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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와 돌멩이 May 28. 2022

자생력

 2022-02-12


 약물의 부작용을 의식해 서랍에 넣어두었던 알프라졸람을 꺼내 먹었다. 약 4년 6개월 만이다. 구원받았다.


 괴로워하던 지난 나를 의식하니 슬픔이 밀려온다. 고작 손톱만 한 흰색 덩어리 하나로 이렇게나 괜찮아질 수 있다니. 눈물은 아직 흘리지 않았다. 아껴두려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나의 상태가 너무 좋고 감사하다. 차분한 게 이런 거구나. 집중할 수 있는 게 이런 거구나. 신경 과민을 억누르며 괴로워하지 않는 게 이런 거구나. 처음 알프라졸람을 먹었을 때도 그랬다. 약을 먹은 나의 상태가 일반 사람의 상태라고 생각하니 그들이 너무 부럽고 다행이었다. 약을 먹기 전까지는 이런 걸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괜찮다'는 게 뭔지 체감하고 나니 참 끔찍하다.


 나는 살면서 여러 병자를 만났었다. 그들의 소수자성을 고유성으로 생각해 은근히 자랑하려는 생각은 아니다. 물론, 이런 나의 경험을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람에게 꺼내면 그들은 호기심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뭔가 특별함이 없는지, 마치 자극적으로 연출된 주인공을 기다리는 태도 말이다. 나는 그들을 대중, 그저 그런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순간적으로 중개자가 된다. 내가 만나고 겪은 병자의 이야기를 대신 하게 되는 사람으로 말이다. 많은 인간들이 '뒷담'의 형식으로, '가십'의 형식으로 이런 이야기를 아무런 도덕적 부담 없이 즐기겠지만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중개자가 될 때는 딱 한 가지만 생각한다. '우리가 그렇지 뭐'. 내가 평범함과 평준화를 지향하는 건 특별함을 겸손함으로 위장하는 도덕적 우월의 은밀한 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고 이야기하고 대할 때 드는 상대적 신경 비용의 균형을 위해서다. 신경 비용이라니. 그렇다, 나는 이 '신경쓰게 만드는 온갖 상황'에 대해 비용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다. 가격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관점이니 하는 것들은 조금 미루기로 하자. 짐멜은 돈에 담긴 무가치성이, 즉 '비천함'이 온갖 것들을 돈으로 환원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봤다. 돈은 그 자체만으로는 가치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의 가치가 될 수 있다. 이 발상은 실물 화폐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세상을 이해하는 데 무척 유용한 은유 모델이다. 다시 말해, 신경 비용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의 가치가 그 비 가시성으로 인해 참으로 많은 오해를 낳고 있다는 걸 지적해 둔다. 


 항불안제를 먹고 세상에 구원 받았다는 참으로 거창한 감상을 내뱉는 사람이 여기 있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지 않다. '괜찮아'지고 나니 밀려오는 자기 동정과 연민이 참으로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초연하다. 그래, 그렇게 살고 있었구나. 나의 정신을 어지럽히고 내 삶을 서서히 망가뜨리고 있는 물질적 정체는 없다. 은유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나는 평생 이 대상을 의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처음엔 어둠이다. 그리고 구멍이다. 그러면 절벽이 보이고 매달린 나의 팔이 보인다. 이 팔의 이름은 '노력'이다. 제 몸조차 견뎌내는 게 전부인 노력이다. 누군가에겐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감각에 이 팔이 쓰인다. 나는 가만히 있는 게 노력이다.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 물리적으론 중력이다. 이 중력의 은유는 바로 불안이다. 항불안제의 효과는 나의 심리 안에서 이런 식이다. 발을 땅에 디딜 수 있는 거였구나. 차분해질 수 있는 거구나. 구원이라는 말이 자석처럼 달라붙는 이유다.


