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떠나고 싶지만, 작정하고 떠나다

-바가지를 써버리겠다!

by 낮은돌담

새벽, 셋째가 경기를 했다. 아이는 약간의 발작 후에 잠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잠을 푹 재워야 한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첫째와 둘째가 일어났다.

아이들에게 막내가 새벽에 경기를 했다고 알려준 후 돈과 카드를 주며 아침은 둘이서 나가서 무엇이라도 사 먹고 오라고 말했다.

긴 시간의 여행을 결정한 나를 보고 누군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러하지 못하다. 아니, 그냥 어쩌면 평범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어느 날, 첫째가 물었다.

"엄마, 우리는 금수저야? 은수저야?"

"엄마는 그렇게 이런저런 수저로 어떤 계층을 나누는 것이 불편해. 결국은 자신의 배경이 좋은지 나쁜지를 묻는 것인데 그 배경을 무조건 경제적 수준으로만 나누는 그 기준이 싫어."

"엄마,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경제적인 수준으로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뭔지에 대해 궁금한 거야."

"엄마는 우리가 금수저라고 생각해. 누구보다도 잘 노는 아빠와 엄마가 있잖아. 너희들이 무엇을 하든 응원하는 우리의 양육은 너희들에게 충분히 금수저라고 생각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나는 그냥 우리 집이 부자일까 아닐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거야."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결국은 우리가 부자인가, 아닌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들 생각에 우리 집은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단다.

아이들은 흔히 말하는 브랜드 옷을 사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옷을 물려 입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래서 아이들 옷을 살 일이 거의 없는 편이다. 옷에 구멍이 나도 그냥 입고 다닌다. 활동이 많은 아이들이라 운동화는 나름대로 브랜드를 사주는데 한 달 정도 신고 나면 어김없이 앞쪽에 구멍이 뚫린다.

어쩌면 공교육이 아닌 '사람, 생명, 공동체'를 가치로 하는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어서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아이들끼리 밥을 챙겨 먹어야 할 때, 반찬이 없다고 전화가 오면 집에 있는 오이, 당근을 썰어서 먹으라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기분 좋게 밥을 먹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부족함이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특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여행경비를 지출함에 있어 머뭇거림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의 예산 안에서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때문에 유심칩은 나만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태국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아이들을 내보낸다는 것이 조금 염려스러웠지만 아이들은 상황을 이해하고 선뜻 모험을 나선다.

대략 한 시간이 지나서 아이들이 돌아왔다. 편식으로 내내 아무것도 먹고 있지 않는 엄마를 위한 커피까지 해맑게 들고 왔다. 아이들에게 준 돈은 겨우 160바트였다. 그리고 카드를 주며 혹시나 편의점에 가게 되면 유심칩을 사라고도 말했으나 유심칩 없이 돌아왔다. 편의점에 갔는데 식당이 와이파이가 되는 걸 보니 구태여 유심칩이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사지는 않았단다.

동네 식당을 가서인지 주문한 음식은 실패였단다. 맛없었는데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다 먹었단다. 그것은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음이다.

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행복하게 순간을 보낸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엄마인 나는 마음이 좋아진다.


셋째가 일어나고 원숭이가 많은 사원을 가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썽태우'의 종점이란다. 숙소 프런트로 가서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보여주고 썽태우만 말하였는데 가능하단다.

"어크로스?"라고 하니 "예스!"라고 답한다.

숙소를 나와서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첫째가 "엄마, 우리 오늘 아침에 아침 먹으러 가면서 우리 가까운 데에 횡단보도가 있는 걸 발견했어."라고 하며 길을 안내한다.

트럭을 개조한 듯한 썽태우, 사람이 많으니 서서 가기도 해야 하는데 둘째가 신났다. 한국에서는 불가한 움직이는 차에 매달려 가는 듯 보이는 것이 가능하니 꼭 서서 가겠다고 한다.

마치 고양이처럼 원숭이들이 돌아다닌다.

처음에는 원숭이가 공격할까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뜨겁다.

뜨거운 햇볕 아래 걷는 것이 숨이 막힌다. 게다가 나는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다.

기내식 이후로 무언가를 먹지를 않았다.

빈 속에 땡볕을 걸으려니 힘이 부친다.

게다가 언어가 되지 않으니 걷다 보면 여기가 아니구나 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도 원숭이는 진짜 실컷 보았다. 원숭이 무리를 보며 둘째가 말한다.

"아, 나도 저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

14살 아들은 원숭이가 되고 싶단다. 그 말이 지친 마음을 환하게 만든다. 사실, 나는 우리 둘째의 이런 천진난만함이 사랑스럽다.

3시간 넘게 걸었다. 그 시간이 지칠 법도 한데 아이들은 궁시렁 거리기는 해도 걷고 또 걷는다.

땡볕 아래의 행군은 편식을 넘어선 결심을 이루도록 하였다.

썽태우로 오는 길에 마켓빌리지를 보았다. 쇼핑몰 비슷하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알았기 때문에 들려보기로 했다.

