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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Dec 19. 2018

#26. 21세기 해외생활의 낭만

Feat.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복해서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거듭 읽어도 좋은 글, 혹은 그 좋음이 좋아서 자꾸만 꺼내 보게 되는 글. 내게는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그렇다. 독일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에세이를 엮은 유고집이다. 책 속에는 유학생 전혜린, 엘리트 전혜린, 생활인 전혜린, 독서가 전혜린, 번역가 전혜린, 여행가 전혜린, 여성 전혜린, 어머니 전혜린 수많은 전혜린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숱하게 반복했던 챕터는 독일 유학 시절의 글이다. 첫 장의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은 전혜린이 1955년 스물한 살에 홀로 뮌헨 땅을 밟았을 때를 회상하며 썼다. 짙은 안개에 잠긴 시월의 뮌헨. 잿빛 풍경 속에서 엷게 비치는 레몬색 가스등. 공원이 내다보이는 단출한 방. 차가운, 너무도 차가운 호수. 언 몸을 녹이는 뜨거운 그록크. 타닥타닥 타오르는 도자기 난로 속 불꽃. 그녀의 시선이, 감각이, 차갑고 축축한 외로움이 내 것처럼 생생해서 읽을 때마다 덩달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린다.


가끔 나는 60년 전 이국에서 전혜린이 느꼈을 고독을 상상한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의 고독이란 어떤 것일까. 그녀가 썼던 "절망적인 고국까지의 거리감(pathos distanz)"이란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감각일 것이다. 한국에서 하루가 저물어갈 때 프랑스의 나는 한창의 오후를 숙제처럼 살아야 하지만, 이 일곱 시간의 시차가 그리 절망적이진 않다. 카카오톡으로 연결된 누구에게든 안부를 물을 수 있고, 페이스타임 버튼만 누르면 얼굴을 볼 수 있으며, 이렇게 뭐라도 쓰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읽는다. 파리와 인천 사이의 열한 시간의 비행은 두 번의 기내식과 몇 편의 영화와 잠깐의 불편한 쪽잠으로 어떻게든 견뎌진다. 그렇지만 기술이 발달했다고 이방인의 고독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예컨대, 영상통화를 걸어 한국의 친구와 손에 닿을 듯 마주보고 수다를 떨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손을 흔들며 홀연히 사라질 때, 꺼진 화면에 덩그러니 비친 내 얼굴과 덮쳐 오는 빈 방의 적막이 때때로 얼마나 절망적인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허상과 실체 사이의 절망적인 거리감(pathos distanz).


50년대 유럽의 고독과 우수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21세기 유럽에 사는 내게도 낭만은 있다. 바로 편지다. 10년 전 리옹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부터 파리에 사는 지금까지 J와 나는 빈 종이 위에 단정한 손글씨로 그간의 안부를 채워 국경 너머로 보낸다. 긴 여정에도 부디 길을 잃지 않고 우편함에 무사히 안착하길 바라면서. 물론 카톡으로 시시각각 덕질 근황이나 웃짤을 주고받는 요즘엔 편지의 감흥이 덜 한 건 사실이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10년 전만 해도 채팅을 하려면 시차를 계산해서 약속한 시간에 네이트온에 접속해야 했다. 이제 우리는 그 때를 추억하며 세상이 참 좋아졌다고 늙은이처럼 웃는다. 그래도 파리에서 첫 겨울을 버틴 건 J의 편지 덕분이었다. 징그럽게 춥고 외로웠던 겨울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하루를 마치고 하숙집 문을 열었을 때 현관에 놓인 J의 편지를 발견했다. 그 순간의 기쁨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메신저의 비좁은 대화창으로는 담을 수 없는 온 세상의 다정과 위로가 거기에 다 있었다. 그 편지를 가방에 넣어 다니며 지하철 플랫폼에서, 빈 강의실에서, 도서관에서 얼마나 자주 꺼내 읽었는지 모르겠다.


파리에서의 첫 연애도 내겐 낭만으로 남았다. 가을에 만나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헤어졌던 짧은 연애였다. 군인이라는 직업 탓이었는지 그의 생활은 규칙적이고 주변은 군더더기가 없이 간명했다. 그게 좋았다. 그때 나는 긴 통학 시간을 견뎌야 했는데, 그는 내 통학 루트의 딱 중간 지점에 살았다. 늦은 밤 학교가 끝나면 중간에 내려 그를 만났다. 무척 추운 겨울이었는데, 그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따뜻한 우유가 담긴 보온병을 들고 나를 기다렸다. 손을 꼭 잡고 기숙사로 돌아온 우리는 작은 부엌에서 크림스튜나 프렌치토스트 같은 간단한 음식을 만들었다. 식탁도 없이 책상 위에 상을 차리고, 수저와 포크는 짝이 맞지 않고 제각각이었지만 그땐 그것도 재밌었다. 막차를 놓칠까봐 함께 뛰었던 것도 생각난다. 누군가 나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는 연애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나를 택시에 태워 보낸 사람은 있어도, 집까지 함께 걸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낯선 도시에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게, 나의 언어로 속삭일 수 있다는 게, 다음 역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린다는 게, 따뜻한 음식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밤길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때는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행복했다.


전혜린이 그리워한 "구운 하얀 소시지에 겨자를 발라 서서 먹는 식당"처럼, 나만의 추억의 식당도 있다. 생 미셸 먹자골목 입구에 있는 작은 크레이프 가게다. (유일한) 프랑스 친구인 D와 돈 없던 시절에 즐겨 찾던 외식 장소인데, 짠 크레이프, 단 크레이프, 음료수를 세트로 먹을 수 있었다. 맛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단돈 5유로로 크레이프를 질리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D와 나는 매번 가게 앞에서 서로 크레이프값을 내겠다고 싸웠다. 둘 중 하나가 '다음번엔 내가 꼭 살거야'하며 지고 말아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유일한 식당이었다. 노트르담 성당이 보이는 센 강변의 돌계단은 우리의 지정석이었다. 그곳에서 포장해 온 따끈한 크레이프를 먹으며 우울한 일상과 불확실한 미래를 위로하곤 했다. 그 후 나는 파리의 외노자가 되었고, 구직난에 시달리던 D는 호주로 떠나 그곳에서 외노자가 되었다. 크레이프 가게는 더이상 함께 갈 수 없는 추억의 장소로 남았지만, 가끔 우리는 카톡으로 그 때를 그리워한다. 이젠 크레이프를 열두 개도 사줄 수 있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그러면서.


한국에 돌아온 전혜린은 늘 먼 곳에의 그리움을 꿈꿨다.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 빈 위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p.143)"라고 그녀는 썼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혹은 파리가 아닌 다른 도시에 살게 된다면 나 역시 먼 곳에의 그리움을 앓을 것이다. 다만, 내게 그 먼 곳이란 "모르는 얼굴과 마음"이 아니라 그때는 닿을 수 없게 될 지금 이 순간일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파리에서의 모든 순간이 소중해진다. 가요를 틀어놓고 편지를 썼던 수많은 밤, 첫 연애의 추억, 크레이프의 달콤짭짤한 맛, 무수히 걸었던 골목들. 반짝거리는 밤의 센 강, 사무실 창밖으로 지나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혼자' 라는 감각과 모든 것을 관조하게 된 이방인의 습관까지도. 책장을 덮으며 문득 전혜린에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이 살아있다면 지금쯤 어떤 순간을 살고 있을까요. 21세기의 유럽에서는 어떤 우수와 낭만을 찾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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