 평소에 나는 어떤 상태인지, 나는 제대로 분간해낼 수 없다. 비교할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항시, 늘 그렇다. 이렇게 약을 먹어야지만 괜찮은 게 뭔지 알고 안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숨만 쉬어도 불안하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자극적인 현실 사건이 벌어져야 불안하겠지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부럽다. 이 불안은 이유도 알 수 없고 정체도 알 수 없다. 심도 깊게 불안과 손을 맞잡은 저자들을 책으로 만나도 사실 그다지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시오랑이니 블랑쇼니 훌륭한 선배들이 있어도,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다. 난 그들의 불안을 존중하지만 슬프게도 나의 불안을 존중해줄 사람은 없다. 시오랑 선생을 흉내내서 나도 태어남의 실존에 불안을 예속시켜 보기도 한다.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현실의 불가항력에 복수를 감행하려고 시도도 해 본다. 참, 무해한 비극이다.


 정신의 집중이라는 이 느낌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눈물이 나올 거 같다. 그래, 우울도 있었겠지 아무렴. 나라는 인간의 정신은 참 불편하고 성가시다. 일반 인간들이 기피하는 소위 '부정적'인 것들을 친하다고 생각하다 못해 더 가까이 두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자각을 못한다. 이걸 병이라고 말한다면, 병식을 못한다. 난 내가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이정도로는 불안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병자를 만나더라도 똑같다. 일반인들은 기겁을 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겉으론 티를 안 내도 속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정직함과 솔직함, 순수함을 본다. 나도 인정한다. 나는 대중 혐오가 있다. 일반인 혐오도 당연히 있다. 그들에게 상처 받은 수많은 세월을 보상하라고 하지 않으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적어도 많은 수의 범죄자와 혁명가, 반동분자들은 그런 선택을 하겠지만. 그런데 대중이니 일반인이니 하는 표상은 당연히 허구다. 나는 허구에다 대고 혐오를 하는 꼴이다. 실제 사람을 만나면 이 허구는 당연히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나에게 쌓인 피해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에 불과할 뿐이다. 혼자서.


 혼자. 나는 처음에 혼자가 혼자魂者인 줄 알았다. 혼 같은 사람. 그래서 세계 현실을 잘 못 배웠다. 특히 나의 부모는 나에게 부정적인 걸 안 가르쳤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하고, 지칠 때는 지치다고 말하고, 정신적으로 괴로울 땐 괴롭다고 말하는 걸 잘 안 가르쳐줬다. 특히 아비는 좀 비뚤어져서는 이 모든 걸 전혀 할 줄 몰라서 혼자 죽고 말았다. 이걸 곁에서 두 눈 똑똑히 지켜보며 자란 나는 조금 더디더라도 이런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항불안제를 먹고 나니 나도 똑같은 핏줄의 자식이다. 시발. 난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는데. 배웠다고 해도. 난 혼자라 할 수도 없다. 


 평소의 나는 가지에 매달린 나뭇잎이다. 도로에 걸린 현수막이고 전봇대를 잇는 전깃줄이다. 붙들려서 도망치지 못하고 온갖 바람과 먼지와 비와 눈을 무방비로 받아내야 하는 바깥의 수동체들이 나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쓸 때 수동어법을 좋아한다. 능동적인 건 구원이 필요없는 사람들에게나 즐겁겠지, 싶은 불만은 금기다. 나 같은 인간들은 사회의 온갖 금기들을 명령으로 삼고 있다. 열등해지지 않기. 사람들을 비교해 절하하지 않기. 나의 상태로 타인에게 피해 끼치지 않기. 나는 이런 걸 신경 비용이라고 말한 것이다. 왜 해야 하냐고? 나도 자주 물었지만, 이유를 알아낸다고 목적이 변하는 건 아니다. 나의 부주의로 그런 일들이 벌어지면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나의 불안이 바깥 현실과의 인과성을 갖게 되면 나는 무너진다. 이 고독함을 나눌 수 없다는 게 무해한 비극이다.


