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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륜 Apr 16. 2018

[법륜스님 즉문즉설] 게으른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워요

[즉문즉설은 질문자의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한 대화입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질문자 “파리에서 석사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지금까지 힘든 공부를 마치고 나름대로 열심히 제 꿈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학위를 취득하고 나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굉장히 게으른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하기로 해놓고 못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게으른 마음이 극복되지 않습니다.”



법륜스님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뭘 극복을 해야 해요?”


“...”


자기한테 실망한다는 건 자기를 너무 높이 평가한다는 뜻

“자기한테 실망한다는 건 자기를 너무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에요. 질문자가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을 너무 높이 크게 그려놓으니까 이 높고 큰 자기가 현실에 있는 자기를 보면 한심스러운 거예요. 이것이 자기에 대한 실망이에요. 여러분들은 이 현실에 있는 자기를 환상의 자기에 맞게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데, 그렇게 하면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만족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환상의 자기를 버려야 해요. 환상의 자기를 버리고 보면 현실의 자기는 아주 훌륭하고 건강한 사람이에요. 질문자는 지금 그대로 아주 소중한 사람이에요. 우선 신체가 건강한 것만 해도 엄청난 재산이고, 프랑스에 사는 것만 해도 엄청난 행운이에요.(청중 웃음)


또 어린아이가 볼 때 질문자는 엄청난 기득권자예요. 아이가 질문자만큼 크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이미 질문자는 다 큰 상태잖아요. 아이는 앞으로 질문자만큼 공부하려면 엄청나게 노력해야 하는데 질문자는 이미 공부를 다 해놨고요. 그러니 뭐가 문제예요? 질문자가 그린 자신의 그림이 너무 커서 그 기준에서 볼 때 자신이 작게 보이는 것뿐이에요.


이렇게 환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지금 여기, 자신에게 깨어있지 않은 거예요. 질문자의 존재 자체는 이대로 엄청나게 소중한 존재예요. 질문자의 존재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부모님은 질문자를 낳아서 키우는데 엄청난 공을 들였고, 질문자도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공부하고 노력했어요. 그런 과정들의 결정체로 지금 질문자가 여기에 있는데 자기에 대해서 실망한다니 도대체 질문자는 어느 정도의 사람이 돼야 만족한다는 거예요? (청중 웃음)


여기 있는 분들 모두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자신의 노력과 얼마나 많은 주변 사람들의 노고에 의해서 자기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를 알아야 해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엄청나게 소중한 존재예요. 자신을 함부로 팽개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배신이고, 부모에 대한 배신이고, 나를 있게 해 준 사회에 대한 배신입니다.


첫째, 지금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는 게 뭐 그리 큰일이에요? 뭘 하겠다 해놓고 못하는 게 뭐 그리 큰일이에요? 안 해도 되는 일이니까 안 하는 거예요. ‘내일 아침에 기도하겠다’ 그래 놓고 아침에 못 일어나는 건 안 해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박사 학위 따겠다’ 해놓고 공부가 잘 안 되는 건 박사 학위 안 따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걸 억지로 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렇게 억지로 하지 마세요. 자기가 목표로 세운 기준에서 보면 못 미치겠지만 제가 볼 때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주 훌륭한 젊은이예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줄 알면 이 세상에서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러니 내일부터 밖에 나가서 물건 배달부터 시작하면 돼요. 그렇게 하다 보면 다른 자리로 옮겨갈 수도 있어요. 두 가지 빼고 뭐든지 하세요. 불법적인 행동과 부도덕한 행동은 안 돼요. 불법적인 행동은 당장 피해가 오고, 부도덕한 행동은 지금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미래에 피해가 옵니다. 이 두 가지 빼고는 뭐든지 직업에 귀천을 따지면 안 돼요. 일단 생존을 위해서 무조건 일하세요.


두 번째, 이왕 하는 건데 노동효율이 높으면 좋겠죠. 그렇게 일단 시작해서 하다가 노동효율이 높은 쪽으로 이동하는 게 두 번째 단계예요. 질문자의 전공이며 재능을 점점 살려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자기 재능이 뭔지 모르겠다는 경우엔 뭐든 하다 보면 좀 더 효율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게 있어요.


