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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May 25. 2020

#44. 이른 여름의 몬트리올

두서없이 남겨보는 오월의 기록

몬트리올도 긴 겨울 끝에 여름의 문턱에 섰다. 미친 코로나 때문에 도시는 아직도 찌뿌둥한 기지개를 켜지 못하고 있지만, 역병이 돌아도 녹음은 번지고... 덕분에 곳곳이 푸르고 투명한 채도로 물드는 중이다. 다들 몬트리올의 정점은 여름이라고 했다. 겨우 세 달 뿐인 이 시간을 위해서 지겨운 추위와 속수무책으로 내리는 눈과 깊은 밤을 견디는 거라고.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이른 여름, 몬트리올의 공기는 산뜻하다. 바람은 기분 좋게 하늘거리고. 그래서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마다 마음이 달뜬다. 어제는 해질 무렵 집주인 파스칼과 그의 친구 레미와 집 앞 계단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집 근처 작은 브루어리에서 사 온, 기분 좋은 쓴 맛이 나는 맥주였다. 미지근하게 붕 뜬 공기 속에서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한없이 가벼워지는 풍선의 시간. 발아래가 떠 있는 것처럼. 아직 충분히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몬트리올의 여름은 그런 게 아닐까 상상했다. 투명하고 싱그러운, 둥둥 가벼워지는 시간들.


꽤 오랫동안 일상을 기록하지 않았다. 온라인 클래스는 조금씩 지겨워지고, 몸은 게을러지고, 체중이 늘고, 주변의 잇단 귀국 소식에 불안했다가, 호기롭게 스케줄을 짜고, 무기력에 또 지고 마는 날들이 반복됐다. 그래도 아주 혼자는 아니어서, 줌이나 영상통화로 대화를 하며 이따금씩 사람들과 떠들고 웃었다. 가끔 리디북스와 애플스토어에서 이북을 사서 읽었다. Lamiroy라는 벨기에 출판사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사이즈로 (PDF로는 20매 정도) 단편 소설을 정기 출판하는데, 그 시리즈의 한 달 구독을 신청했다. 매주 금요일 메일로 도착한다. 대부분 막 첫 책을 낸 신인 작가의 짧고 가벼운 작품들이다. 그것 외에도, 하우위아의 임소라 작가가 연재하는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를 메일로 받아 본다. 양해중이라는 한 여성을 중심으로, 그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주변 여성들의 에피소드들을 보여주는데, 한녀로서 겪는 다이내믹한 (빡센) 현실이 거의 다큐멘터리급이다. 재밌는 글을 읽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일정한 시간에 무엇인가 나를 찾아온다는 그 기대감이 더 좋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갇힌 일상의 유일한 알람 두 개.


최근의 가장 큰 변화라면 자전거가 생겼다는 것이다. 중고 사이트에서 자전거 한 대를 싼 값에 샀다. 체인에서 정체 모를 탁탁거리는 소리가 나긴 하지만, 일단 굴러는 가니 그냥 타는 중이다 (그래도 무려 6단 기어다). 음울한 회색에 바랜 오렌지 색으로 'SUPERCYCLE'이라고 적혀있었는데, 프레임의 색깔도 문구도 맘에 들지 않아서 색을 칠하기로 했다. 집 근처 상점에서 하늘색 스프레이를 사서, 프레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테이핑을 하고 신나게 뿌려줬다. 너무 생각 없이 신나게 뿌린 나머지,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여기저기 흘러내린 자국이 투성이지만 상관없다. 일단 재밌었고, 다 추억이라고 생각하니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어딜 가도 이렇게(?) 생긴 자전거는 없어서 오히려 맘에 든달까. 날씨가 더워진 후로는 매일 자전거를 탄다. 장을 보러 갈 때도, 바람을 쐬러 갈 때도, Y를 보러 갈 때도 자전거와 함께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다. 신비로운 주홍빛 하늘 아래에서 달리는 황홀함이란.


지난주에는 화제의(?) 에세이 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읽었다. 불안과 모자란 생활과 환멸 나는 인간들과 분투하는 이야기는 언젠가의 내 모습 같아서 남일 같지 않았다. 하루라는 몫을 성실히 살아내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이제는 안다. 지금은 퇴사를 하고 백수가 되었지만, 생활을 꾸리는 일은 여전히 버겁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 같은 하루 위에, 일상이라는 틀을 만들고 공란을 채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무도 쫓아오지 않고, 아무도 삶의 형태나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데도, 보이지 않는 불안과 늘 싸워야 한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사회가 마비되면서부터는 고립과 싸워야 했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아무 말 대잔치를 하듯 내 일상을 자판으로 두드리며 우울하고 불안한 나와 싸우는 중이다. 날이 좋은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올드 포트에 간다. 운동 삼아 나가는 것이지만 (최근 몇 년을 통틀어 가장 뚱뚱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불안을 쫓아내는데 도움이 된다. 풀밭에 눕거나 엎드려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기분이 내킬 때 번역을 한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햇살 아래 눈을 감고 있으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것만 같다.


지난 4월부터 Y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팬데믹이 없었더라면 분명 소와 닭 같은 사이였을 우리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 연대(?)하며 친구보다는 가깝고, 연인이라기에는 조금 먼 사이가 되었다. 가야 할 길이 다르고 어떤 것도 약속할 수 없다는 생각에 둠칫거리다 보니, 규정할 수 없는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 뜨내기 생활을 하며 만나고 헤어진 많은 얼굴들처럼, 적당히 자연스럽게 보내야 한다고 다짐했는데, 마음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계절처럼 성큼 깊어진다. 그렇다고 손 쓸 수 있는 건 없고. 다만 나는 이 애매한 거리 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마음을 쓴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않고. 그래도 어떤 범위의 바깥에서 Y를 관찰하고 알아가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Y의 왕성한 실현 욕구와 열망이라든지, 깡깡한 신념이라든지, 성찰과 변화가 가능한 유연함이라든지, 눈길의 섬세함이라든지, 현상을 보는 깊이라든지, 의식의 흐름대로 지껄이는 내게 귀 기울이는 포용력이라든지, 내 장난에 핑퐁처럼 반응하는 센스라든지. 작은 부스러기를 하나씩 보태며 조금씩 입체적으로 완성되는 Y를 지켜본다. 한 걸음 물러 선 채로.


오늘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작년 이맘때쯤 무얼 했나 떠올려 보았다. 사직서를 내고, 막 퇴사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그땐 아침이면 커피를 나르고, 하루 종일 전화 응대를 하고, 밤 열 시까지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도 그래, 이 생활도 곧 끝이다! 하면서 근거 없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희망이 다 어디로 갔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여름만큼은 생활과 씨름하지 않고 즐기고 싶다. 몬트리올 생활의 백미라는 불리는 계절이 폭주 기관차처럼 돌진해 오고 있으니까. 다음 주면 낮 최고 기온이 33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백지 같은 하루를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며 불안과 우울과 싸우는 대신, 자전거, 맥주, 여름 햇살, 풀밭 위의 독서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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