 약을 먹고 나니 알게 된 정체들 중 하나는 바로 두려움이다.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나 자신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잔인함과 폭력, 무지함과 유치함을 직면하는 나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건 변화다. 돈에 중독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여러 슬로건을 내밀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전한다. 자기 계발의 태반이 그렇다. 심리 상담의 핵심도 그렇다. 브뢰클링 같은 사회학자의 분석은 이 메커니즘을 냉정하게 인식하도록 돕는다. 그래서 내가 바깥에 나가 사람 앞에서 변화가 두렵다고 고백하면 내가 들을 수 있는 조언은 흔하고 뻔할 거란 예상을 하게 된다. 물론 기대도 안 하고, 도움을 바라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도 정신병자이면서 정신병자의 현실 개선에 큰 공헌을 하는 한 사람이 있다. 16년도에 정신병리학 모임을 운영하면서 어깨 너머로 소식을 접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책을 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그 책에서 정신병자들은 자신이 솔직하게 자신의 병을 오픈할 수 있고 또 정서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둬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여러 정신병자들을 만나며 살았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신뢰나 친밀감, 진정성 따위를 제공해주었을지 몰라도 내가 건네받은 타인의 구원은 없었다. 약을 먹은 나는 이제서야 솔직히 말한다. 나는 외롭고, 슬프고, 두렵고, 고독하고, 괴롭다고. 약빨이 떨어지면 나는 다시 '아무렇지 않다'고 정말로(!) 느끼면서 다시 불안과 동거한다. 약을 먹으면 나약함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약을 먹지 않으면 속이 곪는 바위가 된다. 


 그래서 내가 돌멩이를 사랑하나? 나는 사과와 돌멩이를 사랑한다. 최근 읽은 일본 정신의학자의 에세이에는 한 조현병 환자의 사례가 있었다. 그는 애완동물 포포를 사랑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포포가 죽었을 때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람쥐 인형을 사랑하기로 했다. 리스(りす: 다람쥐)는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 죽지도 않고, 실망도 시키지 않으니까. 생명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어서 무생물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다.


 나는 환자의 고백, 병상일기, 병자의 에세이 등을 좋아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리서치를 하고 찾아 읽는다. 아픈 사람들은 사람을 보고 자기 자신을 보고 세상을 본다. 멀쩡하고 오만한 사람들에게는 무시당하고 덜 자극적이어서 지루한 순간들이, 병자에게는 특별하다. 세상은 환자를 외면하고 냉정하게 대할지 몰라도, 오히려 정상인은 세상을 소외시켜 스스로가 소외된다. 여기서 말하는 정상인은 허구다. 어떤 이유로 허구가 필요한지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약의 힘을 빌어 고백하자면, 나의 허구는 두려움의 가면이다. 허구라고 말한 단어를 두려워서 직면하지 못하는 대상으로 우회해 읽으면 된다.


 한 정신분열증의 수기 리뷰란에는 어떤 남성의 절박함이 장문으로 적혀 있다. 그는 자신의 딸이 20대에 들어서 정신분열증(이제는 조현병이라고 말해야 하지만 사회적 편견과는 별개로 아직 해결해야 할 '분열'이 남아 있어 나는 자주 채택한다) 환자가 되었고, 그 파국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절규를 담아 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해질 수 있을까요? 모든 걸 내주어도 치료를 할 수만 있다면. 사회 한 편에서는 '정신질환'의 꼬리표를 단 인물들이 스릴러 장르로 연출되거나 호러 장르로 연출되는 문화 상품이 돈을 받고 팔린다. 글을 쓸 수 있는, 또 그런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몇몇 사람들은 틈새 시장을 개척하는 듯 출판해서 수익을 낸다. 이런 단편들을 스펙트럼으로 엮어 돈과 정신질환, 사회, 문화, 인간을 종합해 온갖 도덕성과 양심, 진정성 따위를 결부짓기를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포기한 사람들은 호소한다. 그런 식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우리들의 용기와 도전을 봐주세요.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돈에게는 호환되지 않는 언어지만, 일단은 결제와 연결된다.


