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다르다, 그럼에도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거리를 좁혀나간다는 것, 그것이 내게 주는 의미
2월 중순에 처음 만난 동료는 나와 비슷한 색채를 띠고 있는 듯했다. 서로가 비슷한 색채를 띠고 있다는 걸 알아챈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을 쌓아 나가면서 우리는 서로가 갖고 있는 다양한 색깔을 참 많이 발견했다. 서로 다른 색깔로 인해 놀라는 날도, 당황하는 날도 생겼다. 때때로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색깔을 마주할 때면 갈등을 경험해야 했고, 갈등의 순간이 쌓이고 쌓여 우리가 지닌 색깔이 끝내 섞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색이라 여겼는데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다른 색을 띠고 있는 사람임을 발견하는 일은 꽤나 속상하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 사람이 적당한 거리를 두어도 되는 사람이라면 나랑 다른 색을 띤다는 사실이 나를 전혀 고민하게 하지 않았겠으나, 이미 꽤나 가까워진 사람이면서도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었기에 어려웠다. 다른 색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같은 색을 띠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 같은 색인 줄 알았는데 다른 색을 띠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단지 순서가 뒤바뀐 것뿐이지만 관계의 형성과 발전을 고려했을 때 너무나도 다른 의미인 것만 같았다.
돌아보면, 나의 색깔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딱히 없었다. 또다시 돌아보면, 가만히 나의 시간들을 더듬어 보면, 뚜렷한 색을 띠고 그것을 있는 힘껏 발현하며 살아오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다른 이들을 만나며 언제나 그냥저냥 잘 녹아들어 살아온 편이었으니, 뚜렷한 색을 띠고 있는 쪽보다는 무난한 색을 띠며 적당한 빛깔을 품고 있는 정도라 생각했다. 그러나 흰 도화지에 나의 색을 칠하는 것과 이미 특정한 색을 띠고 있는 상대와 적절히 섞이며 새로운 색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완전히 다른 과정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만큼 뚜렷한 색을 지닌 상대방과 충돌할 때면 느껴지는 건 상대방의 색깔뿐만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색깔도 뚜렷이 느낄 수 있었지만, 오히려 나의 색깔이 더욱 짙게 느껴졌다. 내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어떤 것을 참지 못하는지, 어떤 것에 답답함을 느끼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날이면 때로는 낯설기까지 했다.
낯선 감정은 말 그대로 '낯선' 감정이었기에 마주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예기치 못한 나를 만나고, 그로 인해 낯선 감정이 들이닥칠 때면 나는 무의식 중에 스스로를 방어하곤 했다. 내가 모르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 정확히 말하면, 모르고 싶던 나를 마주하는 일이 마냥 유쾌하고 반갑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나와 다른 상대방과 낯선 나를 수용하는 대신 거리를 두며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방향을 택했다. '이 사람은 나와 안 맞을지도 몰라.', '내가 그렇다고? 설마, 그럴 리가. 상대방에 따라 내 모습이 달라지는 거겠지. 그건 당연한 일이잖아.' 당장은 믿고 싶지 않은 마음에 스스로 만들어 낸 균열은 나를 한동안 혼란스럽게 했고, 어떤 날은 애초에 잘 맞는 사람을 만났으면 덜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는 아마 상대방도 마찬가지였을 테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상대방의 색을 마주하면서 자신의 색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일 테니.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마음에서였는지 어떻게든 상대방의 색을 이해하려 무던히 애썼다. 애쓰는 과정이 쉽지 않았음에도, 각자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했고 힘에 부치는 날이면 견디다 못해 토로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비워진 마음은 좀 더 애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조금 다른 색채를 이해하며 거리를 좁혀 나갔다. 다른 색을 이해하려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묻는다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많은 이유 중에 가장 크고 힘이 센 이유는 '사랑'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려 무던히 애쓰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그렇다.
오늘도, 여전히,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고, 노력하는 시간을 보내며 '이해'라는 덕목을 몸소 배우고 있다. '이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타인을 많이 이해하는 편이라고 여겼던 나는 비로소 '이해'가 얼마나 노력을 요하는 일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픔과 슬픔을 만나게 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끝에는 환희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아가고 있다. 나아가 '사랑'이 무엇인지, 어떤 것까지 가능하게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섞이지 못할 것 같았던 색들이 점차 섞여 조화로운 색채를 띠게 되고, 좁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거리가 점차 좁혀지고 있음을 발견할 때면 나와 다른 색을 이해하고 나와 다른 상대방을 만나 거리를 좁혀나간다는 것은 마음이 시릴지라도 결국 의미 있는 일임을, 농도 짙은 따뜻함을 향해 나아가는 길임을 오늘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