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두는 날도 있는 거야.
어제 둘째와의 앙금이 남아있는 아침이다. 아이는 내가 무서워 차마 내게 말 걸지 못하고, 나도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오늘은 신청해 놓은 투어를 하는 날이다.
홍섬투어.
끄라비에 오고 나서 며칠을 지내고 보니, 사실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딱히 할 것이 있지는 않다. 그런데 보통은 섬투어라는 것이 아침 일찍 시작하여 여러 개의 섬을 돌아다닌다. 나는 계획적이지 않은 편이라, 사실 필리핀에서 했던 호핑투어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개의 섬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러려면 보통 하루정도를 잡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 일찍 출발하는 듯하다.
이런 투어가 부담스럽다. 예약하고 결제도 했는데 혹여나 셋째가 경기를 한다면 아이는 오전에는 쉬게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여나 간다고 하더라도 하루종일하는 투어는 아이의 컨디션에 따른 조절이 어려우니 선뜻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조금 늦은 시간에 출발하면서 반나절정도만 하는 홍섬투어를 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투어를 해보면서 분위기를 살펴보며 우리의 일정도 짜면 될 것 같다.
이전에 했던 맹그로브카약은 본격적인 물놀이가 아니었다. 제주도에 사는 우리가 굳이 이곳에 온 이유는 바닷속을 즐겨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니 오늘은 그 설레는 첫 투어의 시작인 것이다.
그렇지만, 둘째와의 남아있는 앙금은 하루의 시작을 무겁게 만들었다.
어쨌든 우리의 첫 투어를 시작한다.
투어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다시 스피드보트를 탔다. 스피드보트는 처음 타보는 것이니 얼마나 궁금한 것도 들뜬 마음에 치고 싶은 장난도 많았을까.
총 4군데의 장소를 들린다고 한다. 그리고 첫 번째 장소는 '라군'이라는 물 색도 주변 풍경도 이색적인 곳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뺏긴다. 그리고 이 풍경과 함께 아이들을 사진에 담는다.
그리고 도착한 두 번째 장소는 바로 '홍섬'이다. 내가 생각한 호핑투어 같은 것이 아니라 홍섬에 내려주면 비치같이 느껴지는 곳에서 수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나가도 물은 깊고 바닷속은 노란 줄무늬 물고기, 성게, 예쁜 해파리까지 볼 수 있으니 가히 환상적이다.
둘째는 늘 바라는 것은 구명조끼 없이 깊은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바닷가는 노란색 부표로 안전망을 쳐놓고 그 노란색 부표를 넘어가면 안 되는데 그 끝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깊은 바다는 아닌 것이다. 나름대로 우리만의 비밀장소 같은 바다를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의용소방대원이 지키고 있어 다이빙도 깊은 곳으로 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아이는 바다에 뛰어들자, 나를 살피던 불편한 마음은 저 바다에 다 녹여버린 듯 돌고래가 따로 없이 유영한다.
나도 바닷속을 보는데 그 풍경에 마음이 빼앗긴다. 그리고 물고기 떼를 보니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둘째야, 둘째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우리 사이의 앙금은 아무도 모르게 그냥 떠나가 버렸다. 내가 아무리 불러도 둘째는 오지 않는다. 둘째가 어디서 수영하고 있는지 찾을 수도 없다.
깊은 바닷속을 본다는 것은 신기했다. 그저 물고기를 볼 수 있다기보다는 심해의 한켠을 보는 것 같다. 깊은 바닷속의 색과 바위, 그 사이의 성게들까지.. 물고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달리 뭔가 더 오묘하다.
그러니 이 바닷속의 둘째의 마음을 그대로 홀리고 말았으리라.
그리고 아이는 이 순간을 오롯이 보내고 있을 터였다.
드디어 아이를 만났다. 지금의 신기한 경험은 우리 사이의 모든 것을 그저 흘려보냈다.
우리 사이의 앙금은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신혼여행이었다. 어쩌다 보니 신혼여행은 우리 팀과 또 다른 한 팀, 그렇게 두 팀이었다. 그래서 패키지라고는 하지만 일정이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말한 직장동료와 함께 한 마카오. 마카오의 경험이 시발점이 되어 오롯한 자유여행인 8살이던 첫째와 함께 28일간 다녀온 핀란드, 스웨덴, 에스토니아 여행. 하지만 이는 핀란드에 친구가 있었기에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으며 에스토니아는 친구 가족과 함께 갔어서 조금 자유롭지만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이후에는 어떻게 기회가 되어 다녀온 직장연수로 다녀온 서유럽. 내 생애 거의 첫 패키지여행인 셈이다. 나는 조금은 자유로운 성향이 있는 데다가 내가 경험한 것은 자유여행이 전부였는데 패키지로 다녀온 서유럽은 너무나 힘들었다. '천지창조'를 보는 순간 그저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고작 10분 밖에 있을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시간은 그림만 바라보고 싶었다. 열흘가량의 날을 프랑스, 스위스, 독일, 로마, 바티칸, 이탈리아를 다녀왔으니 순간순간의 좋았던 풍경은 있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머물고 싶었으나 머물 수 없음이 답답했다.