 나는 알프라졸람을 또 다시 처방받아 복용할까 고민한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언어로 도움을 받을 거란 기대보다 신경 물질의 간섭으로 참 기묘한 화학 작용의 해석이 유도되는 게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약물에는 선입견도 없고 오만함도 없고 자기중심적 해석도 없다. 알프라졸람이 사람을 차별한다면 나는 거부될까 용인될까? 내가 사랑하는 사과와 돌멩이에도 그런 건 없다. 그래서 나는 편하다. 같잖은 가치관을 들이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사과와 돌멩이는 허구가 아니다. 허구가 아니야. 오직 사람만이 허구다. 이해를 위해 덧붙이자면, 혼자라서 그렇다. 혼, 자. 혼의 두려움이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고 아비처럼, 히키코모리처럼, 세상 온갖 범죄자들처럼 변화할 용기도 없다. 미지에의 두려움을 느끼면서 포기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불안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의 강점은 바로 무지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게 단단히 보호한다. 사람들은 알의 껍질을 깨고 나아가라는 헤세식 낭만을 선호하지만, 나는 알이 깨어지지 않게 따듯하게 품는 걸 지향한다. 나의 무의식이 바로 단단한 껍질이다. 내 의식은 온갖 신경 비용을 들여 사람들이 느끼지 않게, 눈치채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내 껍질을 감싼다. 그래도 냄새는 냄새다. 눈치채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들도 딱 거기까지다. 그 너머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눈치채는 무시무시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생각만 해도 두렵다. 제발, 만나고 싶다.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제발 내 앞에 나타나줬으면 좋겠다. 내가 하지 못하는 파괴를 대신 해 줬으면. 모든 알을 다 깨뜨려줬으면. 내가 더 이상 보호하느라 두려워하지 않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코웃음이 난다. 슬슬 약 효과가 떨어지고 있나 보다.


 



2022-03-03


 '내가 쏜 화살을 내가 맞는, 미필적 고의를 우리는, 감동이라고 하네'.

 

 처음 이 문장을 쓰면서부터 나는 이 문장을 좋아했다.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를 겨냥해 화살을 쏘는 일. '언젠가 우연이 맞아 떨어지면, 과거의 나한테서 위안을 얻을 거란 느낌이 들어'. 실로 그랬다. 가슴이 저릴 때마다, 마음이 들끓어 어떻게든 써내야만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항상 맞아 떨어졌다. 조작할 수 없고, 의도할 수 없고, 그래서 연출할 수 없는 바로 그 '우연'. 우연은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 감동이라고 부를 수 있으니까.


 요즘 24년 지기 친구와 매일 7시간씩 줌을 켜놓고 글을 쓴다. 나는 이 친구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항상 응원하고 격려해 왔었다. 나의 첫 책 친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같이 만나면 정해진 루트로 시간을 보냈었다. 보라매공원 근처에 있던 '골드북'이라는 책방에 가서 오후 시간을 떼우고, 그래도 심심한데 돈이 조금 있다면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고. 만나서 각자 책 읽는 게 같이 노는 거였다. '골드북'은 지금 사라졌지만, 친구와 나의 유년 추억을 간직하는 장소다.


 나는 그 친구가 언젠가 글을 쓸 거란 믿음이 있었다. 판타지를 좋아하고, 자기만의 세계관을 그리며 흥미를 느끼고. 그래서 간혹가다 만나면 책을 선물하고, 쓸 수 있다고 격려했다. 그렇게 4~5년이 흘러 2월 말 친구의 생일날 우리는 처음으로 '같이 쓰기'를 시작했다. 


 나에게는 친구가 몇 명 있지만, 일상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 혼자가 되어, 아니 더 망가진 혼자가 되어 살아가던 요즘 친구와의 일상은 나에게 큰 희망이었다. 나의 고민을 얘기하고, 들어주고, 이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너무 그리웠던 모양이다. 상대방 이야기와 감정,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맞춰 공감하며 얘기하는 일에는 익숙하고 어렵지 않지만, 반대로 내가 그런 배려를 받는 일은 드물었다. 사실, 나는 나도 모르게 정말로 외로웠다.


