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라다'의 의미는 틀렸다

웃자란 식물을 정리하며, 쓸데없이 자라는 시간은 없음을

by 폼폼

올해 식목일, 화창한 시작을 기념하려 샤스타데이지와 만수국 씨앗을 사서 심었다. 늘 끝까지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어본 적이 없는 터라 식물을 심을 때면 설레면서도 비장해진다. 이번에는 꼭 결실을 맺어보리라고, 꾸준히 잘 가꾸어 보리라고. 소질이 없음에도 꾸준히 무언가를 심는 이유는 무언가를 잘 가꿔내는 일이 은연중에 나를 돌보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통풍 잘 되는 베란다에 햇빛 가득 쬐어주고 혹여나 씨앗이 흙 표면으로 드러날까 물도 조심스레 주었다. 우리는 무엇이든 간에 잘해보려 '첫 마음'을 먹었을 때 가장 애쓰고 관심을 많이 쏟기 마련이다. 꽃과 열매를 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그 첫 마음을 끝까지 가져가는 일 뿐이다. 올봄의 나 또한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되면서 정성스레 애쓰는 중이었다. 혹여나 놓치는 일이 있지 않을까, 부족한 점이 있지는 않을까 하루하루 살피면서. 일주일 즈음 지났을까, 하나둘 여기저기에서 새싹이 올라왔다. 뿌듯한 나는 한 번 더 마음을 다졌다. '이번에는 진짜 잘해봐야지.'


봄이 지나 여름에 접어들 무렵, 잘해보고 싶던 일은 어느새 잘해야만 하는 일로 변해갔다. 여름이 오고 있음을 알리려는 듯 내리쬐는 햇볕이 종종 버거운 날이 찾아왔고, 데이지와 만수국도 때때로 잎을 축 늘어뜨렸다. 나는 그들이 지친 기색을 내비칠 때가 되어서야 물을 건넸지만 그들은 고맙게도 꾸역꾸역 크고 있었다. 어느 정도 자라자 그들의 집이 가족 구성원에 비해 너무 비좁아 보였다. 문득 '너희들도 숨 쉴 틈쯤은 있어야지' 싶어 생전 처음 분갈이를 했다. 바닥에 흙을 흩뿌려 가며 한 어설픈 분갈이였지만, 무심함 속에서도 키를 키우는 그들이 쓰러지지 않았으면 해서 잔줄기도 정리하고 나무젓가락으로 지지대도 만들어 세워주었다.


그렇게 찾아온 올여름은 몹시도 무더웠다. 나는 결국 단단한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베란다에서 무성히 자라는 만수국을, 눕고 싶은 듯 가늘게 옆으로만 자라는 샤스타데이지를 방치해 뒀다. 만수국은 또다시 좁아진 집에서 자기네들끼리 줄기를 엮고 엮으며 속수무책으로 자라고 있었다. 멀찍이서 보면 마치 숲을 이루고 있는 모양새였다.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만수국의 꽃말에 걸었던 믿음은 시든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언젠가 꽃이 피기를 바라는 마음은 끝내 버리지 못했던 걸까. 늦여름과 초가을 즈음이 개화 시기라는 사실을 잊을만하면 떠올리곤 했다.


제대로 돌보았다면 늦어도 둘 다 9월 즈음에는 꽃을 보았어야 했다. 하지만 샤스타데이지는 성장을 멈춘 듯했고, 만수국은 계속해서 새로운 줄기를 뻗치며 이파리만 무성히 피워냈다. '이렇게 자라는 게 맞는 건가' 의구심이 들어 인터넷 검색을 하다 식물이 마구잡이로 자라는 것을 '웃자란다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쓸데없이 보통 이상으로 많이 자라 연약하게 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쓸데없이', '많이' 자라는데 심지어 '연약하다'니, 어쩐지 좀 억울한 의미 같기도 했다. 만수국을 자세히 보니 굵고 긴 줄기 사이사이에 작고 가느다란 줄기가 한없이 자라나고 있었다. 겉보기엔 무성히 잘 자라는 것 같아 보이지만, 나의 만수국은 확실히 웃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했다. 짧은 시간 안에 새롭게 많은 것을 해내느라 지난날의 나보다 사회적으로 유능해졌을지언정 무기력함과 회의감에 빠져 많이 약해져 있었다. 첫 마음의 불씨는 꺼진 지 오래, 타고 남은 재로 뒤덮여 사람에 대한 믿음도, 나아가 나에 대한 믿음까지도 희미하게 옅어져가고 있었다. 물을 머금지 못해 말라가는 이파리들이 못내 신경이 쓰여 물을 한꺼번에 몰아서 흠뻑 주는 일 외에 나는 그들을, 그리고 나를 돌보지 않았다.


한참을 방치해 두었더니 마음이 쓰였다. 이렇게 계속 외면해서는 안 되었다.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지 못해 몇 번이고 일어나려 했지만 이내 또 주저앉기를 여러 번 끝에, 상담을 받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며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자 조금 일어설 힘을 채울 수 있었다. 베란다에 있던 만수국도 오랜만에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본 만수국 이파리 사이에는 자그마한 꽃봉오리가 하나 맺혀있었다. 10월 중순 무렵, 작은 꽃봉오리를 만났다.


올해 식목일에 품었던 첫 마음이 되살아났다. 이번에는 꼭 결실을 맺어보리라고, 꾸준히 잘 가꾸어 보리라고 다졌던 첫 마음. 어디서부터 다듬어주어야 할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무성해진 만수국이었지만, 느지막이 만난 꽃봉오리를 꼭 피워내고 싶었다. 오래도록 방치해 둔 터라 어떻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여름과 지금의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어려울지라도 하고 싶었다. 무어라도 해내고 싶었다.


정보를 찾아보니 웃자란 식물은 과감하게 가지를 정리해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정리해 내기엔 가지가 지나치게 많이 뻗어있긴 했다. 한편으로는 여태껏 열심히 자란 줄기들을 가지치기하는 게 맞는 건지도 의문이 들었다. '나름대로 잘 크려고 애쓴 녀석들일 텐데'. 그럼에도, 내려놓아야 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여태껏 놓지 못해 붙잡고 있어서 그토록 괴롭지 않았던가. 자잘한 줄기들은 지금까지 만수국을 자라도록 했지만 이제는 불필요한 아이들이었다. 아예 꽃을 피운 줄기만 새롭게 키울 수 없을까 싶어 찾아보니, 줄기를 잘라 물꽂이 후 뿌리를 내리면 다시 심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꽃봉오리가 맺힌 줄기만 과감히 잘라 물을 채운 화병에 꽂고 나머지 줄기와 뿌리들은 보내주었다.


웃자란 식물을 정리하고 보니, '웃자란다'가 지닌 의미는 틀린 게 아닌가 싶다. 이 세상에 '쓸데없이' 자란 건 없다. 쓸데없이 많이 자라 연약하다고 치부된 나의 만수국은 수많은 줄기를 뻗칠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끝내 꽃봉오리를 피워내지 않았는가. 짧지 않은 시행착오와 방황 끝에 좀 더 단단해진 나와 되찾은 첫 마음이 그렇듯이 말이다. 식물이 웃자라듯 쓸데없이 보낸 시간 같았어도 결국에는, 결실을 맺기 위해 거쳐야 했던 시간이었음을 지금에서야 알아차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시간 속에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잘 추려내어 결실을 맺는 일만 남았다. '올해는 꼭 꽃을 피워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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