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나무 Jul 27. 2018

#03. 취미의 역사

'머무는' 생활이 아닌 '사는' 생활의 시작

이케아에서 하얀색 작업용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주문했다. 큰 결심이었다. 회사 근처로 이사 온 이후 작지 않은 공간이지만 최소한의 가구만을 갖추고 살았다. 덩치가 큰 물건은 사지 않고 정기구독이나 약정처럼 '약속된 것'을 되도록 피하는 건 뜨내기 생활이 남긴 습관이다. 하여, 이사한 지 1년 반이 넘도록 커튼도 달지 않은 채 본의 아니게 미니멀한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동사로 치자면 '머물다'였던 나의 생활이 '산다'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겠다'는 공간적 의미가 아니라 '현재를 살겠다'는 시간적 의미로서의 '사는' 생활. 떠날 날을 염두에 두고 포기하고 금기했던 것들에 대해 관대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을 뺀 나머지 삶에 대한 욕구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심정을 이겼다고나 할까.


집에 가구를 들인 이유는 그만두었던 베이킹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다. 요리하는 S를 따라 우연히 치즈케이크 수업에 참여했던 일이 계기가 되었다. 너무 담백한 휴일에 버터칠 하는 기쁨. 여가를 살찌우는 (살찌는 건 비단 여가만은 아니겠지만) 즐거움에 훅, 낚여버린 것이다. 당장 내일 떠날지라도 즐거운 오늘을 살고 싶다는 욕구는 가구에서 끝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수업으로 파닥파닥 주둥이를 꿰인 호갱 중의 호갱님은 내친김에 다음 베이킹 수업까지 예약해버렸다. 취미는 장비빨이라고, 필요한 조리도구들을 갖추려면 살 게 산더미 같다. 하지만 여름 세일 시즌이 한창이고 6월에 들어온 성과급도 있으니 조금만 발품을 팔면 월급을 크게 헐지 않고서 필요한 것들을 구비할 수 있을 것이다.


베이킹은 내 유구한 취미의 역사 속에서도 꽤 오래된 챕터에 속한다. 나는 참 많은 취미를 가졌'었'다. 이 문장이 대과거인 이유는 예상 가능하겠지만 꾸준하지 못하고 한때의 추억으로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진행형인 나의 성장사를 거꾸로 되짚다 보면 빛바랜 취미들이 유물처럼 곳곳에 매몰되어있다. 내부(변덕) 혹은 외부(환경변화)적인 이유로 놓아버렸거나 놓쳐버린 취미들은 종류도 성격도 제각각이지만, 취미의 선정도 결국 취향인지라 대략적인 공통점이 있다. 1. (머리보다) 손을 써야 할 것 2. 소소할 것 3. 잡념을 없애고 집중할 것 4. 시간이 많아야 할 것 5. 돈이 들 것. 그렇다고 내가 손재주가 좋거나, 집중력이 뛰어나거나, 시간과 돈이 넘쳐났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손재주는 없었지만 손을 쓰는 일이 좋았고, 그 즐거움에 몰입되었으며, 없는 시간은 만들었고, 돈은 있는 대로 탕진했던 것 같다.


예컨대 휴학을 하고 빵과 과자를 만들러 다니고, 밤낮 없는 바느질로 파우치, 동전 지갑, 오너먼트 따위를 크기별로 연성해 주변에 안기며, 들꽃 백과/도감 따위의 책을 보고 온종일 꽃을 그리고 칠하거나, 시골집에 들어앉아 십자수 실을 쌓아놓고 미산가 팔찌를 꼬는 식이었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많이 사기도 했던 것 같다. "고학력 주부"나 "유한마담" 같은 별칭은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 웃자고 하는 소리였지만(저 고학력 주부는 지금 보니 여러모로 꽤 여혐적이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어마어마하게 큰 과수원이라도 경영하시냐며 농인지 진담인지 모를 얼굴로 물어온 사람도 있었다. 서른, 워홀 막차를 잡아타고 떠나는 내게 다짜고짜 전화해 인생을 철부지처럼 살지 말라며 고나리질 하던 인간도 있었는데, 결국 저 "유한마담"같은 이미지가 없었다면 그런 수모를 당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취미는 아무 잘못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오해의 근원을 짚자면, 취미에 빠졌던 시기와 취미-삶 밸런스를 와르르 무너뜨리는 불꽃같은 천성(하얗게 불태웠어...)의 콜라보일 것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취미에 몰빵 하면서 뜨겁게(?) 살던 때는 어김없이 다들 입 모아 중요하다고 말하는 시기였으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부모의 덕이 컸다. 나의 부모는 내게 골드카드를 쥐어주는 거대 농장주는 아니었으나 취업전선에 서둘러 뛰어들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를 부여하지 않았고, 남들 사는 속도에 맞춰 뛰라고 등짝을 후려치지도 않았다. 나이도 스펙이라며, 무리에서 뒤처지면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사회가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이 또한 천성인지 덜덜 불안해하면서도 손은 끊임없이 팔찌를 꼬고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중요한 시기를 '한때로 그칠 취미'로 무용하게 보냈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굶어 죽지 않고 제 밥벌이는 하고 있으니 딱히 고나리질 당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오래된 취미를 발굴하게 되는 요즘 같은 날도 있으니 아주 쓸데없지도 않았다. 이번 주말에는 케이크 수업이 예약되어 있고, 다음 주면 가구가 도착할 것이다. '머무는' 생활이 아니라 '사는' 생활의 시작. 앞으로도 수많은 취미의 역사를 새로 쓰며 살고 싶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살 것 같다(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제껏 그래 왔던 것처럼, 타인의 삶의 리듬과 관계없이 나만의 속도로 무쓸모를 자랑하며. 뜨겁고 즐겁게. 달콤한 버터와 설탕 냄새를 풍기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02. 생활이라는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