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데 돈을 벌려고 하는 거잖아
어제, 구름에 가려 보지는 못했지만 선셋을 볼 수 있는 투어를 하면서 셋째가 물었다.
"그럼 해가 뜨는 건 뭐야?"
일출과 일몰에 대해 이야기하며 원한다면 내일 일출을 보자고 했다.
첫째는 이 계획을 반가워하고 둘째는 싫다고 한다.
둘째는 많은 부분이 아빠와 닮아있는데 유일하게 나를 닮은 것은 올빼미형이라는 것이다.(물론, 나는 아이 셋을 키우며 어느덧 아이를 재우며 잠들어버리고 아이가 깨면 깨어나니 올빼미였던 나는 그냥 새벽형 인간으로 변했다.)
찬성하는 사람만 가기로 하고 일출시간을 알아보니 새벽 6시 43분이란다.
첫째는 세월호를 생각하는 청소년 모임, 환경을 생각하는 모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둘째도 누나가 하는 것을 고스란히 한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아이들은 많은 회의가 있다.
오늘도 첫째와 둘째는 모두 회의가 있다. 게다가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니 아이들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더 많다.
아이들은 회의날짜를 잡기 전 미리 나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이제는 숙소를 옮기는 날에는 회의가 어렵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아이들이 회의가 있는 날은 시간을 배려해서 일정을 잡는다.
오늘은 회의가 있으니 별다른 일정이 없었고 그렇다면 일출과 일몰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무언가 계획을 꼼꼼히 세우는 편은 아니다. 그냥 아오낭비치가 우리 숙소에서 제일 가까우니 아오낭비치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다.
6시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둘째도 함께 가겠다고 하여 여러 번 깨웠지만, 일어나지 못해서 둘째는 두고 첫째와 셋째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나갔는데 날이 밝다. 이 정도면 해가 뜬 것이 아닌가 싶지만 분명 일출시간은 6시 43분이라고 했고 아직 시간은 20분 넘게 남아있었다.
"엄마, 새벽의 냄새는 한국과 비슷한 것 같아."
첫째는 새벽의 공기를 마시며 그렇게 말했다.
수많은 관광객과 자유로운 분위기로 왁자지껄한 거리가 고요하다.
호텔들이 즐비한 거리에는 호텔의 직원들이 길을 쓸고 있다.
이렇게 매일 누군가가 이 길을 쓸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며 아오낭비치로 걸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날이 밝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아오낭비치는 선셋이 유명하다. 해가 질 때의 노을이 정말 아름답다.
"해가 지는 쪽으로 해가 뜨는 게 아니잖아."
그러고 우리가 가는 반대편을 보니 해가 있다.
참으로 별생각 없는 일출맞이다. 일출을 보려면 적어도 반대쪽으로 갔어야 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냥 같이 한 번 웃어버렸다.
그리고 지난번 아이들이 타고 싶다고 한 그네를 타러 간다.
이 새벽, 아니 이제 아침인 지금의 해변에는 조깅하는 사람들과 산책하는 정말 몇몇의 사람들이 있다.
또 그 풍경이 좋다.
아이들은 그네를 타며 신난다. 지난 저녁에 타고 싶어 했지만 사람들이 많아 그냥 지나쳤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없으니 실컷 그네를 탄다.
계획이 틀어져도 누구 하나 짜증 내지 않는다.
그저 틀어진 그 방향에서 우리는 새롭게 다시 하고 싶은 것들을 그려나간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참 고맙고, 문득 내가 이런 아이들의 엄마라는 것이 뿌듯하다.
원래는 편의점에서 아침거리를 사서 일출을 보며 먹자고 했으나 조금 늦게 출발해서 일출을 보고 편의점을 가기로 했다.
일출은 못 봤지만, 편의점은 가기로 하고 들어갔는데 셋째가 먹을만한 것이 없다.
