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 셋째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데, 둘째는 미디어에 빠져드는 속도가 너무나 빠를 뿐 아니라 미디어에 잡아먹힌 듯한 느낌을 줄 때가 많다.
그리고 둘째는 어릴 적부터 순진하고 착한 편이었는데 그 아이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한 것도 초등학교 4학년, 핸드폰게임을 몰래한 것이었다. 아이가 피곤해하고 졸려하고 늘 같이 자고 싶어 하는 아이가 혼자 자겠다고 하고.. 그렇게 어느 순간 아이가 몰래 핸드폰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아이에게 물었는데 너무나 억울해하는 것이다. 자기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는데 그걸 완전히 믿었다. 어쩌면 내가 만들어놓은 아이의 모습을 믿은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던 순간,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지겨운 미디어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3년째이다.
여행 오기 전 아이는 또 무언가를 잘못했고 스스로 말하기를 100일 동안 미디어를 하지 않겠다고 했고 꽤나 잘 지켜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여행이 끝나면 100일이 지난다.
엄밀히는 여행기간 동안은 미디어 사용, 그러니까 핸드폰 사용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여행지에 와서 그게 되겠는가.
아이는 숙소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와이파이를 연결시켰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그냥 넘어가는데 그 정도가 지나치는 것 같다.
몇 번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이 터진 것이다.
아이가 눈을 뜨자마자 옆으로 누웠는데 핸드폰을 하는 듯하다.(게임은 아니고 그냥 찍은 사진을 보는 정도였을 것이다.)
"지금 뭐 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 하는 거야?"
"아니, 누워있었는데.."
화가 난다. 아이와 계속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핸드폰 만진 거 아니었어?"
"만졌는데 한 건 아니야."
이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아이에게 또 많은 말이 쏟아진다.
그렇게 아침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와 셋째는 세례를 받은 가톨릭신자이고 오늘은 일요일이다.
우리는 그랩을 불러 20여분을 가는 성당에 가기로 했고 계획상으로는 첫째와 둘째는 숙소에 있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의 사건을 시간을 늦추었고, 함께 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둘째는 싫었을 테지만, 엄마의 눈치가 보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냉전상태로 우리는 미사를 보러 갔다.
영어로 진행되는 미사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생리통이 너무 심하다.
선풍기가 감당하기에는 더운 날인데 선풍기만이 유일한 냉방기기이다.
벌떡 일어나 나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미사가 끝나고 나니 간단한 간식을 나눠주신다.
미사가 끝난 후의 풍경이 어느 현지인의 모임에 초대받은 듯 또 좋다.
컨디션은 쳐지는데, 보이는 풍경은 좋다.
보이는 풍경은 좋은데, 둘째 아이와의 냉전은 여전히 유지 중이다.
오늘 우리의 일정은 호랑이 사원이라고 불리는 '왓 탐 쓰아'이다.
1260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진입하는 계단은 그 높이도 적당하고 이 정도면 할 만한 것 같다.
내 눈치를 살피던 둘째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고 셋째도 형을 따라서 올라갔다.(엄마와 냉전이 아니어도 아이는 빨리 올라갔을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첫째는 그래도 엄마와 속도를 맞춘다.
나는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는 편이다. 어렸을 적부터 운동신경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매년 한라산을 오른다.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 백록담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렇지만 등산을 잘하지는 못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들게 더 올래 걸린다.
내가 잘하는 것은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이다. 나는 등산도 그런 꾸준함으로 한다.
초입의 낮은 계단은 이제 높은 계단이 이어졌고, 몇 걸음 못 가 헥헥 거리는 엄마에게 빨리 오라는 첫째이다.
"엄마는 엄마의 속도로 갈게."
"그럼, 나도 나의 속도로 갈게."
그렇게 첫째도 빠르게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빠르게 정상으로 올라갔다.
