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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Nov 09. 2019

#35. 베이지색의 생활

목적이 없는, 느리고 순한 날들의 기록

몬트리올과 한국의 시차는 열네 시간이다. 아침에 일어나 목도리와 코트를 껴입고 집을 나설 때쯤, 한국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티브이를 보며 과일을 먹을 시간이 된다. 애매하게 일고여덟 시간이 아니라, 화끈하게 낮밤을 뒤집어 버리니 오히려 적응이 쉬울 줄 알았다. 근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번 주 내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집도, 거리도 아직 낯선지, 이불속에서 오래 뒤척이고,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그저께는 악몽도 꿨다. 술을 잔뜩 먹고 점집 앞을 지나다가, 대문 앞에 차려놓은 신당(?)을 엎어버렸다. 와장창창, 소리를 들은 무당이 달려 나왔고, 내 팔을 끌고 점집 안으로 들어갔다. 길고 어두운 복도에는 (무당이 모시는 듯한) 귀신의 그림이 걸려있었는데, 램프의 요정 지니 같은 모습에 피부는 스머프처럼 파란색이었다.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니같이 생긴 주제에 너무 무서워서 주기도문(ㅋㅋ)을 외우면서 점집을 도망쳐 나오는데... 잠에서 깼다. 꿈꿀 여력조차 없는 선잠만 자다가, 겨우 깊이 잔 잠이라는 게 이런 식이다. 개 같은 개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후엔 도서관에서 잠과의 사투를 벌이느라 진이 빠진다. 추위를 뚫고 왔으니 어떻게든 뭉개 보려 하지만, 파업을 선언한 뇌에는 도무지 이길 도리가 없다. 결국 백기를 들고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온다. 집은 다운타운에서 벗어난 한적한 주택가다. 지하철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가야 하는 거리.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건물의 문을 열고, 나무 계단을 삐걱삐걱 걸어 올라가면, 꼭대기인 삼층에 미미의 집이 있다. 삼층 벽면은 미미의 젊은 시절 공연 포스터로 가득하다. 신발장에는 쪼르르 놓인 세 사람의(이젠 나까지 네 사람의) 신발과 우산이 보인다. 출입문은 늘 열려 있다. 미미는 이곳에 살면서 한 번도 문을 잠가본 적 없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부엌의 훈기와 사람의 온기가 꽁꽁 얼어붙은 내게 훅, 끼쳐온다. 나는 이 집이 좋다. 네 명의 여자와 고양이 두 마리가 사는, 밤새 대문을 잠그지 않아도 아무 일 없는, 오랜 세월 쓸고 닦은 흔적이 보이는, 냉장고 안에는 맛있는 요리가 가득한 이 집이 좋다. 비록 발을 디딜 때마다 마룻바닥이 다 죽어가는 소리(끼... 익... 끼... 익...)를 내고, 가끔 샤워기에서 너무 차거나, 너무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오긴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고, 안온하다. 


양질의 잠을 자지 못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몹시 순하고 편안한 하루하루다. 베이지색 같은 나날들. 아침에 눈을 뜨면 낡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학원에 갈 준비를 한다. 살기 위해 두껍게 옷과 코트를 껴입고, 백팩을 (멘 것도 아니고) 팔에 꿰고서, 미미가 싸준 도시락 가방을 들고 뒤뚱거리며 집을 나선다.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해가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온다. 어두워진 창밖으로 십일월의 눈이 내리고, 나는 나의 작은 방에서 호박색 등을 켜고 일기도 쓰고, 복습도 하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는다. 영어 공부는 재미있다. 지금까지 공부는 내게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려고, 대학원에 가려고,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번역가가 되고 싶어서 공부했다. 지금은... 공부하는데 특별한 목적이 없다. 말 그대로 공부를 위한 공부. 그러니 잘해야 한다는 압박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고 재미있다. 재미있으니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살면서 늘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적이 원동력이 되어서 삶을 끌고 간다고.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는 목적이 없어야 행복한 것 같기도 하다. 


어제는 같은 클래스의 H가 무척 우울해 보였다. H는 아침에 길에서 만난 캐나다 사람에게 능숙한 영어로 답변하지 못했다고 속상해했다. 이제 9주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영어실력이 제자리라서 딸아이를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며... 울었다. 내가 모르는 감정은 아니었다. 외국어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좌절감이었다. 프랑스어를 공부할 때 힘들었던 것도 바로 그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 때문이었다. 외국어는 익혀야 하는 범위가 헤아릴 수 없이 넓다. 만만치 않게 광범위한 내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기까지, 아주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평생이 걸려도 다 익히지 못할 외국어를 단 몇 개월, 단 몇 년 만에 습득하려고 하니 당연히 마음만 급하고 좌절만 커질 수밖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천천히 가도 된다고, 그저 조금씩 꾸준하게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더 많은 표현을 하고 있는 내가 있다고. 뭐 그런 위로를 했던 것 같다. 나도 이민이나 시험의 목적이 있었다면, H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새삼 목적이 없는 지금에 감사하며, 내가 나에게 선물한, 다시없을 이 시간들을 충분히 즐기자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클래스의 남미 남자애 하나가 포춘 쿠키 한 상자를 들고 왔다. 하나를 골라 중간을 깨어봤는데 <De bonnes nouvelles vous parviendront de loin (Good news will come to you from far away) >라고 적혀있었다. 먼 곳에서 좋은 소식(그것도 좋은 소식"들")이 들려온다니. 몬트리올은 벌써 눈이 온다. 이곳의 겨울은 11월부터 시작해서 일곱 달 동안 계속된다고 했다. 긴긴 겨울의 시작. 이 시간의 끝에 행복한 이야기들이 내게 도착했으면 좋겠다. 멀리서 소식들이 천천히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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