태국에 도착한 다음날 첫 아침을 편의점에서 먹었다. 태국의 편의점에는 월남쌈도 있고 샐러드도 꽤 종류가 다양했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셋째가 먹을만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월남쌈은 없고 샐러드는 아이가 내켜하지 않는다. 도저히 다른 것은 먹이기가 망설여지니 그냥 식당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숙소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스쿨버스도 보고 조금씩 거리가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일출을 보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을 풍경을 마주하며 걷다가 숙소 근처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나는 메뉴를 잘 시키지 않는 편인데, 드립커피 한 잔과 해쉬브라운을 시켰다.
셋째는 porridge(귀리)라고 쓰여있는 것을 시켰다.
태국은 쌀이 날리는 쌀이어서인지 볶음밥이 많은 편이다. 아이에게 매번 기름에 볶은 밥을 먹이고 싶지 않아 가능하면 덮밥을 시켜주는 편인데 덮밥이 없어 새로운 메뉴를 권했고 아이는 먹어보겠다고 했다.
우리가 들어간 이 식당은 다른 식당과 달리 메뉴판이 하얀 종이에 태국어와 영어로만 메뉴가 쓰여져 있고 사진이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노트와 볼펜을 주며 메뉴를 쓰도록 했다.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정갈하고 친절한 직원의 태도가 좋았다.
그리고 나도 열심히 영어를 또박또박 써서 주문했다. 나는 악필이어서 영어를 또박또박 써야 알아볼 것 같았다.
태국의 많은 식당에서는 생과일주스를 함께 팔았다. 과일이 많아서인지 과일을 그대로 갈아서 파는 주스를 자주 함께 시켰다.(물론, 시럽을 넣는 것을 보았지만 과일 듬뿍에 시럽을 조금 넣는 것이라 아이에게 먹이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우리가 식당에 앉아서 먹을 때에도 과일주스는 매번 플라스틱컵에 담겨져 나왔는데 이곳은 우리가 처음으로 유리잔에 받은 주스였다.
그리고 내가 시킨 해쉬브라운은 내가 생각한 인스턴트 감자튀김이 아니라 감자를 얇게 채 썰어서 전처럼 부쳐낸 것이다.
정말 너무 맛있었다!
이전에 오트밀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이걸 왜 먹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셋째의 메뉴는 새우죽과 비슷하게 느껴지는데 정말 맛있다.
첫째는 셋째의 메뉴를 한 입 먹어보고는 내일은 셋째의 메뉴를 먹겠다고 한다.
정말 너무 맛있는 식당을 찾아낸 것이다!
우리는 이 숙소에서 지내는 동안 아침은 여기서 먹기로 했다.
"셋째야, 고마워. 셋째 덕에 우리가 이렇게 맛있고 건강한 아침을 먹게 됐네. 원래 편의점에서 먹을 건데, 셋째의 몸을 위해 식당을 찾아왔잖아. 그런데 너무 맛있어. 다 셋째 덕이야."
"아니야, 엄마 덕이야. 엄마가 이 식당을 찾아냈잖아."
그냥 걷다가 발견한 식당이다.
평화로운 아침, 예상치 못한 일들은 또 이렇게 예상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셋째가 아프다는 사실이 버거울 때가 많다.
음식은 사랑이라는데, 어릴 때부터 음식을 조절해야 했던 아이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랑을 원했고 그게 때로는 음식 탓인 것도 같았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특별하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첫째와 둘째는 물론 나름의 고충이 있는 육아이기는 해도 그래도 순한 편이었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셋째는 달랐다. 아프기도 했지만, 마트를 가서 장난감을 안 사준다고 누워버리는 아이였다. 세 번째 육아지만, 첫 경험이었다.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세 명의 아이는 정말 서로 다른 세 개의 우주였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또 서로 다른 두 개의 우주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다섯 개의 우주는 저마다의 속도로 자전과 공전을 하고 빛을 내기도 하고 어둠에 머물기도 했다.
그렇게 버무려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우주를 이해하고 있다.
셋째가 아프다는 사실이 버거웠지만, 덕분에 우리는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 편이다.
또 덕분에 건강한 생활습관을 지켜갈 수도 있었다.
또 덕분에 조금 더 많은 세상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 시간이 항상 달콤하게 다가왔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풍성하게 만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셋째 덕분에 우리의 여행은 더 다채롭다.
