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이 전쟁이고, 화해고 평화야.
오늘은 드디어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삼일이나 예약했기에 정말 '드디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숙소를 옮기는 날은 가급적 일정을 넣지 않기로 했다.
네 명의 한 달 치 짐이다. 이 짐을 쌌다 풀었다 하는 것은 시간이 드는 일이고 새로운 숙소의 주변을 탐색하는 것 또한 시간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숙소를 옮기는 날이면 아이들은 오전에 수영을 하고 나는 짐을 대략 싼다. 아이들이 수영하고 나면 와서 자신의 짐을 조금 정리하고 함께 마무리하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체크아웃 시간이 된다.
"마담."
벌써 두 번째이다. 지난번 숙소에서도 이 소리를 들었다. 내가 체크아웃 시간까지도 숙소에 있었다는 것이다.
"예스, 아임 체크아웃 나우(Yes, I'm check out now)"
그러고서 짐들과 함께 나서는 것이다.
오늘 점심은 어제저녁에 발견한 맛집에서 먹기로 했다. 옮길 숙소는 지금 이곳보다 조금 더 외진 곳에 있기 때문이다.
체크아웃 후 짐을 맡겨 둔 후 숙소에서 1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맛난 점심을 먹는다.
아이들이 먹는 동안 나는 그랩으로 내가 옮길 숙소까지의 가격을 알아본다. 물론, 프리미엄으로 알아봐야 한다. 새로 옮길 곳은 차로 3-4분이면 가는 곳이니 그랩이 잡힐 일이 없다. 다만, 지나가다가 툭툭이 보이면 가격을 물어보고 더 저렴한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짐을 들고 걸으니 30초도 채 되지 않아 툭툭 기사가 말을 걸어온다. 내가 갈 곳을 알려주고 가격을 물어보자 그랩보다 30바트, 한국돈으로 1,200원 정도 비싸다. 내 핸드폰의 그랩 화면을 보여주며 프리미엄 그랩도 이 가격이라고 하니 자신은 그랩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랩을 부르겠다고 하고 그랩을 부르자 금방 잡혔다. 왜냐하면 프리미엄 그랩은 일반 그랩의 2배보다 조금 더 많은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툭툭 기사분은 웃으며 나에게 조금 더 걸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곳은 툭툭만 주차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기꺼이 그 골목을 걸어서 벗어난다.
사실, 나는 이곳까지 그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숙소로 올 때 그랩을 타고 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운전하다가 맞은편 차와 만나면 내가 후진을 더 많이 하더라도 내가 양보하는 편이다. 나는 운전을 꽤 잘하는 편이고, 상대가 피하지 못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운전을 못해서이든, 남에게 양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이든 상관없다. 내가 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되 상대가 하지 않는 이유가 그럴 만 한지 아닌지 판단하지 않는다. 그 이유의 적합성과 상관없이 나는 양보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여행지는 당연히 바가지가 있고 그래서 흥정을 해야 한다고 많이들 말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의 흥정은 가능하지만 가격이 또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서로 간의 합의를 이룬 듯하다.
제주도는 귤철이면 귤 딸 사람을 구하는 것이 큰 일이라고 한다.(나의 시댁은 귤밭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 사실을 매우 부러워한다. 가족 중 누구라도 귤밭이 있으면 귤철에는 주말에도 귤을 따러 가야 한다고 한다. 나는 15년 정도 제주도에 살았지만 한 번도 귤을 따 본 적이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그러면 인부 일당을 조금 더 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나만 살자고 인부일당을 올리면 그 지역 전체가 영향을 받는 것이다. 한 번도 귤을 따보지 않는 내가 그 일당이 노동에 대비하여 적당한지 아닌지를 논할 수 없다. 때문에 이 담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당의 적절성에 대해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대부분의 택시비, 툭툭 비용, 투어 비용까지 다 비슷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툭툭 기사분이 나에게 조금 더 걸어 나가야 한다고 한 것은 내가 기사분이 보는 앞에서 그랩을 부른 것에 대한 괘씸함일 수도 있고 또 기사분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기사분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 그 사실여부를 당장 판단하기도 힘들뿐더러 내가 걸어 나가기를 결정한다면 내 기분이 상할 일은 없다.
내가 조금 더 걸어 나가는 것은 나에게 손해가 아니고, 나의 걸어 나감이 기사분의 상한 마음을 덜어낼 수 있다면 기꺼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랩을 타고 새로운 숙소에 들어서면서 프리미엄을 선택했을 때 그랩이 빨리 잡힌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는 둘째가 이유를 물었다. 첫째가 그 체계를 설명하고 한마디 덧붙인다.
"그런데 돈을 가지고 사람을 마음대로 부린다는 것이 좀 그래."
아이의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돈'으로 누리는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나 나는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은 이상도 가지고 있다.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가 이런 것을 느낀다는 것이 나는 엄마로서 그저 반가울 뿐이다. 그 답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체크인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맹그로브 카약 투어를 할 때 이 숙소에 머무는 사람을 픽업했고 덕분에 차량으로 이 숙소 주변을 조금 볼 수 있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지만 위로 조금만 걸어올라 가면 무언가가 나온다. 아이들에게 말하고 위로 걸어 올라갔다.
투어 가는 길에 아이들은 모두 잤었기에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나뿐이고,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둘째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데 걷는다며 툴툴거린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가는데 이상하다. 걸어도 걸어도 들어갈만한 시원한 카페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서야 노상카페를 발견한다.
