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떠나고 싶지만, 작정하고 떠나다.

- 물을 시켜줄 순 없어!

by 낮은돌담

첫날인지 두 번째 날인지 모를 아침을 맞이했다.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곳은 태국 남부의 섬, 끄라비이다.

끄라비까지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데 끄라비행 비행기의 시간이 우리와 맞지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차라리 첫날 숙소에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고 '후아힌'이라는 도시로 이동하여 4일 정도 시간을 보내고 다시 수완나품 공항으로 와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으로 최종계획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매우 여유 있는 아침을 보낼 수 있었다.

농담 삼아 첫째 아이에게 밥 먹을 만한 곳을 알아보라고 했는데 아이가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유심칩은 오로지 나만 신청하였기에 아이와 핸드폰으로도 연락이 불가하다.

'그래, 길이 하나였으니 우리도 가다 보면 만나겠지.'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걷기 시작한다.

낯선 공기, 찌는 듯한 더위, 그리고 내가 너무 무서워하는 개..

그런데 긴장을 풀고 보니, 낯선 공기와 더위는 익숙해졌고 개는 다행히도 세상 모든 개와 친구를 맺는 둘째가 있어 안심이다.

그렇게 다시 바라보니 제주의 귤나무처럼 태국에는 바나나 나무가 있다.

처음에는 야자수인가 했는데 초록 바나나가 달려있다. 신기하다!

그렇게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가다 보니 돌아오고 있는 첫째도 만났다. 반가운 상봉 후에 다시 첫째가 보고 온 편의점으로 출발, 마음에 드는 샌드위치를 고르고 숙소로 돌아간다.

둘째가 말한다.

"여기는 왜 이렇게 더워?"

"그게 태국의 매력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바다를 즐기려고 오잖아. 여행을 오면 모든 것이 다 매력인 거야. 나한테는 더 비싸게 받는 것 같지. 그것도 그 나라의 매력이야. 그런데 그 매력을 받을지 안 받을지는 내가 다시 결정하면 되는 거야."

샌드위치를 먹으며 소소한 대화와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 땡볕 아래 30여분의 산책을 마무리했다.


아침에 숙소를 한 바퀴 둘러본 아이들이 들떠서 말한다.

"엄마! 여기 수영장이 있어! 우리 수영해도 돼?"

사실, 오늘은 세 시간가량이 걸리는 후아힌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나는 젖은 옷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첫날 수영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건 나의 마음일 뿐.

그곳이 어디든 마음껏 즐기는 아이들이다. 그래, 너희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한 껏 수영을 하고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다시 걸어 나가는 것이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슬쩍 가서 물어보았더니 숙소에서 점심을 사 먹을 수 있단다.

아이들은 저마다 그림을 보고 점심을 골랐다.

많이 먹고 해산물을 먹지 못하는 둘째는 엄마의 권유를 가볍게 넘기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켰다.

나도 영어를 못하고 직원도 영어가 능숙하지 못하였다.

나는 오후 1시에 출발인데, 음식이 그 시간까지 나오는지 물었지만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다음에는 음식이 빨리 나오기를 원한다고 하였으나 맵지 않게 해 주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를 제외한 세 명의 아이들은 모두 매운 것을 못 먹으니 "노 스파이시"로 우리의 대화를 마쳤다.

예약한 픽업차량 시간을 늦추고 여유 있게 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음식이 나왔다. 첫째와 셋째는 메뉴에 몹시 만족, 둘째 메뉴가 가장 늦게 나왔는데 빨간 고추가 뿌려져 있다. 그리고 한 입을 먹는데 맵단다!

"엄마, 물!"

"안돼, 물은 돈 받는 것 같아. 우리 방에 물 있잖아."

나는 돈을 아끼느라 물을 시켜주지 않았고 아이는 헥헥 거리며 그 매운 것을 먹는다. 그리고 와다다 달려 나간다. 물을 먹기 위해 숙소로!


픽업차량을 이용해 후아힌으로 이동 중이다. 한바탕 떠들다가 잠들었다가 또다시 떠들기를 반복한다.

도로가 우리의 고속도로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차 안은 한국말로 가득하다.

문득, 여행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행을 갈망하였다.

오죽하면 나의 벨소리가 '10센티의 여행 가고 싶다'였는데 그 벨소리를 들은 당시의 기관장님이 해외연수기회가 생겼을 때 나를 가장 먼저 보내주셨을 정도이다.

나에게 여행은 나에게 늘 도달하고 싶어 하는 어떤 이념과 같은 것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내가 왜 이렇게 여행을 원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앞서 말했듯 길치, 심한 편식, 영어를 못하는 데다가 밤에 나가서 노는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점은 여행할 때 제약이 된다.