 관심을 받고 싶고, 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세상에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아프고, 울음이 나오는 일이다. 받기를 기대하고 기다리지만 말고, 내가 먼저 다가가야지 따위의 말들을 혐오하는 이유다. 나도 그런 관심을 받고 싶다고.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왜 그 가치를 삶의 가치로 깨달은 사람은 만나기 어려운 걸까. 가슴 속 깊이 틀어막힌 푸념과 불만은 나로 하여금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는 일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고, 나의 고독을 정당화시켰다. 일반화와 사회화를 무시한 채 오롯이 나의 곤조대로만 말하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일이, 나에겐 먹히지 않았으니까. 여느 예술가나 철학가, 작가들의 일상으로 살 수도 있지만 나는 거부했다. 보편을 믿는 동시에 우연을 믿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벗어나고 싶고, 떠나고 싶고, (사실은 사라지고 싶다고). 어제 저녁 친구와 얘기하면서 나는 결정을 내렸다. 산에 가서 일출을 보고 오자. 그 결정이 20시였으므로, 지리산은 너무 멀어서 만만한 관악산을 선택했다. 준비를 하고, 막차를 타기 위해 22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일본인 친구는 전 남친이 자꾸 생각나 오늘도 우울하다며 전화가 왔다. 내가 산에 간다고 했더니, 이 시간에 왜 가냐고 물어왔고, 나는 솔직하게 마음이 힘들고 외로워서 그렇다고 말했다. 자살하러 가는 거냐고, 가지 말라고 삐지기 시작하더니 자기는 나한테서 힘을 받았는데 내가 힘든 줄도 모르고 자기가 나한테 힘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에 실망하고 제대로 삐지기 시작했다. 


 사당역으로 가는 4호선에서 나는 눈물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았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소외되었을까. 사실, 첫 연애부터 그랬다. 자신의 마음과 감정이 우선인 사람은 상대방에게서 그런 노력을 받았을 때 기뻐하지만, 정작 자기는 그런 노력을 할 줄 몰라 한다. 첫 연인이 나에게 '나의 마음을 알아준 사람은 너가 유일해'라는 말을 하고 나서 며칠 뒤, 산책을 하다가 대뜸 내가 외롭다고 얘기했을 때도 그랬다. 자기와 함께 있는데 상대방이 외롭다고 말하는 그 상황에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도리어 자기가 울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 소외감을 풀지 못하고 있다. 철학자가 말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싶지도 않고, 문학 비평가가 즐겨 쓰는 어휘들로 어렵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내가 기대하는 건 일상이고, 사소함이고, 평범함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아무리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어도, 사람 앞에서는 매번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그런 감정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난다? 사실 머리로 아는 것과 감정으로 행동하는 건 철저히 별개다. 그게 되는 사람은 머리로 몰라도 할 줄 안다. 그래서 실제로 겪는 상황이 아닐 때 아무렇게나 이해하는 척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코까지 차오른 눈물이 넘치지 않게 조심하며 관악산 입구에 도착했다. 친구는 길 조심하라고 진심으로 말해주고, 일본인 친구는 성의 없이 전화를 끊고는 아무 말 없었다. 아무도 없었고, 빛도 없었다. 00:30, 나는 관악산에 들어갔다.


 정상에 가자는 생각 외에 모든 걸 지우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 느낌, 정확히 6년 반 만이다. 그때는 사실 행복했다. 아무도 없는 어둠의 길을 혼자 걷고 있노라면 세상이 나를 받아주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제 편히 쉬어. 집에 잘 돌아왔어.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어둠의 거리. 인기척이 조금이라도 나면 산산조각 부서지고 마는 참으로 연약한 안식.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때는 잃지 않았던 걸, 지금은 잃고 말았으니까.


 그렇다고 관악산이 나를 받아주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산 속의 모든 것들이 편안하고, 차분하고, 살아 있었다. 6년 전에는 공포와 호기심이 뒤섞인 일종의 스릴에 가까웠고, 이번 관악산은 모든 걸 다 받아주는 느낌이었다. 오르면 오를수록 산등성이를 타 굉음을 내는 강풍이 불어 와도 기분이 좋았다. 어떤 생각들을 모조리 흩날려주는 기분이어서, 내가 잃었던 걸 알아볼 수 있게 잡스러운 걸 치워주는 기분이어서. 산행은 대체로 친절하고 편안했지만, 아마 아무도 없고 빛도 없어서 더 그랬다고 생각한다. 