나는 운전은 잘하는데 방향감각과 더불어 거리감각도 없는 편이다. 차로 금방이었던 그 거리가 걸어가면 한참일 거라는 계산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노상카페라도 들어가 시원한 음료를 마셨다.
셋째는 음료를 사주면 정말 좋아한다. 몸관리를 위해 먹거리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음료를 사주는 것도 제한적인데 여행 와서는 생과일주스를 흔하게 볼 수 있고 날은 너무 더우니 자꾸 사주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워낙에 음료를 좋아하는 편인데 한국에서는 잘 사주지 않으니 하루에 두 번가량은 음료를 사주는 것이 행복하다.
그런데 둘째가 음료를 마시면서도 이제 또 온 만큼 걸어야 한다며 툴툴거린다. 아이의 툴툴거림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지만, 나도 웃으며 아이를 달래 본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이가 앞서 걷는 나의 다리를 치는 장난을 하여 농담처럼 한 번 더 그러면 업어 달라고 고한다고 했더니 갑자기 업어주겠단다.
나는 아이보다 키는 작고 몸무게는 더 많이 나가지만 집에서도 아이는 종종 나를 업어주곤 했다.
이 땡볕에 아이에게 업히니 이 상황이 웃겨 조용한 거리에 우리 가족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이 상황이 즐거운 셋째가 그다음은 자기라며 줄을 선다. 나를 업고 힘이 빠졌는지 나를 내려놓더니 줄 선 동생을 또 업는다. 동생을 업고 나면 그다음엔 누나다.
내리쬐는 오후 2시의 뜨거움 아래에 갑자기 시작된 이 상황이 즐겁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가 오늘 오전에 움직임이 적었다. 그래, 이렇게 힘을 덜 쓴 날에는 스스로 힘쓸 일을 찾는 것 같다. 덕분에 힘들었던 길이 즐겁다.
숙소가 약간 언덕에 있는 데다가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짐을 챙기다가 둘째 슬리퍼의 안창을 밖으로 떨어뜨려 둘째의 슬리퍼가 필요했다. 내일은 홍섬투어를 신청해 두었기에 슬리퍼가 필요해서 나가야 한다. 다행히 숙소에서는 셔틀을 운행한다.
우리는 시간 맞춰 셔틀을 타고 나갔다. 우리가 아는 그 번화가에 내려주는 줄 알았는데 또 새로운 번화가이다. 대략 두 시간 정도 후에 다시 셔틀을 타고 들어가기로 하고 배가 고프니 우선 먹을 만한 곳을 찾아가며 슬리퍼도 본다. 아오낭랜드마켓야시장에서 슬리퍼를 사려고 했고 그때 생각했던 가격이 대략 300밧이다. 그런데 가는 길에 보는 슬리퍼는 마음에도 들지 않는데 가격은 더 비싸다. 급할 것이 없으니 우선 가격만 물어보고 나서는데, 둘째가 사고 싶었다는 말을 반복한다. 조금 더 둘러보자고 이야기하고 어차피 셔틀을 타러 왔던 거리를 가야 하니 정 마음에 들면 가는 길에 사자고 설명했는데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이 녀석, 이번에는 갑자기 선글라스를 사달랜다. 선글라스를 두 개 가져왔으니 하나를 주겠다는데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란다. 그러더니 또 옆으로 매는 가방을 사달라며 어떤 형이 맸다는 가방을 묘사한다. 첫째가 자신에게 그런 가방이 있으니 주겠다고 하자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러더니 식당을 향하는 길 내내 사달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리고 식당에 들어가서는 주스를 시키자고 한다. 그 말을 듣는데 짜증이 폭발한다. 아이에게 그만하라고 하였으나 멈추지 않는다. 아이에게 내가 생각하는 예산을 알려주고 그 안에서 아이가 자유롭게 선택하여 사용하라고 하자 내 말의 의미는 파악하지 않으며 갑자기 미안하다고 한다. 그 순간 다시 감정이 밀려오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다. 나는 쓰고 있던 모자를 눌러쓰고 눈물을 참아보려 하고 아이는 그제야 심각해져서는 나를 부른다.
"엄마, 지금은 잠시만."
밥 먹으러 와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갑자기 왜 이러나 생각하며 감정을 추스르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 사이 음식이 나오고 나름대로는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데 쉽지가 않다. 아이들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조용한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계획대로 옆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물과 맥주 한 캔, 그리고 아이들 간식을 사고 해변가로 조금 더 걸었다. 아름다운 석양이 펼쳐진다. 잠시 해변가에 앉았다.
붉은 하늘 아래 이국적인 롱테일보트, 해안가에는 불 쇼를 준비하는 현지인, 모래밭에서 요가를 하는 백인 남성, 삼삼오오 모여 다정하게 나누는 많은 언어들, 키스하는 연인까지.
모든 것이 평화롭고 이국적이다. 숙소에 들어가 언젠가는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산 맥주 한 캔을 열었다. 그 풍경에 머물며 나도 나를 바라본다.
왈칵 눈물이 나는 이유는 아마도 나의 수고로움을 몰라주기 때문인 것 같다. 나름대로 애를 쓰는데 아이는 자꾸 또 다른 것을 바란다. 그 바람을 채워줄 수도 없을뿐더러 끝이 없는 막막함이 갑자기 몰려드는 것이다. 그래서 망망대해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그 마음이 또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매일이 전쟁이고, 화해이고, 평화이다.
아이들과도, 나 자신과도.
이렇게 나는 오늘도 아이와의 일을 통해 나 자신과 싸운다. 아직 화해하진 못했지만 알고 있다.
곧 화해하고 다시 평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시 전쟁이, 다시 화해와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