기내식 이후 태국에서 아직 한 끼도 먹지 않았다.

대략 일주일 정도를 굶다 보면 배가 고파 그때쯤이면 뭐라도 먹을 듯하다.

이렇게 강제단식이 뻔한 것을 알면서도 나는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낯선 땅에서 한국말이 가득한 한국과 같은 도로를 다니면서 문득 생각이 난다.

'나는 왜 여행을 하고 싶지? 건물, 도로.. 사람 사는 것은 어디든 마찬가지인데..'

후아힌으로 가는 길, 문득 던져진 질문 하나.

이 여행의 막바지에 질문에 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두 번째 숙소에 도착한 아이들은 조금 작은 수영장을 보고 다소 실망한 듯 하지만, 또 들뜬다.

하지만, 우리는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동네를 걸으며 사람들이 많은 카페 같은 곳에 가서 맛난 것도 먹고 바닥에 파인애플, 두리안이 그려진 것을 보며 이야기도 나눈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찾아 길을 건넜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면 된다. 이제 건너면 된다.

그런데 횡단보도가 없다. 도저히 없다. 다시 그 횡단보도로 되돌아가자니 이미 걸어온 거리가 꽤 된다.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한다. 그래, 우리도 무단횡단을 하자. 무단횡단이 이곳의 문화인가 보다.

그리고 아이들이 재잘거린다.

"엄마, 우리 이제 길을 건너지는 말자. 다시 건너기가 너무 힘들어."

무단횡단을 처음 해 본 아이들의 가슴이 조마조마하였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수영장에서 한바탕 논다.

수영장이 작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둘째는 동생을 들어서 던지고, 누나에게 가서 장난을 치며 누구보다 신나게 노는 언행불일치의 모습을 보인다. 참으로 행복한 얼굴이다. 그리고 나도 행복해져서 모든 것이 평화로 가득 차는 듯하다.

저녁을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호텔 옆에 있는 식당에 가보기로 한다.

규모가 꽤 큰 노상식당이다.

메뉴판을 주는데, 영어가 하나도 없다. 심지어 나에게 메뉴를 쓰라는 듯 종이와 펜을 주셨다. 그림 같은 태국어를 쓸 자신은 도저히 없다. 그냥 모두가 태국어이고 외국인이라고는 우리 가족 밖에 없다.

얼른 번역기를 돌린다. '바삭한 돼지고기'를 삼인분 주문하기로 한다. 태국의 모든 음식을 다 파는 듯 많은 것이 적혀있는 메뉴를 번역했기에 7번째 줄을 기억하고 7번째 줄에 있는 것을 손으로 짚은 후 다시 손가락 세 개를 펼쳐든다. 직원분은 능수능란하게 나에게 묻는다.

"라임?"

"예스."

"쓰리?"

"예스."

태국음식이 볶은 것이 많으니 라임을 뿌려먹는구나라는 것이 지난 숙소에서 중식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였다. 그래서 라임을 주느냐고 물어보는 것이 이상했지만, 달라고 했다.

우리 옆 테이블은 신년회중인지(그래, 아직 1월 1일이다.) 대략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음식을 시켰다. 주방장은 한 명인데 나오는 모든 음식이 다 그 테이블로 배달된다. 한 시간가량을 기다렸다. 오픈주방을 구경하며 언제 우리 음식이 나올까 궁금해하며 음식이 나올 때마다 옆테이블로 가는 것이 신기해서 또 쳐다보았다.

드디어 우리 테이블에도 음식이 배달된다. 흰 밥 세 그릇. 아마도 '라임'이 '밥'이었다 보다. 그리고 또 기다리니 드디어 음식이 나온다. 새우와 브로콜리가 함께 어우러진 볶음요리이다. 당황스럽다. 우리는 바삭한 돼지고기를 시켰는데, 해산물을 먹지 않는 둘째는 더 당황한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다. 그냥 먹어야지.

아니, 아이들이 한 입 먹더니 너무 맛있나 보다. 숟가락이 바삐 움직인다. 해산물을 먹지 않는 둘 때는 발라내고 남은 새우꼬리의 살까지 가져다 먹고 누나의 밥도 받아서 먹는다.

이런 상황이 정말 재미있다. 계속해서 메뉴선택을 실패하는 아이도, 그리고 그럼에도 남김없이 먹는 상황도 너무 즐겁다.

그래서 오늘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즐거운 실패의 연속과 함께..

KakaoTalk_20240102_110851499.jpg 우리의 저녁, 심지어 첫째는 다른 것을 골랐는데 메뉴통일을 위해 변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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