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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Aug 30. 2020

#47. 흐린 날 속의 근황

몬트리올 생활 결산

요즘 거긴 어때?라는 물음을 받으면, 습관처럼 날씨 이야기를 하게 된다. 몬트리올의 무시무시한 추위야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겨울만큼 여름이 익스트림하다는 건 누구도 내게 귀띔해주지 않은 사실이다. 8월의 몬트리올은 여전히 덥고, 무척 습하다. 한동안 비가 많이 내렸다. 그것도 몹시 다양하게. 터질듯한 습도를 못 이기고 굵은 빗방울이 (해는 쨍쨍한데) 뚝뚝 떨어지도 하고, 작정하고 퍼붓기도 하고, 요란하게 뇌우가 떨어지기도 했다. 얼마 전엔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다운타운에 나갔다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카페테라스에 있었는데, 툭툭 떨어지던 빗방울이 금세 거센 비바람으로 변했다. 카페 처마 밑(?)에 몸을 피했다가, 결국 자전거를 근처에 묶어두고 우버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도 소파에 누워서 창 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남의 일처럼 거들떠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쿼런틴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


한국 가는 비행을 앞당겼다. 너무 즉흥적인가도 싶지만, 꽤 오래 버텼다는 생각을 한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 바깥 생활이 거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전거를 타거나 장을 보러 가는 일 말고는 야외 활동이 전무했다. ( Y를 제외하고) 가끔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한두 명 정도였고, 늘 붐비지 않는 공원에서 만났다. 유튜브 브이로그 영상들을 보면,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는 하지만) 자유롭게 친구들도 만나고, 식당에서 밥도 먹고, 여행도 다녔다. 자전거를 타러 나가면, 카페나 식당 테라스에 한낮의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와글와글했다. 마치 코로나는 뉴스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코로나가 종식이라도 된 걸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참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캐나다의 형편없는 의료 서비스야 익히 들어 알았지만, 그런 의료 혜택마저 받을 수 없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나를 위축시켰다.


아침이면 온라인 수업을 들었고, 오후에는 숙제를 하거나, 책이나 영상을 보거나, 자전거를 탔다. 온라인 수업은 동기부여도,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아홉 명이었던 수업은 어느새 넷이 되었고, 오후 수업에는 선생님과 단둘이 수업하는 날도 있었다. 수업 외에는 외국어를 쓸 일이 없으니,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걱정 없는 것처럼 살았지만, 사실 불안과 싸우느라 바빴다. 활동은 한정되어 있고, 곁에 사람이 없는 데다가, 감염에 대한 공포까지 더해지니, 매일매일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사념이 많아졌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나를 더 빡세게 굴렸던 것 같다. 번역 연습을 하고, 냉장고에 음식을 쟁이고, 요리를 하고, 부러 먼 곳에 있는 공원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지친 몸으로 소파에 누우면, 내일은 또 어쩌지, 하는 불안이 다시 찾아왔다. 그렇게 원점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외로움과 싸우느라 지쳤었는데, 왜 나는 여기에 와서도 싸우고 앉았나 자주 서글펐다.


그래서 돌아간다.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선선해지는 도시를 뒤로 하고. 몬트리올의 사계절을 보고 싶었는데, 결국 가을은 공란으로 남았다. 이 시간을 채울 기회가 다시 올까 싶다. 그래도 여지를 남기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다시 와야 할 이유가 되니까. 사실, 꼭 가을 때문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다시 오고 싶다. 일 년의 절반 이상이 눈 속에 잠긴 이 도시가 좋았다. 올해 받은 가장 큰 선물이 뭐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미미의 집에서 보낸 겨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적당한 사람의 온기'와 '고요한 마음'이 이상적인 밸런스를 만들었던 시간이었다. 문을 열었을 때 저항할 새도 없이 훅 끼쳐오는 집 안의 훈기가 좋았다. 창 밖으로 조용히 내리는 눈을 지켜보는 것도, 눈을 감고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도, 방문 너머 미미의 피아노 소리를 듣는 것도, 따끈한 미미의 라자냐를 크게 한 입 먹는 것도, 깊은 밤 호박색 등을 켜고 편지를 쓰는 것도, 대문 밖으로 펼쳐진 눈길에 첫 발을 내딛는 것도, 모두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봄의 몬트리올은 춥고 어지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코로나를 피해 급하게 이사를 했고, 새 집에서는 홀로 남겨졌다. 어학원은 문을 닫았고, 친구들을 만날 수도, 운동을 갈 수도 없게 되었다. 식당도 카페도 도서관도 모두 문을 닫았다. 텅텅 비어 있는 마트 진열장이 불안했고,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 범죄가 두려웠다. 그래도 아주 혼자는 아니어서, 나와 같은 처지인 어학원 친구들과 나름대로 연대하며 시간을 보냈다. 줌에서 만나 수다도 떨고, (자가격리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한국 친구들 두어 명과는 정기적으로 만났다. 재밌었던 기억이 많다. 언젠가 줌에서 노래방 반주를 틀어 놓고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서 급만남을 했다. 그 후로 우리는 이삼 주에 한 번씩 우리 집을 아지트 삼아 밤새 밥과 술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이튿날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다 같이 늘어져 있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택시를 타고 헤어지는 게 우리의 의식이었다.


몬트리올의 여름은 자전거와 Y로 기억될 것이다. 참 많이도 달렸다. 푸른 나무 차양이 드리워진 가로수 길을,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한낮의 거리를, 노면이 다 깨어진 형편없는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 홀로, 그리고 자주 Y와 함께. 겨울, 봄,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에서 몬트리올은 생활이 끝이 난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대로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 몬트리올 생활을 시작할 때의 마음의 고요는 온데간데없고, 애초의 계획대로 된 것도 하나도 없지만, 또 돌아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두고 가니까. 이곳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 아직 만나지 못한 몬트리올의 가을이 있으니까. 두고 온 마음이 언젠가 나를 다시 이곳으로 데려올 거라 믿는다. 그때는 싸우지 않고, 평온하고 싶다. 고요한 눈 속에 잠긴 이 도시처럼, 소파에서 바라보는 비처럼, 석양 속을 달리는 자전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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