는 잎을 단 하나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불온한 유년을 품은 동네 상도는 붙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기억을 맴돌고 있다. 이 동네를 나는 영영 쓸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때는 그런 사실에 낙심하여 '나의 동네는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라 쓰고 말았다. 동네가 유년을 품었다는 사실로부터 자꾸 덮어버리는 페이지의 내용은 '양식'에 관한 것이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아직 그 페이지를 읽을 수가 없다. 어릴 적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던 나에게 유난히 인상 깊었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진주의 양식인데, 그 과정을 요약하자면 생식선이 발달한 양식 조개를 절개하여 핵을 삽입해 대신 진주를 형성케 하는 것이다. (물론 윤리적인 문제를 잠시 괄호치고서) 출산으로 보자면 대리모를 품종 개량처럼 양산해서 아이를 임신시키고 태어나게 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사람들은 반짝거리는 그 동그란 알갱이가 너무 예쁜 나머지 엄청나게 많은 양식조개들을 찾아내고 개량해 핵을 삽입하고, 수년간 진주를 만들도록 가둔다. 물론 그 과정에서 품질이 좋은 진주가 나오는 건 일정 확률에 따르고, 절반 정도는 양식에 실패해 죽는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진주라고 하는 건 한반도가 걸친 해역 근방에서 주로 양식되고, 특히 중국과 일본 쪽 진주가 이름났다고 했다. 기억에 의거한 이 내용의 신빙성과는 별개로 첨언하자면, 진주라는 알갱이를 목이나 귀에 걸기 위해 조개의 천연 생산 방식을 모방한 양식 기술을 도입하여 가공할 만큼의 진주를 뽑아내는 모습에서, 왜 나는 유년과 동네의 모습이 중첩되어 이중 인화되는 것일까? 내가 자꾸 덮어버리는 페이지의 내용을 감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우회한 곳에서 '진주의 양식'이라는 어떤 은유를 읽어버린 건 사실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동네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집들이 모인 공간이고, 거기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빠져나오는 곳이기도 하기에, 양식의 과정에서 지나치게 닮아있는 모습들을 못 본 척 넘어갈 수는 없던 것이다. 물론 적나라하게도, 동네는 누군가의 이력에 숫자로 환원되는 가치를 지닌 '이름'이기도 하다. 주거라고 하는 건 어디서든 설계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가치를 이용할 목적이라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그러니까, 평수라든지, 임대 주택이라든지, 가격이라든지 따져보려는 마음이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 태도가 동네로 확장되고, 도시로 확장되고, 나라로 확장되고, 포획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이름'들에도 닿을 수 있는 건,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주변에서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면, 어떤 아이는 그런 포획을 사람에게 해도 괜찮다고 믿을 수 있다. 충분히 이미 도착한 현실이기도 하다.


 동네를 보는 이런 시선이 점점 만연해지는 걸 느끼는 게 그리 소외된 감각이 아니라는 걸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뉴스들은, 정말 유년에 잠깐이라도 있었던 '나의 동네'가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 같은 낙심이 들도록 돕고서, 또 그런 기분이 드는 게 전혀 무리도 아니라는 듯 끊임이 없다. 좋은 환경과 좋은 교육에 혈안이 된 몇몇 사람들은 숫자만이 가득한 세계로 넘어가 핵을 삽입하듯 어떤 아이의 유년을 거기에 삽입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안다. 거기서 생장한 진주가 또 어떻게 거래되는지를 환유해서 상상해 본다면, 내가 간직한 동네라고 하는 건 얼마나 몽상이었는가, 침울해지기도 하는데. 나는 이 몽상을 공유할 또래가 갈수록 사라지는 걸 체감한다. 그런 동네가 있었다고, 우리가 바로 그렇게 놀지 않았느냐고, 이 골목길이 기억 나냐고, 말을 건넬 수 있는 타인이 점점 희박해지는 걸 체감한다. 하지만 양식에도 양식만의 세계가 있기에, 나는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원본은,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르기에, 내가 간직한 이 파본을 복원하려는 마음은 때로 양식의 세계에 있어 무용해질 수 있다. 어쩌면, 나는 동네를 되찾기 위해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철이가 지구를 떠날 수 없는 이유인 아이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이 동네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한때 모두가 철이였던 우리는, 목적과 수단을 갖고서 동네를 떠날 수는 있지만, 영원히 떠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도 재방영되는 철이처럼, 같지만 다른 방식으로, 다른 상태의 같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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