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트풋, 업, 레프트핸즈, 나이스!!
라일레이로 들어가기로 한 날이다.
어제 끄라비타운에서 산 맛난 간식도 잔뜩 챙겼고, 물놀이용품까지 무겁게 챙겼다.
그리고 아오남마오피어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두 번째로 라일레이로 들어왔다. 오늘은 클라이밍을 해보기로 한 날이다.
끄라비는 절벽들로 둘러싸여 있고, 특히 라일레이는 바다와 인접한 절벽들이 가히 절경이다.
그리고 이 절벽은 클라이밍 하는 사람들의 성지라고 한다.
둘째는 제주도에서 클라이밍을 했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처음 시작하면서 그만두었고 아이는 이후에 다니고 싶어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자연암벽에서 클라이밍도 하고 물놀이도 하자고 들어온 것이다.
들어오자마자 메인거리로 나선다.
두 번째니 익숙하다. 마치 제주의 어느 동네를 걷는 듯하다.
보이는 곳으로 가서 예약을 한다. 가게 점원은 유쾌한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하라고 강권했지만 나는 나를 안다.
나는 내 몸을 나의 힘으로 올려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덩치도 크지만, 운동신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 다닐 적, 그렇게도 운동회가 싫었다. 달리기를 하기 위해 결승선에 서면 가슴이 콩닥거렸다. 높은 순위에 들고 싶어서가 아니다. 제발 꼴찌만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꼴찌로 달린다는 것은 정말 많은 감정을 참아내야 하는 일이었다. 우선은 지금보다 훨씬 내성적이었던 어린 시절에는 꼴찌로 들어가면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게 싫었다. 모두가 함께 달릴 때는 그저 자신의 아이, 자신의 친구를 보며 시선이 분산되지만 마지막으로 남았다는 것은 모두가 나를 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매번 고뇌에 빠졌다. 나도 안다. 내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러면 나는 차오르는 숨과 함께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인지, 어차피 마지막이니 힘을 빼고 열심히 달리는 척 정도로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성실했던 나는 늘 끝까지 열심히 달리는 쪽을 선택했지만 그것이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제발 꼴찌만은 은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나는 늘 꼴찌였다. 그랬던 내가 유일하게 3등을 한 적이 있다. 손등에 꽝하고 찍히는 숫자 '3'이 쓰여진 파란 도장. 그리고 받게 되는 공책.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경험은 짝꿍 찾기 달리기였다. 나는 아마도 안경 쓴 어른이 미션이었던 듯하고 내 손을 잡은 이는 어느 키 큰 아저씨였는데, 이제야 생각해 보면 승부욕이 강한 분이셨던 듯하다.
지금의 내 기억으로 내가 결승선에 도착하기까지 내 발은 땅에 닿지 않은 듯하다. 그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공중에 떠있었듯 하는 과장된 기억, 그리고 그 결과로 손등에 찍힌 도장.
그런 내가 줄에 의지하여 내 몸을 절벽에 맡긴다는 것은 그저 '도전'으로 포장될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 셋을 예약하고 시작하기 전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 먹는 식당에서 우리 뒷 편의 서로 다른 테이블끼리 한국어로 대화를 한다. 서로 언제 왔는지 어디가 좋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아이들이 바다에 들어가면 몸이 따갑다고 한다. 염분으로 인한 상처에 예민한 것이라고 했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물벼룩이라는 것이 있단다. 그게 물벼룩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지만, 그래서 아이들은 머뭇거린다.
그렇다면 꼭 여기 끄라비에서 3주가량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더 아래로 내려갈까, 방콕으로 가서 방콕 인근의 소도시로 가서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어제저녁에도 나는 깜깜한 방에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그러니 저들의 대화에 귀가 쫑긋한다. 그러다 갑자기 그 많은 고민들이 별게 아니라는 듯, 끄라비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열 번도 넘게 숙박예약앱을 들락거리며 결제 직전에서 멈추고 있는 곳이 있다. 숙소 컨디션도 좋아 보이는 데다가 라일레이로 들어오는 보트를 무료로 운영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숙소에 묵으며 이곳 라일레이로 들어와 놀면 될 것 같다. 사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라일레이로 숙박을 잡을까 고민하기도 했으나 라일레이는 섬이라서 숙소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어도 가격은 높은 편이다. 그렇다면 내가 고민하는 그곳에 묵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그냥 스스륵 흘러간다.
첫째는 가격을 아니까 나를 만류한다. 한번 더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런데 그냥 해버리자는 생각이 들고 나는 환불이 불가한 그곳을 예약해 버렸다.
무엇에 이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전혀 상관없는 나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암벽등반의 시작이다. 사실 셋째는 할 생각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의 계획에서는 말이다.
