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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Nov 18. 2019

#36. 나의 '첫'들이 그리워질 때

드물게 나쁘고 대체로 다정한 일주일  

지난 목요일 새벽이었다. 세 시쯤 시끄러운 거리의 소음에 잠에서 깼다. 깜빡이는 비상등 소리, 기계 소리, 엔진 소리, 간간히 들리는 고함소리까지. 밖을 내다보니 제설차량이었다. 그간 도로에 쌓여있던 눈을 통행이 없는 새벽에 치우려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 어학원에서 중간시험이 있으니 억지로라도 다시 자야 했다. 베개에 머리를 깊숙이 묻고 달아나버린 잠을 붙들려고 애썼다. 그런데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자꾸만 아무 생각이 났다. 시험 걱정을 하다 보니 고등학교 때가 생각나고, 잠자기 전 읽었던 불어 텍스트를 떠올렸다가, sécréter를 영어로는 뭐라고 하지? 벌떡 일어나서 사전 찾아보고, 문득 어학원 선생님의 과장된 몸짓과 말투가 생각나서 혼자 웃다가, 직업적 재능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돌아가면 뭐 먹고살지?로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 멈추려 할수록 더욱 격렬하게 각성되는.


결국 새벽 여섯 시가 넘어서야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알람 소리에 소스라치며 깼다. 일어나 보니 생리까지 터져있었다. 어쩐지 아랫배가 묵직하니 아프더라니. 서둘러 집을 나서는데, 패딩에 쓸려 현관의 초받침대가 툭, 떨어졌다. 정교하게 조각된 은빛 천사 세 명이 초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앉아있는 초받침대였다. 바닥에는 그중 한 명의 몸통과 다리 한쪽이 떨어져 있었다. 너무 놀라서 말도 안 나왔다. 남의 집에서 남의 물건을 깼다. 오래된 물건이 많은 이 집에서 이게 얼마 큼의 가치가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배상이야 할 수 있지만, 만일 이 물건이 미미의 고조의 증조할머니로부터 대대로 물려온 것이라면? 만일 그렇다면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담겨있을 것이었다. 마침 미미는 집에 없었다. 손녀의 집에 가 있는 미미에게 메시지를 쓸까 했지만,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학원을 가는데 초받침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몸도 무겁고 찌뿌둥한 데다가 피로에 근심까지 더하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뒤늦게 시험 걱정을 하며 지하철을 탔는데, 갑자기 오렌지 라인의 서비스가 중단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사람들이 우르르 지하철에서 내렸다. 일단 내리기는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서든 학원에 가야 했다. 가장 가까운 다른 라인의 역을 찾았다. 그린라인을 찾아 타고 가까운 역에서 구글맵을 켜고 미친 듯이 걸었다.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갔을 때는 새로 산 신발 때문에 뒤꿈치가 다 까져 있었다. 참 이상하다. 왜 나쁜 일은 작정한 듯 한꺼번에 일어날까? 시험 전 날, 새벽 세 시에 깨고, 때아닌 생리가 터지고, 남의 집 물건을 부수고, 지하철이 멈추고, 이 추위에 겁나게 걷고, 발뒤꿈치는 다 까지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미미를 만나느라 저녁 약속도 취소해야 했다. 누군가 작정하고 부비트랩을 설치해놓은 듯 이상한 하루.


이렇게 이상한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다정한 하루하루였다. 학원 첫날에는 밥도 혼자 먹고, 공부도 혼자 했다. 지금은 함께 밥을 먹는 학우, 도서관을 함께 가는 친구, 인사를 건네는 낯익은 사람들도 생겼다. 물리적으로 한참 어린 친구들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걸 배우니 동년배 아닌가(뻔뻔) 하는 마음으로 어울린다.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싶지만, 나이에 연연하게 되는 상황이 오는 건 사실이다. 예전에는 미혼의 (UN 기준) 청년 집단 속에서, 다들 또래이거나 언니 오빠였다.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결혼 적령기"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내가 집단의 최연장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행을 다니며 그랬던 것 같다. 유럽 여행에서 만난 대부분의 미혼 청년들은 이십 대였다. 화장기 없고 캐주얼을 즐겨 입는 내게 또래인 줄 알고 다가왔다가,  "내가 십이 년 전, 첫 유럽 여행을 왔을 때는 말이죠~" 같은 멘트를 늘어놓으면, 순식간에 (마치 어린 손주가 할머니를 보듯) 눈빛이 바뀌곤 했다.  


학원의 친구들과 함께일 때도 비슷하다. 내 나이를 듣고 얼른 놀란 티를 감춘다.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나는 다른 연령의 우리가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는 것을 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보고 느끼는 것이 절대 같지 않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그랬겠지. 나고 자란 세계를 벗어났다는 두려움, 새로운 곳에 놓였다는 신기함. 낯선 이방의 언어로 나를 표현하는 벅참과 설렘. 눈동자 색깔이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고 마음이 통하는 짜릿함, 한정된 시간 동안 벌어지는 수많은 만남과 익숙하지 않은 헤어짐들. 내게도 그런 '첫'들이 있었을 것이다. 난생처음 느끼는 자극에 온 우주가 정신없이 흔들리고 확장하던 무수한 기억들, 몸과 마음의 감각들. 밥도 첫 술이 가장 달고 맛있는 것처럼, 그때의 그 '첫'이 가끔 그립긴 하다. 많은 것에 능숙한 지금은, 그만큼 많은 것에 익숙하고 무디니까.


앞으로 내게 얼만큼의 '첫'들이 있게 될까?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꽤 남아있는 것 같아 안심한다. 지금 이 순간 창밖에 펼쳐진 풍경조차 아직 신기하고 재미있으니 말이다. 아침이면 고요히 도래해 있는 하얀 세상, 장딴지까지 쌓인 눈 위를 푹푹 밟는 느낌, 맥길 대학 카페테리아의 소음, 굵은 눈발이 비스듬하게 내리는 바깥을 바라보며 마시는 핫초코... 제설 작업 소음에 눈을 뜬 새벽 세시나 난생 처음 남의 집 장식을 깬 기억까지도 아마 서른 중반에 느끼는 '첫'으로 기억될 것이다. 질문을 바꿔본다. 다음 주에는 또 어떤 '첫'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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