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떠나고 싶지만, 작정하고 떠나다

- 엄마, 별이 진짜 많아

by 낮은돌담

일어나고 나니 9시다. 여행 와서 이상하게 늦잠을 자는 날이 많다.

셋째는 어김없이 7시쯤이면 일어나 혼자서 어둠 속에서 책을 읽고 있다.

나는 8시쯤이면 아이가 일어난 걸 알고 커튼을 쳐도 된다고 말하면 아이는 커튼을 치고 조금씩 재잘거린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하고서 아침 먹을 곳을 찾아 나선다.

조식이 포함되면 내려가 조식을 먹고 아니면 밥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 나서며 가볍게 산책도 한다.

'처음에는 조식이 없다고 해서 짜증이 났지만, 식당을 찾으러 나가니까 잠도 깨고 좋았다.'

우리는 여행을 와서 일기를 쓴다.

나-첫째-둘째-셋째 순으로 쓰는 것이다. 오늘은 둘째가 쓰는 날이었고 그 일기에 적혀있던 한 줄이다.

우리는 서로가 쓰는 일기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자신이 쓰는 차례가 되면 다른 사람이 쓴 것을 본다.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둘째는 볼 때마다 누나나 엄마의 글씨로 놀린다. 이렇게 일기를 쓰니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를 다시 되짚는다.

저녁, 일기를 쓰는 시간에 늘 하는 말이다.

"우리 오늘 뭐 했지?"

일기의 양은 노트 한 장으로 정해져 있고 셋째는 막내이니 글을 쓰고 그림으로 그리는 것도 괜찮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늦잠을 잤으니 아점을 먹기로 한다.

12시에 출발하는 투어를 예약해 두었기에 아점을 먹고 가면 딱 좋다.

식당을 찾아가는데 우리는 알고 있다. 태국의 식당은 메뉴를 주문하면 음식 하나가 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아이들은 시간을 말하며 가까운 식당을 골랐고 우리는 처음으로 '할랄푸드'를 먹게 되었다.

이슬람, 고기불가 등 막연하게 알고 있던 할랄푸드이다.

식당에 들어가 메뉴를 주문하고서 검색해 보았다.

그렇게 무슬림을 검색하고 할랄푸드에 대해 알아보았다.

"엄마, 그 오늘 우리가 먹은 음식이 뭐라고 했지? 그게 무슨 종교라고?"

둘째가 일기를 쓰며 물었다.

직접 먹지 않았으면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궁금해하고 다시 되짚어보는 질문이 반갑다.


우리는 적절하게 투어상품을 이용하고 있다.

이번 투어는 저녁 7시 30분에 마치는 투어로 '야광 플랑크톤'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신청했다.

7개의 섬을 돌며 저녁 수영도 가능하다고 했다.

아이들은 투어의 시작에는 조금 시무룩한 편이다.

왜 이리 멀리 가느냐며 투덜대기도 한다.

롱테일보트를 타고 가는데 물이 너무 튄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얼굴에 물을 뿌리는 듯하다. 이리저리 막아보지만 불가항력.

물을 좋아하지만 물을 튀기는 것을 싫어하는 둘째는 불편감을 호소한다.

그리고 첫 번째 섬은 약간의 물놀이가 가능했지만, 제주의 바다와 다를 바 없었다. 아이들에게 이 투어는 매력적이지 않을뿐더러 '구태여'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그런데 이 투어는 바다 가운데에 배를 뛰우고 거기서 스노클을 하도록 한다.

둘째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뛰어내리고 싶어 했다.

내가 봤을 때는 지난번 홍섬투어가 시야도 좋았는데 아이는 바다 가운데서 뛰어내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신이 났다.

셋째도 어느덧 스노클이 익숙해져서 즐기는 단계가 되었다.

제주의 바다는 우리의 놀이터였다. 우리는 늘 사람이 없는 바다를 알아내어 하루종일 놀았고 아이들은 바닷속 세상을 궁금해했다. 그래서 스노쿨장비를 사서 주었는데 셋째는 이 스노클을 사용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어려우니 스노클은 벗어던지고 튜브를 타고 놀거나 모래놀이를 했었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는 모래놀이를 같이 할 형, 누나는 물속에 들어가 있고 튜브는 없다.

그리고 바닷속 세상은 제주와는 다르니 아이도 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스노클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배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이 조금 무서우면서도 신기한 경험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또 이 투어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보트에서 선셋을 보는 시간.

안타깝지만, 구름으로 선셋을 보기는 어려웠다.

아이들과 뱃머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이드를 돕는 어느 직원이 우리를 보더니 어제의 선셋이라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정말 너무 예쁘다.

