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있다
만 16세, 13세, 11세..
고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 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
물론,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고 우리 학교의 편제는 이와 같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의 나이를 더 쉽게 가늠한다.
우리 삼 남매는 사이가 좋은 편인 것 같다.
셋째도 형, 누나를 사랑하지만 특히, 누나를 너무 사랑하는 둘째가 있다.
둘째는 어릴 적부터 순한 편이었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신생아 목욕시간이 되어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결국 자는 아이를 살며시 물에 넣으면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눈을 뜨고 다 씻기고 다시 옷을 입히면 스르르 잠이 들어 조리원 선생님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보니 둘째는 그냥 물을 사랑한다. 여름에 제주 바다에 뛰어드는 그 모습을 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주는 물을 사랑하는 아이다.
게다가 동물은 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이는 개를 좋아하는데 좋다고 달려가 만지는 셋째와 달리 둘째는 묶여있든 돌아다니든 개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개에게 다가가 개를 만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아이 앞에서 개가 사납게 짖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나는 정말 싫어한다. 싫어한다기보다는 무서워한다. 직장동료와 밥 먹으러 나가는 길 직장 동료가 앞서 가다가 개가 오는 것을 보고 나에게 알려주었는데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 다시 사무실로 걸어갔고 사무실 문을 닫는 순간 개가 나를 따라왔다는 것을 알고 펑펑 울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점심은 먹지 못했다.
아이는 동물 키우기를 원했고 나는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다. 그런 부분이 미안했고 물과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의 모습이 또 너무 예뻤다.
그래서 제주와는 다르게 물고기의 색이 예쁜 태국 바다를 둘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가 태국인 것도, 제주도에 살면서 굳이 태국 남부인 끄라비로 온 것도 둘째를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와보니 아이가 행복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도 동물도 아닌 '누나'였다.
첫째 아이는 동생에게 살가운 편이기는 하지만 할 일이 많다며 집에서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있는 편이었다. 아이는 누나방에 들어가고 싶어서 편지도 써서 방문 밑으로 넣고 누나 방문 앞에서 '누나, 누나' 불러대는 것이다. 그래도 누나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은 쉬이 주어지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여행.
우리는 계속 하나의 방을 쓰고 막내가 11살로 무료 투숙 대상이니 침대는 세 개 혹은 두 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세 개의 침대를 쓰게 되더라도 자기 직전까지 누나 침대로 올라간다. 누나는 피할 길이 없다.
그러다 두 개의 침대를 쓰게 되면 아이는 더 신이 난다. 누나와 함께 자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의 적극적인 구애에 '엄마, 엄마' 부르는 첫째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여행의 나날들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 숙소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예약마감, 그리고 4명이 지낼 숙소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알고 보니 지금이 태국의 성수기라고 한다. 고민하느라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숙소들도 조금 지나고 보면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3일을 묵기로 결정한 숙소는 아오낭비치에 조금 더 가까운 숙소였고 수영장에는 미끄럼틀도 있다고 한다.
새로운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묘한 긴장감이 있다. 그리고 도착한 숙소는 또 실망스러웠다. 방은 큰데 모텔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데 내가 변했다.
'괜찮아, 삼일만 지낼 건데 뭐.. 그래도 방이 진짜 크긴 하네.'
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재빨리 좋은 점을 찾아낼 수도 있다.
둘째와 셋째는 수영하러 가고 첫째는 수영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이겨내며 내 옆에서 재잘거린다.
나는 넓은 방에서 짐을 풀며 함께 마음도 풀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더 이상 머물 수는 없을 것 같다. 삼 일 후에 옮길 숙소를 알아보는데 성수기라는 것이 느껴진다. 분명, 한국에서 숙소를 알아볼 때는 많았는데 예약불가한 곳이 많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며 보니 정말 끄라비타운보다 물가가 비싸다. 투어를 하게 되면 보통 픽드롭 서비스가 되니 구태여 물가가 더 비싼 이 지역에 머무를 이유가 없는 듯하다.
그리고 계획상 아오낭비치 인근에 머물다가 레일라이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레일라이의 숙소를 잡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그냥 다시 끄라비타운 쪽으로 가고 싶은데 이제 끄라비타운 쪽에도 숙소가 어렵다.
결국 그나마 아오낭 지역의 숙소를 예약하고 수영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갔다. 수영장 인근의 비치체어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아이가 엄마와 누나를 보니 반가워하며 말한다.
"엄마, 여기 수영장 좋아. 근데 수영장 물이 너무 더러워. 막 담배꽁초도 떠다니고 쓰레기도 떠다녀."
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참을 수 있는 나를 발견한다.
"더러운데 왜 놀아. 나와."
그래도 아이들은 즐겁게 미끄럼틀도 타고 수영하며 논다. 그래, 괜찮다. 다시 마음을 다독인다.
아오낭비치 근처라고는 하나 아오낭비치까지는 걸어서 대략 15분가량이 걸린다.
저녁에 산책 겸 걸어서 야시장에 갔는데 정말 물가가 딱 두 배이다.
그래도 더 깔끔한 느낌의 야시장이니까,라고 생각하며 저녁을 즐기고 돌아와 첫째부터 씻었다.
씻고 나오며 아이가 말한다.
"엄마, 우리 진짜 숙소를 옮겨야겠어. 세면대에 물이 새서 속옷 빨고 물 뺐는데 그 물에 내 옷이 다 젖었어."
당장 프런트에 전화를 한다.
"레스트룸 해브 프러블럼(restroom have prolblem)"
잠시 후 관리하시는 분이 오셔서 고쳐주셨는데 고쳐주시고 나니 화장실에서 역한 냄새가 너무 올라온다.
그런데 내가 또 이러고 있는 것이다!
'참을 수 있다. 만족할 수 있다.'
이렇게 나는 여행은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