혹여나 아이가 증상이 있을까 염려되기도 하였고 또래보다 작은 편인 아이가 암벽등반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하겠다고 한다. 자신도 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 그럼 해보자!
가장 운동신경이 좋고 경험도 있는 둘째부터 시작한다.
문제는 다시 '영어'이다. 우리 아이들은 특별히 영어를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 둘째가 14살이라고 하지만 아직 자신의 이름조차 영어로 쓰지 못한다. 그런데 암벽등반은 가이드가 밑에서 라이트 핸즈, 레프트 풋, 업, 다운 등 아주 쉽지만 조언을 들으며 몸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덩달아 바빠진 것은 나다.
"라이트 핸즈 업!"
"오른손을 올리래. 오른쪽으로 올리래."
동시통역관이 되어 나도 밑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생각보다 절벽은 높고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는 천지창조를 그리는 듯 목과 어깨가 아파온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계속 소리를 지르니 목도 아프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사진까지 찍으니 또 생각지도 못한 노동이 동반되는 것이다.
오른쪽, 왼쪽, 손, 발, 위, 아래만 알아들으면 되니 나의 동시통역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는 세 명의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둘째가 하고 나면 셋째가 똑같은 코스를 시작한다.
둘째는 운동신경이 있는 편인 데다가 경험이 있으니 덜한데 셋째는 더 많은 조언을 한다. 그럼 나도 함께 바빠진다. 다시, 첫째가하고 나면 나는 같은 자리에서 세 번의 동시통역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너무나 즐거워한다. 목표에 도달했음을 기뻐하고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되뇌는 것 같다.
첫째는 두 개의 코스를 해내고는 내게 와서 말한다.
"엄마, 내가 저분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 나도 다 이해하는데 몸이 안 움직이는 거야. 나도 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는 거야."
그렇게 네 개의 코스를 했다. 셋째는 두 개의 코스를 완등하고는 힘이 많이 빠진 듯하다. 세 번째는 완등 직전에, 네 번째는 초입에 포기한다.
그렇게 클라이밍이 끝나고 다시 샵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가 기운이 없어 보이기에 힘드냐고 물었다.
"엄마, 나는 지금 슬픈 거야. 나도 잘하고 싶었는데 잘 못해서."
두 번째 코스에서도 아이는 그만 내려오고 싶다고 했었다. 가이드에게 전달했지만, 줄에 매달린 채로 잠시 쉴 수 있도록 하더니 다시 해보자고 해서 아이는 완등할 수 있었다. 사실, 아이에게는 조금 벅찼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시도했고 성공도 하고 실패도 했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아쉬움까지 느끼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시도하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기를 바란다. 실패를 경험한 아이가 좋은 어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아쉬워하기를 바란다. 성공해도 그만, 실패해도 그만이라는 태도보다는 열심히 하는 태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열심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느끼는 아쉬움이란 너무 당연한 것이니까.
"셋째야, 오늘 충분한 것 같아. 엄마는 사실, 무섭기도 하고 자신도 없어서 아예 시작도 안 했잖아. 그런데 너는 그걸 해본 거야. 우리가 클라이밍 선수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럴 수 있는 거야. 게다가 오늘은 처음 한 날이잖아. 네가 계속해서 잘하기를 원한다면 계속 연습할 수도 있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면 다음에는 더 잘할 수도 있고, 또 잘하지 않더라도 오늘 줄을 잡아 본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던 것 같아."
아이는 이내 조금 들뜬 목소리로 형은 예전에 클라이밍을 배웠지만 자신은 처음이라며 자신은 고소공포증이 있는데도 했다고 재잘거린다.
그래, 충분하다.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했어.
사실, 비용이 조금 높은 편이라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모두의 결론은 오늘은 그 비용을 쓸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둘째는 더 하고 싶어 하니 다음에는 혼자서 하루종일할 수 있도록 신청하기로 했다. 우리는 계속 이곳에 머무를 것이니, 문제 될 것 없다. 둘째의 바람을 듣던 첫째는 자신은 셋째와 함께 물놀이를 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바람을 듣고, 자신의 바람을 버무린다. 그렇게 잘 버무린 서로의 바람은 신나는 일정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힘든 일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씩 쌓여간다. 어느덧 14일이 흘렀다. 처음에는 하루하루의 일정과 계획이,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며 마냥 좋은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제는 그런 시간이 지나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것을 느껴가고 있다.
어느 하루는 실망도 하고 어느 하루는 마냥 즐겁기도 하다. 실망한 하루의 마지막은 위로가 곁들여지고 즐거운 하루는 과도한 장난으로 이어져 싸움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니 그 어느 것도 다 괜찮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