왓 탐 쓰아에 오기 전 핸드폰 유심칩을 한 달짜리로 교체했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것은 일주일 짜리였고 오늘은 그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도 오늘 늦은 시간까지는 사용이 가능하여 그 유심칩을 첫째 아이의 핸드폰에 꽂았고 오늘 반나절 정도는 첫째의 핸드폰 사용이 가능했다.
아이에게 전화가 온다. 헥헥 거리며 대답한다.
"열심히 가고 있어."
지금까지 많은 외국인을 만났다. 눈이 마주치면 더러 눈인사를 하기는 하지만, 어쩌다 그런 찰나의 순간이 흐를 뿐 개별적 인간으로 존재하였다.
그런데 이곳, 계단 앞에서 개별적 인간이 '우리'가 되어가고 함께 헥헥 거린다.
여권의 무늬가 제각각인 많은 사람들은 함께 헥헥 거리며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우리는 말을 내뱉지 않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죽을 것 같죠. 저도요. 그런데 여기서 내려갈 수는 없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1,000개의 계단을 오른 것 같은데 보이는 숫자는 겨우 500이다. 정말 오도 가도 못하겠다.
그리고 820개의 계단까지 올라갔을 때, 나는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 바꿔줘. 아들아, 엄마 좀 데리러 와 줘. 엄마가 너에게 화난 마음을 다 풀게."
미사를 가느라 얇지만 긴 팔 원피스를 챙겨 입었고 사원은 복장을 검사한다고 하니 잘 된일이다 싶었다.
그리고 나는 늘 크로스백을 메고 다녔는데 거기에는 우리의 모든 여행경비와 여권이 들어있었다.
그 가방의 무게가 천근만근이다. 이 가방만 벗어버려도 살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의 유일한 영웅은 나의 둘째이다.
아이는 곧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에게 왔다.
보자마자 두 손이 절로 아이를 항해 펼쳐진다.
화가 났던 모든 감정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리고 마냥 반갑다.
이후부터는 거의 아이에게 실려갔다. 아이는 고맙게도 물도 가지고 내려왔고 나의 가방을 메고는 내 손을 잡고 끌어주었다.
그렇게 토할 것 같은 힘겨움과 함께 아이의 도움으로 꼭대기에 올랐고 거기에서 보는 풍경은 정말 황홀했다.
나는 평지는 하루에 6-7시간도 걸을 수 있지만 계단은 정말 힘들어한다.
그래서 계단으로만 이루어진 이곳이 계단과 평지와 산길로 이어진 한라산보다도 훨씬 힘들었다.
나는 오르막보다 내리막을 훨씬 편하게 가는 편이다. 한라산에 오를 때도 등산은 그렇게 헥헥거리다가 하산은 날아다닌다.(적어도 내 기준에는.)
그래도 둘째와 셋째는 나보다는 빠르게 내려가고, 첫째는 엄마 곁에서 재잘되며 함께 내려간다. 내려가는 속도는 나에게 맞출 만한 것이다.
"딸아, 진짜 신기해. 이렇게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이 계단을 오르면서 헥헥거리는데 말도 안 하는데 완전히 하나가 된 것 같아. 정말, 진정한 공감이야. 엄마는 이 계단에서 주고 받는 서로의 눈빛이 최고의 공감인 것 같아.
서로를 이해해 주는 것도 아니고 정말 공감, 너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다. 힘들지, 뭐 이런 거."
"엄마, 나 이거 알아. 이런 게 '함께 맞는 비'야. 그냥, 너를 이해해 줄게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가 되어 그 사람의 상황이 되는 거. 나 이거 배웠어."
1260개의 계단 안에서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온전히 하나의 마음을 나누었다.
1260개의 계단 안에서 우리는 함께 비를 맞은 것이다.
그렇게 온몸이 젖었다.
물론, 비가 아니라 각자의 땀으로..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풍경. 이 풍경을 보기 위한 나의 힘듦 또한 사진으로 담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