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그저 그대로, 내 마음만 바뀌었을 뿐
오늘은 드디어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숙소는 대낮에도 어두웠다.
유일한 창문 밖의 풍경은 점프하면 갈 수 있을 듯 건물이 가까이 있었고, 조명은 매우 어두운 편이었다.
그러니 커튼을 활짝 열어도 어두웠고 그런 어둠이 힘들었다.
그리고 몇몇 숙소를 이용하면서 나름대로 행복한 숙소의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
창문이 클 것(뷰가 좋으면 좋겠지만, 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창문이 커서 낮에는 빛이 들어오면 좋겠다.), 발코니 혹은 베란다가 있을 것(물놀이를 매일 하니, 적어도 이 뜨거운 끄라비 햇볕 아래 빨래를 마음껏 널 수 있어야 한다.), 수영장이 있을 것(물론, 모든 숙소가 수영장이 있었는데 이왕이면 아이들이 신나 할 수영장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의 세 가지 조건이면 충분했다.
우리의 두 번째 숙소는 외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 숙소가 셔틀을 운영하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놀지 않으니 마지막 셔틀을 타고 들어오면 되었고 사람이 많은 관광지 같은 곳을 즐겨하지 않으니 외진 위치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주변에 끄라비 아니, 태국에 넘쳐나는 편의점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걷는 것이 괜찮으니 10분 정도만 걸으면 되어서 괜찮았다.
수영장이 조금 작고, 내가 보았을 때는 관리가 조금만 더 되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작은 수영장에서도 충분히 즐겁게 놀았고 나는 수영장이 내키지 않아 들어가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내가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놀았기 때문에 이 또한 괜찮았다.
그렇지만 창문이 작아 대낮에도 어둡고 도저히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 않는 이 숙소를 옮기고 싶었다.
내가 변한 것은 이왕 예약이 완료된 것이라면 지내는 동안 그냥 만족하며 지내는 것을 이성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여행기간 동안 얻은 아주 값진 변화였다.
오늘 옮기는 숙소는 비용은 조금 더 들지만 내가 앞서 말한 조건들이 다 부합되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물론, 외진 곳에 있어 숙소에만 머물 생각이 아니라면 별로라는 글을 보기도 하였지만 숙소는 셔틀을 운영하고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식이 포함되면 좋겠지만, 어쩐지 예약할 때 조식을 포함할 수 없었고 그렇다면 이번 숙소에서는 조식을 포기하고 인근에 나가서 사 먹자고 해두었다.
그랩을 불렀는데, 잡히지를 않는다.
첫째가 상황을 보더니 셔틀을 타고 나가잔다. 우리의 집은 큰 캐리어 두 개에 배낭도 있다. 이렇게 많은 짐을 이고 지고 셔틀을 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더 많은 돈을 주는 그랩을 잡고 싶지가 않다. 가격이 두 배보다 더 높은 데다가 괜스레 하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이해한다. 우리가 옮기는 숙소는 지금의 숙소와 크게 멀지 않아 100바트도 되지 않는 데다가 지금 우리의 숙소는 외진 곳이니 우리를 데리러 여기에 올라오는 것이 내키지 않을 만하다.
결국 첫째 아이의 말대로 셔틀을 타기로 한다. 프런트에 말했더니 우리의 짐을 보고는 썩 좋은 표정이 아니다. 첫째의 의견은 셔틀을 타고 나가면 걸어서 대략 5분 정도가 걸린다고 했으니 그렇게 움직이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간에 셔틀을 타는 사람이 많아서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야 했고, 그 사이에 다행히 그랩이 잡혔다.
우리 모두 행복하다.
그리고 옮긴 숙소는 너무 좋다.
일단 수영장이 긴 데다가 테라스가 있다. 그리고 와보니 이 숙소는 그동안 우리가 셔틀을 타고 오고 간 곳에서 정말 가까웠고 조금만 걸어내려가면 편의점도 있는 데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아오낭비치도 조금만 걸으면 된다.
우리의 걸을만한 거리의 기준이 조금 더 길기는 한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시간이 남는다. 체크인까지 대략 세 시간가량이 남는다.
그럼 동네도 살펴보고 점심도 먹자고 하는데 아이들은 당장 수영장 구경부터 하고 싶다고 한다.
게다가 프런트 직원은 체크인은 안되지만 수영장이용은 가능하다고 한다.
우선 수영장으로 갔다.