돌아오는 썽태우, 처음으로 한국사람을 만났다. 올 때의 요금을 기억하기 때문에 1인당 20바트씩 80바트를 준비하는 것을 보더니 슬쩍 알려주신다. 1인당 15바트라고 한다. 그래서 올 때 20바트를 내고 또 15바트를 냈다고 하니 기본적으로 썽태우는 공항 가는 것이 아니면 1인 15바트라고 알려주신다.

첫째가 말한다.

"엄마, 우리 돈을 더 많이 냈나 봐."

"음, 그럴 수도 있지. 우린 몰랐으니까.. 그런데 이제 알았으니 이제는 제대로 내면 돼."

그러자 그 한국사람이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어요."

마켓빌리지에 도착하여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고 나니 다시 살만하다. 아까까지 죽을 것 같던 마음이 살 것 같아지더니 편식을 멈춰보겠다던 절박한 결심을 순식간에 뒤바꿔놓는다.

삶과 죽음이 한 끗이고 절박한 결심은 순식간에 신기루가 되기도 한다.


돌아오는 길에 더위에 지친 아이들은 숙소에서의 수영을 원하고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다. 먹게 된다면 우리의 푸드코트처럼 되어있는 이곳에서 먹는 것이 선택의 폭이 넓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의견을 나눈다. 우선 수영을 하고 저녁을 야시장에서 먹기로 했다.

한바탕 수영을 하고 다시 썽태우를 탔다.

이번에는 똑똑하게 1인당 15밧씩 60바트를 드렸더니 20바트를 더 내란다.

"비프티 바트!"

외쳐보지만 기사분의 단호한 목소리. 결국 80바트를 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깨달았다.

갈 때의 비용과 올 때의 비용이 같다. 우리가 있는 곳이 조금은 외진 곳이라 우리의 시외요금처럼 동일하게 조금 더 많은 비용을 받는 듯하다.

우리는 사원을 갈 때도 바가지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여러 번의 반복된 경험은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오해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태국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바가지를 많이 씌운다더라라고 하는 관념으로 경계 가득한 자세를 지녔다면 우리가 바가지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태국어를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영어를 잘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썽태우 기사분은 영어를 잘하지 못하신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후 사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썽태우를 여러 번 타면서 기사분들이 요청하는 요금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고 썽태우는 후아힌의 버스와 같은 개념이기에 관광객이기에 무조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마음에서 멀어지는 순간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해에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마음이다.


2019년 첫째와 둘째와 함께 열흘가량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호찌민-무이네-달랏을 다녀오며 무이네에서 사막(정확히는 사구)에 다녀왔다.

선라이즈를 신청하여 새벽에 오픈된 차를 타고 사막을 향하는데 문득 눈물이 났다. 어스름한 새벽, 졸음에서 깨어나지 못한 아이들과 함께 새벽공기를 마시는 그 순간이 너무 빛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도착하고 조금 부드러운 플라스틱 같은 것을 빌려 모래썰매를 탈 수 있었다.

인터넷의 정보에서 수없이 경고했다. 베트남의 화폐단위가 너무 커서 헷갈릴 수 있고 그런 것을 이용하여 바가지를 씌우니 꼭 반드시 잘 확인하라고 했다.

그 주의점을 기억하고 또 기억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아이들은 썰매를 빌리고 싶어 했고 나는 썰매를 빌렸다. 일출과 함께 타는 모래썰매의 모습은 잊히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다 문득, 내가 돈을 많이 냈다는 생각에 들었다. 당장 썰매를 빌려주었던 사람을 찾아가 되지도 않는 영어로 따졌다. 그도 내게 뭐라고 했다. 나의 의심은 확신이었고 절대로 돈을 돌려주지 않는 그에게 나는 경찰에 에 신고할 할 것이라고, 당신은 정말로 나쁜 사람이라는 알아듣지도 못할 엉터리 영어로 쏟아부었다.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다웠던 풍경은 어느새 사라지고 내 머릿속에는 내가 손해 보았다고 생각하는 그 금액만이 가득했다. 그런 나에게 첫째가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엄마, 만약 엄마 말이 맞다면 우리는 얼마를 손해 본 거야? 그런데 그 아저씨가 우리를 계속 밀어주었어. 우리가 몇 십 번을 탔어. 그러면 한 번 타는데 많아도 몇 십원 정도야. 정말 아깝지 않게 탔어. 엄마 괜찮은 것 같아."

다시 아름다운 풍경이 쏟아져내렸다.


내 마음이 나의 여행을 결정한다.

그래서 이번 여행기간 동안 나는 여유롭게 나의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갈 갈 것이다.

나에게 다시없을 시간이고 이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물론 바가지 씌우는 경험은 불쾌하다.

그저 바가지를 써도 상관없는 여행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바가지에만 집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 이 가격이 적당한 수준인지 아닌지..

그것을 배워가는 과정에서의 바가지는 그냥 써버리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오로지 행복한 나의 시간을 위해.

KakaoTalk_20240102_142316626.jpg 썽태우, 처음에는 긴장이었지만 몇 번 타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진다. 요금도, 자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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