그리고 또 어찌 가게 된 인도패키지. 이번에도 나는 여행이라기보다는 고행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가이드와 함께 한 서유럽과 인도 여행은 가이드로부터 유래나 그들의 문화 등을 들으며 영어를 못하는 나의 자유여행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얻게 되는 경험이기도 했다. 유럽은 가이드와 함께 역사를 들으며 가는 것이 좋다는 누군가의 말에 동의되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다만, 나의 성향은 짜여진 일정 안에서 머무르는 패키지의 방식이 불편한 옷을 입은 것 같은 것일 뿐이다.
이왕 못 먹을 음식이라면(나의 편식으로 인함이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에 가고 싶다.
무언가를 사야 한다면 그냥 슈퍼에 가서 사고 싶다. 오죽하면 빡빡한 일정의 서유럽 패키지에서 나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호텔 근처를 산책하며 동네 슈퍼를 발견했고 거기서 물이라도 한 병 사며 만난 이탈리아 할아버지에게 이탈리어 특유의 억양을 배웠었고 그 순간이 그 여행에서 가장 신났던 순간이었다.
이런 엄마의 성향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맞닿아있는지 겨우 반나절 투어인데도 첫째가 말한다.
"엄마, 나는 투어랑은 안 맞는 것 같아. 나는 시간이 필요한데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는 게 별로야."
사실 투어랄 것도 없는 투어였다. 유쾌한 가이드와 함께 스피드보트를 타고 4군데를 들리는데 한 군데는 사진만 찍는 것이고 나머지는 수영이 가능한데 홍섬에서는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3시간, 다른 섬에서 1시간, 또 다른 섬에서 20분의 자유시간을 주면 그 안에서 우리끼리 노는 것이었다.
그러니 거의 이동서비스를 받는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첫째는 홍섬에서 더 여유롭게 있고 싶었던 듯하다.
그래, 이제 홍섬이 어떤 곳인지 알았으니 우리의 일정을 정해 보면 된다.
투어를 하면서 어떤 곳인지를 살펴보고 그곳이 마음에 들면 우리끼리 그곳으로 다시 가자고 말했었다.
이를테면, 우리는 아직까지는 답사 중인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수영장에서 또 한바탕 놀고 순서대로 방으로 들어가 씻는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이 숙소의 가장 큰 단점. 테라스가 없다!
우리는 모두 바닷속을 들어갔다 나왔으니 수영복이며 걸쳤던 옷이며 모자까지 말려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도저히 말릴 수가 없다. 지금까지 지냈던 숙소는 모두 테라스가 있었다.
그래서 매일 수영을 하며 수영복을 테라스에 널어둘 수 있었으니 매일 수영을 하면서도 다시 뽀송한 수영복을 입을 수 있었다.
방키아 하나라 우리 나가면 방의 전기가 꺼지니 방에 널어두고 나가도 옷은 전혀 마르지 않는다. 게다가 수영복을 아무리 잘 짜도 물이 떨어지니 화장실에 말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테라스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사실 숙소를 예약하면서 조금이라도 아낄 생각으로 처음에는 조식을 포함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마다 아침 먹을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은 꼭 세끼를 다 먹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을 거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후에는 조식을 포함하며 숙소를 예약했다.
또, 처음에는 숙소 컨디션을 모르니 2,3일 정도로 예약을 했는데 숙소를 옮기는 것도 여간 품이 드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의 숙박기간을 5일 정도로 늘렸다.
경험하면서 조금씩 방법을 바꿔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를 깨달았다. 발코니의 중요성을!
계획 없이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얼핏 낭만적인데 저녁마다 고민한다. 내일은 뭘 할지, 다음 숙소는 어디로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계획이 없으니 계속해서 계획을 바꾼다. 다시 방콕 가는 날짜는 언제가 좋을지를 또 매일 생각하는 것이다.
내일에 대해 마음껏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데 또 고민이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우선 이번 여행은 이렇게 다니기로 했으니 아마 매일 저녁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힘겹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