아이들 눈에 행복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수영장에 발이라도 담그는 동안 나는 밥 먹을만한 곳을 찾아보니 근처에 맛집도 있단다.
아이들과 함께 밥 먹으러 가는데 둘째는 왜 굳이 여기를 가야 하느냐며 투덜거린다.
그래도 지도를 손에 들고 누구보다 열심히 가는 아이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에도 늘 짐이 있다. 우선 배낭을 하나 메고 나는 여권이며 여행경비가 든 크로스백을 멘다.
그리고 오늘처럼 숙소를 옮기는 날이면 짐이 많아진다.
우리 모두는 당연하게 둘째에게 모든 짐을 넘기는 편이다.
둘째는 자기가 가장 힘이 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무 말 없이 그 모든 짐을 다 받아 든다.
일정 안의 작은 움직임에도 배낭을 메고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끄라비, 바다가 예쁘다. 산방산을 몇 개 붙여놓은 듯한 바다는 처음에는 제주도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어 감흥이 적었는데 보면 볼수록 참 예쁘다.
그런데 일회용 쓰레기가 넘쳐난다.
예전에 동남아시아지역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집에서 음식을 해 먹기가 어려워 오히려 음식을 잘 사 먹는 편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음식의 포장이 얇은 플라스틱이고, 태국에 오면 하루에 두 세 잔씩은 먹는다는 생과일주스도 플라스틱컵에다가 컵홀더는 비닐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편의점에서 물 몇 병만 사더라도 비닐에 담아준다.
가능하면, 적게 쓰는 것이 여행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편의점에 가서 구매하면 '노 플라스틱백'을 외치고 배낭에 넣는다. 배낭이라고 해도 작은 백팩 수준이니 배낭 안에는 꼭 장바구니를 넣어 다녔다.
그리고 그랩으로 음식도 배달시켜서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가급적 식당에 들어가서 먹는다.
그것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 듯하다.
맛난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오는데 가는 길에 구글에서 알려주는 길은 골목길이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큰 거리를 걷고 싶어 다른 방향을 제시하니 둘째는 길을 잃을까, 나를 끌어당긴다.
"그럼 너는 그 길로, 엄마는 이 길로 갈게. 누가 더 빨리 가는지 보자! 첫째와 셋째는 각각 가고 싶은 사람이랑 가기!"
셋째는 내 손을 잡고 첫째는 둘째와 함께 간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아이들은 마치 제 동네인 양 다닌다.
한바탕 수영을 하고 새로운 숙소에 짐도 풀었다.
아오낭비치에서 불쇼를 하는데 지난번 숙소에서는 셔틀시간을 맞춰야 하니 다 보지 못해서 둘째가 많이 아쉬워했다.
그래서 오늘은 저녁 먹고 불쇼도 끝까지 보기로 했다.
저녁을 먹으러 걸음을 옮기는데 내가 첫째에게 말한다.
"여기 숙소 후기 찾아봤을 때 숙소가 외져서 별로라는 후기를 봤어."
"왜? 하나도 외지지 않은데.. 완전 번화가인데.."
"이렇게 비치까지 오려면 조금 걸어야 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
"아, 이 정도 걷는 것이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여유가 없구나. 10분만 걸으면 되는데 그 시간이 아깝구나. 아니면 우리도 이렇게 길게 여행을 오지 않았으면 그 시간이 아까울까? 근데 그랬어도 이 정도 걷는 게 힘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요즘 사람들이 걷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생각했었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왔는데 걸어서 일정을 보내는 것을 아깝게 생각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아이는 여유 없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했다.
아이들에게는 생과일주스를, 나는 맥주 두 캔을 사서는 자리에 앉았다.
이전에 첫째와 둘째가 둘이서만 와서 보다 온 적이 있으니 명당이라며 아이들이 안내해 주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비치에서는 불쇼를 준비하고 있고 해가 지기 시작한다.
나는 맥주를 마시며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 석양 아래에서 키스하는 연인, 불쇼를 끝까지 볼 수 있다며 신나 하는 아이들을 보며 평화를 느낀다.
아오낭비치는 내가 둘째와 갈등이 있어 도저히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걸어가다 말고 잠시 앉아있었던 곳이다. 그때도 맥주를 마셨고, 석양이 지고 있었고, 불쇼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다는 그대로이다.
그저 내 마음만 바뀌었을 뿐이다.
오늘의 풍경이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