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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Sep 03. 2020

#49. 집으로 가는 길

코로나 시대의 귀향 기록

몇 시간째 깨어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몬트리올과 한국의 시차는 열세 시간. 현지 시간으로는 오전 아홉 시, 한국 시간으로는 저녁 열 시에 시작한 온라인 수업은 새벽 세 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브레이크 타임에 맞춰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수업이 끝난 후 작문 과제를 완성하니, 동이 텄다. 머리는 아픈데 잠은 오지 않고, 배가 고파서 주섬주섬 밥을 챙겨 먹었다. 귀국한 지 사흘이 되었지만, 어학원 수업을 듣느라 여전히 나는 캐나다의 시간을 계산한다. 머리로는 조금씩 시차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몸뚱이는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바이오 리듬이 완전히 길을 잃었다. 졸리지 말아야 할 시간에 잠이 쏟아지고, 배가 고프지 않아야 할 시간에 밥을 먹게 된다.


격리지를 이탈할 수 없어서 핸드폰을 개통하지 못했다. 한국은 커피도 배달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 배달 어플을 다운받았는데, 가입을 하려면 핸드폰 인증이 필요했다. 숙소가 습해서 향초를 사려고 판매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또 핸드폰 인증을 하란다. 한국은 배달천국이라 격리 중이어도 편할 거라더니, 핸드폰 번호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담당 공무원과는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오전에는 이상 증상은 없는지, GPS가 꺼졌으니 활성화를 부탁한다는 연락이 왔다. 오후에는 잠깐 잠이 들었는데, 핸드폰 활동이 감지되지 않는다며 시청 직원이 숙소에 다녀갔다. 14일 동안 정말로 나갈 생각이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음성 판정을 받았는데 이렇게까지 체크하는 걸 보면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아침저녁으로 성실히 체온과 몸의 이상 여부를 자가격리 앱에 기록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알람이 온다). 일대일 밀착 마크(?)는 비행기에서부터 시작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몇 가지 설문을 준비해야 했다. 인천에 내리자, 입국 검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를 받아 자가격리 앱을 깔고, 설문을 제출하고, 격리지까지의 내 동선과 연락처(부모님)를 꼼꼼히 확인했다. 두 번째 검문과 서류 작성을 거친 후에야, 검역 확인서를 받을 수 있었다. 입국 심사를 받은 후, 짐을 찾고 전용 공항버스를 타고 광명역으로 이동했다. KTX 전용칸에 실려 집과 가까운 지역에 내리자, 내가 사는 도시에서 보낸 구급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급차로 보건소에 들러 코로나 검사를 받고, 소독 물품과 격리 지침을 받았다. 구급차는 자가격리할 숙소 앞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새벽 두 시 반. 몬트리올을 떠나 거의 26시간 만에 도착한 집이었다.


나도 고되고 힘들었지만, 새벽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것도 이 더운 날 마스크와 방역복 차림으로. 그저께까지만 해도 안티 마스크 시위(!)가 벌어지던 나라, 접촉자들에게 검사를 '권고'만 하는 나라에 있었는데, 이 모든 게 놀랍기만 하다. 다음 날 아침 숙소 앞에 생존 키트가 와 있었다. 자가격리 수칙이 붙어 있는 상자를 여니, 스무 개 들이 햇반과 인스턴트 음식이 쏟아져 나왔다. 상자에 담긴 포카리 스웨트 3리터에서 정말, 제발, 부디 나오지 말아 달라는 정부의 간곡함, 혹은 절박함이 느껴졌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쓰는데, 증상이 있거나 심지어 확진 판정을 받고도 시내를 휘젓고 다니던 미친 인간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가 싶었다.


인스타그램에 한국에 도착했다는 피드를 올리자, 환영의 메시지가 속속 도착한다. 캐나다 락다운 풀린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걸 한국에서 또 겪게 생겼다고 말하니 너어는 코로나의 신 아니냐, 네가 데려온 거냐, 재미도 없는 농담이 날아온다. 사실, 그런 말도 안 되는 농담조차 반갑다. J는 내 귀국 소식을 듣자마자 숙소로 과자 택배를 보냈다. 주문 하루 만에 (어메이징 코리아..) 집 앞에 도착한 상자 속에는, 할미 입맛을 살뜰히 저격한 고구마형 과자와 왕소라형 과자 따위가 잔뜩 들어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 오기도 한다. 귀향은 물리적으로 소원해진 사람에게 말을 건넬 좋은 계기가 된다. 서울에 가면 꼭 만나자, 이야기했지만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반갑고 고마웠다.


제목 위에서 커서가 오랫동안 깜빡인다.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써야 할까, 집으로 오는 길이라고 써야 할까 고민한다. 그건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였다. 몬트리올에 남겨둔 마음을 생각하면, 집으로 가는 길이 맞을 것이고, 앞으로 생활할 한국을 생각하면, 집으로 오는 길이 맞을 것이다. 고민 끝에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쓴다. 마음이 아직 몬트리올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서다. 한국의 체계적인 방역도, 총알 배송도, 핸드폰 인증도, 나를 반기는 친구들의 메시지도 아직은 낯선 걸 보면. 사진첩을 그만 열어봐야지,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잊어야지, 그만 돌아봐야지, 앞을 바라봐야지,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마음까지 함께 돌아가려면 26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어두울 때 잠이 드는 연습을 해본다. 아주 천천히, 나는 집으로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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