아이들과 함께 한바탕 수영을 하고 첫째와 둘째는 회의를, 셋째는 방학숙제를, 나는 컬러로직을 했다.
그리고 이제 나가보자고 하는데 일정이 조금 꼬였다.
넷이서 머리를 맞대고 일정을 조율해 본다.
결국 정해진 것은 오늘 저녁 다시 아오낭비치로 가서 불쇼를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전에 알아본 스프링풀 투어를 예약하기로 했다.
내일 일정을 예약하는데 둘째가 옆에서 자신은 내일 회의가 있단다. 우선은 그다음 날인 토요일로 예약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한 마디 했다.
"엄마가 최대한 회의 날짜를 맞추고 싶은데 회의를 조금 몰아주면 좋겠어. 이렇게 회의가 있으면 그날은 비워두어야 하는데, 그러면 무언가를 하기가 조금 애매해져."
늘 이해와 조율이 필요하다.
아오낭비치로 가는 길, 우리의 단골집(두 번째 가는 건 모두 단골집이다.)에 가서 과일주스를 사고 나는 맥주 한 캔.
이런저런 것들을 하다 보니 불쇼가 끝나는 시간에 도착하게 되었고 메인 불쇼(?) 옆에 연습을 하는 듯한 곳은 계속해서 불을 붙인 봉을 이리저리 돌리는 모습이 한창이다.
그런데, 연습하는 이들이 딱 봐도 아이들이다.
한 아이는 셋째와 비슷할 듯하고 또 한 아이는 둘째와 비슷한 듯하다.
그 아이들이 이 시간에 석유와 불을 가지고 이런저런 것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사실,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불편해. 그래도 이곳은 구걸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다니는 마음이 덜 불편하지만, 지난번에 갔던 어느 나라는 거리에 구걸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마음이 안 좋았어."
"진짜 아이들이 어리다. 태국은 아이들이 팁박스를 들고 다니거나 그 앞에서 공연을 보여주는 게 많은 것 같아. 그래도 저 아이들은 진짜 즐거워 보여."
"맞아, 즐거워 보이기는 해. 그런데 공부도 할 수 있고 다른 것들도 할 수 있는 상황에서의 선택인지 그냥 주어진 세상이 이게 전부인지는 모르겠어. 또 다르게 생각하면 정말 아이들이 원하는 걸 수도 있잖아. 뭐, 옆에 불쇼가 워낙 유명하니까 아이들도 그렇게 유명해지고 싶어서 연습하고 있는 걸 수도 있고.. 우리나라의 아이돌 같은 거지. 우리도 연예인 되려고 아이들이 버스킹을 하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계속 연습하잖아."
"엄마, 근데 이 아이들은 돈을 벌려고 하는 거잖아."
둘째가 불쇼를 신기해하니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크다. 그냥, 해변가에 앉아 여행 온 분위기를 만끽하며 맥주 한 캔 하며 어둠 속을 밝혀주는 신기한 불쇼를 보는 것을 나도 즐겼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는 것이니 또 그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이런 이중적인 나를 나는 이상한 논리의 생각으로 그래도 나는 괜찮은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첫째의 말이 맞다.
이들은 정확히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다. 팁박스가 놓여져 있고 어느 순간순간 팁박스를 들고 다닌다. 메인으로 보았던 불쇼에서도 어른들이 주되게 하고 아이 한 명이 잠깐 하고 난 후 아이가 팁박스를 들고 다녔다.
게다가 이곳에서 QR코드로 스캔을 하면 결제가 되는 시스템이 있고 나도 가능하면 그 시스템을 활용하는 편인데 팁박스에는 그 QR코드가 있다. QR코드는 은행계좌와 연결되어 있고, 그렇다면 이 아이들의 뒤에는 어른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듯 보이지만, 분명 돈을 벌 목적인 것은 사실이다.
명확하게 그 부분을 짚어내는 첫째이다.
나는 좋은 인간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 부분을 가렸다.
여행을 하면서 딜레마에 빠진다.
이전에 스웨덴에 가서도 그랬다.
아마 여행을 하며 내가 누리는 것들이 많아지니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쉬이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위선적인 순간이 있었다는 것은 스스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나를 보는 연습이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