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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Nov 13. 2022

#56. 쓰지 않는 나날들

행복을 쓰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요즘엔 일기를 쓰지 않는다. 일기를 쓰지 않는다는 게 참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일기를 써왔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본 적은 없지만, 쓰는 일이 익숙한 이유다. 내 글쓰기는 혼자 있는 시간과 비례했다. 감정이든, 일이든, 공부든, 관계든 혼자 감당해야하는 시간이 길수록 일기장이 빽빽해지곤 했다. 대학원 시절 낙오하지 않기 위해 매일 밤 싸워야 했을 때도, 프리랜서 번역사로 미래가 불안했을 때도, 파리에서 혼자 남겨졌을 때도, 나는 무엇인가 늘 쓰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힘들 때 썼다. 너무 불안해서 썼고, 너무 외로워서 썼고, 너무 미워하거나 너무 사랑해서 견디기 힘들어서 썼다. 그러니까 내 글쓰기에는 늘 불안과 고통과 번민이 가득했다. 쓰다보니 해소가 되는 부분이 있었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고민하면서 자기 확신이 생기고 내면이 더 단단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글을 쓰며 내가 내 안으로 파고들다보면, 혼자여도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괜찮았다. 내가 나 하나로 충분한 느낌. 온전한 내 편인, 나.  


언젠가 파리에 있을 때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여기서 예고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떨까. 유품을 정리하러 온 부모님이 내 일기장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나의 부모는 나를 늘 불행했던 사람으로 이해할 것 같았다. 사실 매일 불행했던 것만은 아닌데 말이다. 외롭고 환멸나는, 구질구질한 생활 속에도 늘 벌어진 틈이 있었다. 그 틈으로 작은 햇살처럼, 사람과 온기와 다정과 사랑이 스며들 때가 있었다. 왜 그런 틈새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에는 그냥 오롯이 느꼈던 것 같다. 기록해야겠다는 자각도, 간직하고 싶다는 소망도 없이, 그저 순간에 녹아들었다.


요즘 내가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일이 많아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는 것이 가장  이유이지만, 것 또한 그리 싫지 않기 때문이다.  바쁨이 홀로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었다면,  일기장은 다시 수많은 활자들로 공란없이 채워졌을 것이다. 어렵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나 거지 같은 인간들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쓰지 않으면 견딜  없을 정도의 고통과 괴로움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쓰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좋은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정서 상태가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안정적이라는 의미이니까.  


그렇게 글을 쓰지 않고 하루가, 일주일이, 수 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 출근을 하고, 전쟁처럼 일을 하며, 퇴근 후에는 때로는 혼자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주말이면 장을 보고, 시간외 근무를 하고, 운동을 하고, 와인을 마시거나 한식당에서 외식을 하기도 한다. 새벽녘과 일몰 무렵 마다가스카르의 하늘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4월부터 보이지 않던 주황색 새가 우기를 맞아 다시 돌아왔고, 아보카도의 계절이 지나가고 망고와 리치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생활의 틈새에 스며든 작은 행복들 속에서, 나는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고 그냥 이 순간을 오롯이 느끼며 살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글이 쓰고 싶다. 불안과 고통과 번민이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해서도 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결핍보다는 내 곁을 남아있는 것들을, 미래를 향한 불안보다는 오늘의 아름다움을, 미워하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쓰고 싶다. 그래서 더 이상 글쓰기가 무엇인가를 견디기 위한 수단이거나, 내 안으로만 파고드는 자폐적인 행위가 아니길 바란다. 내가 예고 없는 죽음을 맞이했을 때, 수없이 많은 작은 행복들이 내 일기장 속에서 발견되기를. 첫 걸음을 뗀 아이처럼, 나는 새로운 글쓰기를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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