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오늘도 돈 쓸 궁리 중입니다

일상을 굴리는 소비를 향해

by 사과나무

마다가스카르에 살면서 소비가 크게 줄었다. 내 지갑이 열리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다. 주말에 지선의 차를 얻어 타고 마트에 나가 장을 볼 때다. 거기서 한 주치 식량과 생활용품을 한번에 사들인다. 친구가 없으니 약속도 없다. 집 근처에 카페나 식당도 있지만, 매연이 심하고 보행로가 없어 잘 나가지 않게 된다. 차가 없으니 시내에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 택시를 탈 수도 있지만, 바가지를 씌우려는 기사와 실갱이를 하고나면 출발도 전에 지쳐버린다. 차창에 달라붙는 걸인들과 끔찍한 도로 정체는 덤.

이런 이유로 내 일상은 집과 회사(도보로 10분)와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돈 쓰는 맛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쇼핑을 하고 싶어도 살 만한 게 없고, 사고 싶은 게 있어도 구할 수가 없다. 인구의 75%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는 전세계 5위 최빈국에 무슨 구매력이 있겠는가? 구매자도 없는 시장에 해외 기업들이 진출할리는 만무하고. 그나마 있는 물건이라고는 엉성한 국내 제조 제품들, 옛 식민지였던 프랑스계 기업이나 값싼 개도국 브랜드들이 전부다.


그렇게 평일에는 회사와 집을 오가고, 주말이면 장을 보는 게 생활의 기본값이 되었다. 가끔 기분 전환을 위해 지선과 외식을 하거나 발마사지를 받기도 하지만,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두 번이다. 처음에는 그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입금은 있지만 출금이 없는 생활이라니. 예전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유행하는 옷을 사고, 친구와 영화를 보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고, 취향에 맞는 책과 문구, 자잘한 악세서리 같은 것들을 사다보면, 저축은 커녕 한 달 살기도 빠듯해지는 게 서울 자취러의 현실이었으니까.


태어나 처음으로 저축왕이라는 왕좌에 오른 기분이었다. 물론 내 의지와 전혀 상관 없었지만 말이다. 강제로 통장에 쌓이는 월급을 보며, 내 노후가 제법 윤택해진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그렇게 단조롭게 살던 중, 지난 해부터 사는 게 조금씩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나 하는 일이 없는 데 지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장마철 곰팡이가 번지듯이 무기력함이 생활 곳곳에 퍼져 나갔다. 운동을 미루고, 장 보는 것도 미루고, 겉창을 내린 어두컴컴한 집안에 틀어박혀 주말을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오늘의 무기력함이 관성처럼 내일의 무기력함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얼마 전,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헬스장 내 일대일 필라테스 수업에 등록했다. 한국 물가를 기준으로 해도 비싼 금액이었지만,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결제해 버렸다. 첫 수업 날, 현기증이 나도록 땀을 흘리며 운동을 했다. 그날 밤 아주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이렇게 잠이 달았던 게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단 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 곳곳에서 기분 좋은 뻐근함과 가벼움이 느껴졌다.


필라테스 수업 하나를 더했을 뿐인데, 묵은 때 같은 무기력이 사라지고 생활에 활기가 도는 게 느껴졌다. 삐걱거리다 결국 멈춰버린 일상이 다시 굴러가는 느낌이었다. 그 날 나는 큰맘을 먹고 필라테스 10회권을 끊었다. 간만에 큰 돈을 지출하고, 영수증을 들여다 보며 새삼 소비가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소비는 단순히 상품이나 서비스를 위해 돈을 지출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소비는 반복되는 일상을 잘 굴러가게 하는 일종의 윤활유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이 소비의 불모지에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무기력해졌던 건 소비를 극도로 줄이며 일상을 굴릴 최소한의 마찰과 움직임마저 없애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비가 가져다주는 삶의 동력을 같이 줄이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 돈 쓸 맛 안 나는 나라에서 어떻게 소비해야 일상이 잘 굴러갈까 고민한다. 주말에 함께 공부할 프랑스어 방문 과외 선생님을 알아보기도 하고, 집 가까운 곳에 새로 생긴 마트에 일부러 찾아가 보기도 한다. 퇴근 후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걸어서 빵집에 다녀오는 날도 있다. 일상을 잘 굴리고 싶은 나는 오늘도 돈 쓸 궁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