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임하는 태도에 대하여
어느 날 맞닥뜨린 내 모습이 낯설어서
관계를 맺고 마음을 주고받는 일, 그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온기를 느끼는 일은 나라는 사람에게 꽤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정이 많은 편인 나는 내가 맺게 된 많은 관계에 진심을 다하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며칠 전 퇴근길이었다. 중학교 친구들로 이루어져 있는 단톡방에서 뜻밖의 메시지를 받았다. 나를 포함하여 네 명의 친구들로 이루어져 있는 그 모임은 매달 회비를 걷으며 흔히 말하는 '계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모인 액수에 비해 만난 횟수가 그리 많지 않은 모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직종이 달라 쉬는 날을 맞추기가 어려운 데다가 거주 지역마저 같지 않아 잦은 만남이 좀처럼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네 명의 친구들 중 만남을 추진하고자 유독 애써주는 친구가 있었다. 뜻밖의 메시지를 보낸 친구는 그 친구였다.
만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계를 유지하는 의미를 모르겠고, 지속적으로 만남을 추진하려 했으나 매번 잘 되지 않아 지치고 힘들다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친구의 말에는 실망과 서운함이 묻어있었다. 갑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순간이 반복될 때의 지치는 마음, 구성원이 잘 따라와 주지 않을 때의 회의감과 실망은 충분히 그럴 만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이대로 끝내기에는 무언가 헛헛하고 아쉬웠다. 친구가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은 것을 계기로 서로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써 가면서 계를 이어가 보는 것은 어떻냐고,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자고 말해 보았지만 친구의 태도는 꽤나 완강했다. 이미 예전부터 차곡차곡 쌓인 마음이 터진 것 같았다. 처음 메시지를 받았을 때에는 계 모임은 파할지언정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친구였던 관계가 흔들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며칠 내내 완강한 친구의 태도를 보니 관계가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정작 마음을 편히 터놓을 만한 친구는 손에 꼽는 내게 이 모임은 꽤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관계 중 하나였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도 언제 만나든 편하고 즐겁게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그런 관계라 생각했는데 나의 안일함이 친구를 지치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고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이윽고 온도가 너무 다른 생각이 뒤따랐다. 아쉽긴 하지만 여기 까지라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 완강한 친구에게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냐는 생각, 최선을 다해 내 마음을 전하고자 노력하되, 상대방이 그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나도 더 이상 무언가를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 뜻밖의 차가운 생각에 흠칫 놀람과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돌아보면 그리 진득한 관계가 아니었음에도 헤어질 때면 아쉬운 마음에 관계를 이어가 보려 노력하는 나였다. 더군다나 중학교 친구들은 가깝고 소중한 관계임에도 왜 이런 차가운 생각이 뒤따른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근래에 내가 관계에 임하는 태도를 더듬어 보니, 요즘의 나는 예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연애를 할 때에도 최선을 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을 덜 쏟고 분리하려 무던히 애쓴다거나, 상대방과 나의 차이점을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좁혀 나가려고 하기보다는 다르면 다른대로 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었다. 직장에서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까워지더라도 어차피 학교를 옮기면 금세 멀어질 관계라는 것을 전제로 동료들을 대하고 있었다. 어차피 상대방은 내가 될 수 없을 테니,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거나 내 입장에 서 주길 바라는 기대 같은 건 온 데 간 데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의 관계에서 성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매 순간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하되, 딱히 의미 부여는 하지 않은 채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왜 진심을 다해 상대방을 대하면서 언제든 관계가 정리되더라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걸까. 이 마음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며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관계에 초연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과정인 걸까, 아니면 그저 스스로를 상처와 실망으로부터 지키고 싶어 하는 겁쟁이가 되어 가는 걸까. 사람 간의 적당한 거리를 알고 유지하며 관계에 의연할 줄 아는 것, 관계에 마음을 솔직하게 쏟을 줄 알고 상처와 실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나는 어떠한 태도로 관계에 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