 1시간, 2시간이 흐를 때마다 거대한 바위 꼭대기를 하나씩 넘었다. 어떻게 이렇게 위태로운 곳에 굳이 길을 내려고 계단을 짜놨을까, 하는 구간이 많았다. 산행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한데, 등산을 위해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노고가 꽉 찬 인공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거대한 암석 위에 오르려고 바닥에 닿지 않는 계단을 놓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발을 헛디뎌 떨어진다면, 나는 죽을까? 아무리 소리쳐도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이 곳에서. 사실 강풍이 불어올 때마다 그런 이미지가 문득 들기는 했지만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더 크게 느껴져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덧 정상 앞에 도착했다. 정상에 도착하면 3시 반에서 4시 사이. 해가 뜨려면 3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가다가 쉬면 동사할 거 같고, 그렇다고 계속 가자니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정상 근처에 연주암이라는 곳이 있길래 들렸다. 사람 형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불이 켜져 있었고, 촛불과 불상이 빛나고 있었다. 고개를 숙였다. 나는 나를 잃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강풍과 돌뿌리와 나무와 암석을 헤집고 도착한 빛이, 잊었던 감정을 일깨워줬다. 너는 너를 다 태우지 않았다고. 


 합장을 하고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래, 나는 이 시간에 여기에 온 이유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를 모조리 소진시켜 버리고 싶다고.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일출을 보는 건 무리라는 상황이 차라리 더 나았다. 어둠으로 들어가서 어둠으로 나오는 게 더 낫다고. 나는 빛을 보려고 여기 온 게 아니었다고. 세상을 밝히는 빛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태워서 제 한 몸 밝히는 게 전부인 빛을 보려고 온 거라고. 결국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다 울었다. 나는 너무 떠나고 싶은 나머지, 언제부터인가 나한테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 4시, 하산을 시작했다.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방향을 잡았고 서울대 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연주암에서 서울대로 가는 길에는 계단이 많았다. 왼쪽 무릎 뒤쪽이 끊어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즐거웠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천천히 가면 된다고. 이 감각을 느낀 게 얼마 만일까? 결국 슬픔이 밀려왔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사랑해, 내가 나 자신을 잃었어,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어, 뭘 쓰는 사람인지 모르게,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나는 일전에 다리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시를 쓰다 실패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시를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써내지 못한다. 내가 사랑하는 마음이지만,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건 다른 얘기여서. 내려오는 도중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새벽 바람이 부는 산은 습기가 가득해서 닿는 온갖 표면이 미끄러웠고, 두 발로 서 있는 죄로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웃음이 나왔다. 굴러 떨어지지 않는 구나. 사람도 없는데. 빛도 없는데. 안 죽이는 구나. 하얗게 얼어붙은 강가 바로 옆까지 얼굴이 가까워지니, 졸졸졸 물 소리가 들렸다. 걸을 때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렸다. 두껍게 얼어붙은 창백한 두께 밑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소리. 7년 전 학교를 나오면서 나에게 남은 하나의 단어는 자생력이었다. 불확실한 앞날과 나의 충동을 데리고 살아야함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죄로, 내게 주어진 건 자생력 밖에 없다고. 내가 쏜 화살을 내가 맞는 미필적 고의를, 감동이라고.


 모든 게 자생하고 있어서 나를 받아줬나 이 산은. 인간 따위는 하등 쓸모가 없이 느껴질 정도로 단단해서, 아무렇지 않게 싸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나 이 산은. 편하게 걸으라고 돌뿌리에 쇳덩이를 박아 넣어도, 굳이 굳이 오르겠다고 계단을 설치해도 내버려두나. 하산하면서 나는 세 번 미끄러졌다. 세 번. 산으로 들어가면서 나올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자생하는 이 산 속에서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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