세 번째 단계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예요. 이건 수입이 팍 줄어도 괜찮아요.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놀이와 같은 것이니까요. 이런 일은 먹고만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돈 계산을 하면 안 돼요. 놀이 삼아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해서 궁극적인 목표는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사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런데 ‘하고 싶은 걸 해서는 밥 못 먹고 산다’라고 생각이 든다면, 우선 여러분들이 잘 하는 일을 하고, 하고 싶은 건 취미로 하면 돼요. 저 같은 경우에도 이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해서는 밥을 먹을 수 없을 때 수학 선생을 해서 먹고살고, 나머지 시간에 그 돈을 써가면서 전법활동을 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 일의 취지가 좋다고 사람들이 조금씩 기부를 하고, 그것으로 활동이 유지되니까 수학 선생을 그만둔 거예요.


저는 제가 먹고 입는 것을 여러분들이 안 도와줘도 괜찮습니다. ‘스님, 우리 집에 와서 주무세요’ 하고 초대해 주면 초대해 주는 대로 갑니다. 초대한 사람의 생활수준이 어렵다면 침낭 가지고 한 방에서 7명씩 자기도 하고, 여유 있는 사람의 초대로 넓은 방에서 잔적도 있지만, 그런 차이는 저한테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눈만 붙일 수 있으면 되니까요. 강의료를 안 받고 강의를 합니다. 저는 놀이 삼아 인생을 살아요.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파리에 와서 대학까지 나오고 박사까지 따서 물건 배달하는 일하는 게 창피한가요? 그걸 왜 창피하게 생각합니까? 물건 배달해주고 청소해주는 건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이잖아요. 왜 그걸 박사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현대적이지 못한 사고방식이에요. 젊은이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죠. 청소라는 건 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하는 일이잖아요. 그걸 해주고 돈 버는 게 왜 스님이 하면 안 되고 박사가 하면 안 됩니까?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재능을 알아주면 자기 재능을 살려서 하되, 몰라주면 또 어때요? 내가 한 포기 풀처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가 있어요. 관점을 그렇게 가지면 문제가 안 되는데 질문자가 자기를 너무 높이 평가하니까 문제가 되고 자기에게 실망하는 거예요. 자기에게 실망한 사람은 대부분 자기를 너무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에요. 환상 주의자들입니다.(모두 웃음)


인생을 너무 굉장한 듯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산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다람쥐 한 마리나 여기 있는 여러분들이나 다 똑같아요. 자기가 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음식 안 먹으면 금방 수명이 끊어지는 존재에 불과해요. 전자 기기가 작동이 잘 되더라도 전기 코드를 딱 뽑으면 끝이잖아요. 여러분들이 대단한 척해도 코드 뽑으면 끝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 뭘 그렇게 대단한 척하고 살아요? (모두 웃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줄 알면 이 세상에서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여기 파리까지 와서 그렇게 괴로워하며 살아서 되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여러분들이 파리에 산다고 굉장히 부럽게 생각하는데 정작 이곳에 와서 저렇게 괴롭게 살면 어떡해요? 그래서 저는 천국에 별로 가고 싶지가 않아요. 기대하고 갔는데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다 괴롭게 살고 있다면 얼마나 실망이 크겠어요? (청중 웃음) 그러니 질문자가 관점을 조금 바꾸면 좋겠다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한 명 한 명은 엄청나게 소중합니다. 여러분 한 명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여러분들의 노력이 있었습니까? 서정주 시인의 국화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서도 엄청난 천지의 은혜가 있었다고 하는 얘기가 있지요. 국화꽃 한 송이 피우는데도 그러한데 한 사람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겠습니까? 그런 여러분을 본인이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오늘 하루는 그냥 단순히 하루가 아닙니다. 저의 경우에는 65년의 경험이 쌓인 위에 하루입니다. 지난 65년 기반 위에 선 하루고, 내일의 하루는 오늘까지를 포함한 하루입니다. 인생살이의 매일매일은 그냥 수학적인 하루하루하고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러니 첫째, 자기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두 번째는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는 정반대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너무 과대망상적으로 굉장한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길가에 있는 풀 한 포기 같은 존재입니다. 이 둘이 모순이고 정반대인 것 같잖아요. 우리는 이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동시에 길 옆에 핀 풀 한 포기 같은 존재입니다. 이 말은 길 옆에 핀 풀 한 포기가 이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우월의식에도 빠지지도 않고 열등의식에도 빠지지 않고 지금 여기 내 삶을 하루하루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살아갈 수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쫒다가 죽을 때까지 행복은 누려보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생을 마치게 됩니다. 행복은 언젠가 내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가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행복은 언젠가 내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가 누리는 것이 행복입니다.  


더 자세히 보기 https://goo.gl/mULA3C


[법륜스님의 모든 콘텐츠는 자원봉사자의 손길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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