그 직원은 홍섬에서의 선셋도 보여준다. 선하게 생긴 그 직원은 형, 누나가 물에 들어가고 뱃머리에 앉아있는 아이에게 말도 걸었던 친절했던 직원이다.

사실, 투어를 오면서 어느 직원은 튀는 물에 인상을 쓰며 앉아있었다.

우리는 신기하고 즐거운 보트에서의 시간이지만 직원들에게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서로 다른 표정을 지닌 직원을 보며 생각했다.

이왕 할 것이라면, 매일 보는 저 익숙한 선셋을 사진으로 남기는 태도를 지니고 싶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도 다시 일을 시작할 것이다.

매일 마주할, 피하고 싶어도 피하지 못할 '직업'을 대할 때 오늘의 생각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제 돌아가는 듯하다.

"어, 그냥 돌아가면 안 되는데.. 왜 야광플랑크톤을 안 보여주지? 그것 때문에 신청한 건데.."

날도 어둡고 마치 그냥 돌아갈 듯한 보트는 어느새 멈춰 섰다.

그리고 바닷물을 떠서는 보트 안에 붓는데 정말 야광플랑크톤이다.

신기했다.

사진은 찍을 수 있지만, 플래시는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원하는 사람은 바닷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단다.

둘째는 망설였고 첫째는 들어가겠다고 한다.

누나가 들어가면 둘째는 늘 함께한다. 셋째는 첫 번째 스노클 이후로는 스노클을 하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배에 남겠다고 한다.

어두운 배 안에 아이만 둘 수는 없어 나도 배에 남기로 한다.

밤이어서인지 지금까지 선택이었던 구명조끼는 필수였고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바닷속으로 풍덩!

그리고 이어지는 환호!

그렇다 바닷속에서 손을 내저을 때마다 야광플랑크톤이 보이는 것이다.

"엄마! 바닷속에 별이 있는 것 같아!"

그리고 형,누나가 하는 말을 듣고는 셋째가 말한다.

"엄마, 하늘에 별이 진짜 많아."


나는 한라산을 매년 오른다. 등산을 잘하지도 못하는 내가, 그렇게 오래 걸려 한라산을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나는 '백록담' 보는 것이 너무 좋다. 그 잠깐의 순간을 위해 그 많은 걸음을 걷는 것이다.

게다가 내려오는 길은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다. 산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 한라산은 등하산길이 재미있는 산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백록담의 풍경은 넋을 놓고 보게 된다. 심지어 나는 시간이 더 올래 걸리니 정상에서 백록담을 보는 시간을 길게 가질 수도 없는데도 매년 오르게 된다.

백록담을 보고 있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


아이들의 환호.

그 순간이 너무 좋다. 그 순간을 위해 나는 이 뱃멀미를 견디었던 것이다.

나는 뱃멀미가 있다. 움직이는 차에서는 핸드폰으로 간단한 입력조차 하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움직이는 차에서 책 읽기를 즐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움직이는 차에서는 활자하나 읽기가 힘들다. 그러니 뱃멀미는 더 심하다.

그런데 여기서 뱃멀미를 할 수 없다.

뱃멀미를 하고 나면 배에서 내려서도 울렁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내가 힘들면 아이들이 힘들어진다.

그런 마음으로 뱃멀미를 참아내는데 신기하게도 참아진다.

조금 어지러우면 눈을 감고 뱃멀미를 하기 직전 느껴지는 몸의 변화에서 집중하지 말자라고 생각해 버린다.

신기한 일이다.


첫째가 24개월, 둘째가 12개월, 셋째가 10개월 때부터 일을 했다.

아이들이 어린데 일을 시작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질문을 하면 나는 늘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라는 답변을 해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희생적인 엄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는 무엇이든 참고 견뎌지는 부분이 있다.


태국에서는 새우가 들어간 음식이 많다.

고기보다는 해산물이 낫기에 셋째의 메뉴에 새우가 들어가는 것이 많고 첫째는 새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 새우는 껍질을 까는 조금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새우를 가져다가 까준다. 포크 두 개로 깔 수 있을 정도로 손질이 되어있지만, 그게 일이다.

새우를 까주며 첫째 아이에게 말한다.

"첫째야, 진짜 엄마가 엄마니까 한다."

첫째는 고맙다고 말하며 새우를 넘겨주다가 마지막이라며 새우를 건넨다.

"마지막이야? 너무 좋다. 엄마가 엄마니까 참고 하는데, 안 할 수 있으면 제일 좋은 것 같아."


내가 엄마이니 참는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런데 아이들의 환호는 이런 나의 참았던 순간들을 사라지게 한다.

아이들의 환호, 그 순간을 사랑한다.

더없이 사랑하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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