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그 좋았던 시간에>
*지난 5월에 회사 복지카드로 김소연 시인의 <그 좋았던 시간에(2020. 달 출판사)>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서평을 제출해야지 하반기에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하여 쓴 글이다. 쓰고 보니 일기와 서평 사이의 어디쯤이 되어버렸지만. 일기조차 쓰지 않는 요즘에 드물게 쓴 글이라 남겨본다.
오전 여덟 시. 강남역 인파를 헤치며 걷는다. 제법 익숙해진 출근길이지만 매번 나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 든다. 유속이 아주 빠른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떠내려가는 물고기. 미로 같은 아케이드와 곳곳에서 밀려드는 사람들과 시끄러운 소음과 가요 속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는다. 그렇지만 얼뜨기처럼 두리번거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걷는 사람들 틈에서 도태되거나 덜떨어진 바보로 보이기는 싫으니까. 나는 걸음을 다그치며 빠르게 걷는다.
신분당선의 꼬리 칸에 들어설 때면 묘한 안도감이 든다. 여기서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도, 능숙한 척하며 걸을 필요도 없다. 늘 약속된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는 전철은 어제와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로 나를 실어다 줄 것이다. 철로가 내다보이는 꼬리 칸 차창에 기대선다. 컴컴한 터널 속을 전진하는 전철의 궤적을 눈으로 좇는다. 나는 이 시간이 좋다. 이 시간만큼은 목적지를, 출구를, 오늘 하루를, 내년을, 내년보다 먼 미래를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섯 개의 역을 지나치는 동안, 나는 시인이 쓴 책을 떠올린다. 시인은 서울에 살면 자꾸 원치 않는 어떤 욕망에 감염되는 것 같다고, 원치 않는 방향에 저항하느라 늘 지친다고 썼다. 때로는 비루하게, 때로는 낙오된 것처럼 느껴지는 서울을 떠나, 시인은 출장을 가듯이 떠난다. 아무리 느려도 부족한 사람이 되지 않는 곳으로. 그곳에서 작은 불씨로 찻물이 끓기를 오래 기다리고, 엽서를 사고 고르고 쓰는데 기꺼이 온 하루를 쓰고, 시장의 할머니와 손바느질하는 아이와 꼬치구이를 파는 청년과 기약하지 않는 대화를 하고, 거리에서 마음껏 길을 잃는다.
시인의 시간은 “구름처럼 유유하게” 흐르는 문장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아닐 수 없는” 수수한 사진으로 남았다. 지난밤, 나는 침대맡에서 그 시간들을 들여다보았다. 시인을 따라 인적이 사라진 빈집에 다녀오고, 골목을 뛰노는 아이들을 구경하고, 무덥고 부산스러운 시장을 걷고, 바퀴벌레가 나오는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누군가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성긴 행간과 여백마저 시인의 여행처럼 느껴졌다. 책장을 닫으며,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내게 물었던 것 같다. 목적 없이 걷는 것은 어떤 것이었지? 어쩐지 어색했다. 오른 다리와 오른팔을 동시에 들고 걷는 행진처럼.
어둠을 달리던 지하철은 정확히 여섯 번째 정거장에서 멈춘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의 터진 옆구리로 쏟아져 나온다. 홀연히 떠나는 시인의 모습도, 시인의 순연한 문장과 여백으로 가득한 사진도 뒤로한 채, 지하철 출구를 향해 재게 걷는다. 시인의 손을 잡고 “느림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아침. 느슨한 풍경 속에서 게으르고 표표하게 걷다가, 낯선 이와 사소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군중이 되어 4번 출구로 빨려 들어간다. 점이 되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