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강제단식을 멈추다.
숙소를 이동하기로 한 날이다. 12시에 출발 예정이어서 그냥 아침 수영도 하며 숙소에 머물러야지 했다. 그리고 나는 전날 조식을 신청했다. 아침 먹을 식당을 찾아 걷는 것이 힘들었고 적당한 곳을 선택하는 것도 지쳐버렸다. 아이들은 조식을 먹는다며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조식은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지금 어쨌거나 단식 중이 아닌가. 그러니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풀떼기를 먹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샐러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실망스러웠지만, 또 그 안에서 우리는 즐겁게 아침을 먹었다. 우리 방으로 들어가는 길에 첫째가 산책을 제안한다. 둘째는 거절, 셋째는 찬성!!
둘째는 방에 있기로 하고 우리 셋이서 나가보았다. 사실, 숙소에서 보면 맞은편이 바다가 보이기에 그쪽으로 가보고 싶기는 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난 산책길은 많은 식당과 마사지샵, 그리고 태국의 프랜차이즈 카페인 아마존까지 있었다.
"와! 엄마, 여기를 알았다면 우리는 아침 조식을 먹지 않았을 거야. 이제는 숙소를 옮기고 나면 동서남북으로 다 다녀봐야겠어. "
그래, 우리는 또 이렇게 배운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속도에 맞춰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새로운 곳은 천천히 그곳을 걸어 다니면서 알아보야 하는 것이 맞다.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는 있지만 인터넷이 빠른 만큼 정보도 빠르게 흘러가고 있고, 특히 여행지에서의 정보라는 것은 누군가의 개인적 느낌이기에 그것은 나의 느낌과는 또 다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개괄적인 정보를 가지고 나는 다시 나만의 느낌과 생각을 채워가야 하는 것이 맞는 듯하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곳에 가면 제일 먼저 숙소 인근 동서남북을 산책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마사지샵!
나는 마사지받는 것이 좋다. 정확히는 안마를 받는 것이 좋다. 내 어깨는 항상 결려있고, 우리 아이들이 해주는 안마는 정말 시원하다. 특히 손이 야무진 셋째의 안마는 피로를 풀기에 충분하다. 훌륭한 안마실력에 비해 안마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삼 분 남짓이다. 그래서 늘 아쉽다. 그런 나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받는 마사지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베트남에 가서도 나는 마사지를 받지 않았다.
아무리 동남아의 마사지가 저렴하다지만, 대부분 현지 식당에서 밥을 먹는 우리의 여행 물가를 고려해 보았을 때 내가 받게 되는 마사지는 늘 비싸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침 산책에서 마사지샵을 보는 순간, 마사지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용감하게도 마사지샵의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들은 오는 길에 봐두었던 카페에 가서 음료를 시켜주고 나는 마사지를 받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사지가 시원해서도 아니고 대접받는 느낌을 받아서도 아니었다.
그냥, 무언가 나를 위해 이런 새로운 결정을 한 나 자신이 참으로 어여쁘게 느껴졌다.
내성적인 편인 나는 마사지를 받으며 억 소리가 절로 났지만, 입 밖으로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으며 꾹 참았지만 이렇게 새로운 결정을 하고 선뜻해버리는 내가 좋았다.
한 도시에서의 숙소 이동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나는 이불의 감촉을 조금 더 예민하게 느끼는 듯하다.
그런데, 마냥 좋은 숙소를 선택할 수는 없다.
어쩌면 물이 부족한, 빈부격차가 심한 어느 나라에서 누군가의 몇 달치 생활비가 될지도 모르는 돈을 그저 선뜻 쓴다는 것이 불편하다.
그런데 나는 숙소의 컨디션이 좋기를 바란다. 이것은 편식을 하는 나의 예민함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며 또 한 편으로는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기억이 될 이 순간을 행복하게 채워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도 연결된다. 또, 나는 큰돈을 숙박에 쓸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지도 않다.
그래서 숙소 선택은 언제나 어렵고도 신중한 부분이다. 그래서 첫날 숙소는 체크인 시간이 아무래도 늦을 것이므로 조금 더 저렴한 곳으로, 그리고 도시 내에서 이동을 하더라도 다른 숙소를 잡는 것으로 후아힌에서의 계획을 세웠다.
첫 숙소와 두 번째 숙소는 거리가 되는 것 같다. 짐도, 사람도 많다. 그랩으로 이동을 하기에는 짐이 다 실리지 않을 듯하여 걱정이 된다. 또 그랩에는 우리가 옮길 숙소가 검색되지 않는다.
결국, 숙소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직원은 매우 열심히 나의 설명을 들었고 이해를 하였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직원에게 얼마냐고 묻자 대략 200~300바트라고 하였다. 물론 내가 알아서 했을 때보다 비쌀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략 250바트 정도 받지 않을까 생각하였으나 도착하고 나서 기사분은 나에게 300바트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수고로움과 걱정을 덜어준 교통비로 나는 기꺼이 300바트를 지불하였다. 그래, 바가지라도 나는 상관없기로 마음을 먹고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이기에 조금 아깝지만 그런 생각을 이내 털어내 버렸다.
새로이 도착한 숙소는 보기에도 화려하였고 직원의 응대 또한 융숭하였다.
그리고 융숭한 직원의 영어실력은 매우 훌륭하였다.
훌륭한 영어실력을 지닌 사람의 말을 쉽게 알아듣지 못한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언어가 쏟아지겠는가.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더니 기운이 빠진다.
나의 긴장과 애씀을 모르는 아이들은 멋진 숙소의 모습에 다시 들뜬다. 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 위에 누워 잠시라도 쉬고 싶은데, 아이들은 '엄마, 엄마' 부르며 말을 쏟아낸다.
"얘들아, 엄마는 영어를 하는 것이 힘들어. 그런데 새로운 숙소에 도착하면 너무나 많은 영어를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해. 그래서 새로운 숙소에 오는 날에는 엄마가 긴장되고 힘들어. 그러니 새로운 곳에 오면 엄마를 조금 이해해 줘. 엄마를 조금 기다려 줘."
정중한 나의 말을 아이들은 이해하지 않는다. 나의 부탁에도 수영장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고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은 마음을 쏟아낸다.
이럴 때, 첫째는 엄마의 마음을 이내 알아차린다. 그리고 엄마의 별다른 부탁 없이도 동생들을 챙겨 나에게 잠시 시간을 준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의 긴장이 스르르 녹아버린다.
아마도, 내 마음을 이해받고 있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다.
나의 상태를 고스란히,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이해해 주는 그 모습은 나를 따뜻하게 한다. 세 명의 아이를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이번 여행 내내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 책임감은 나도 모르게 나를 외롭게 만들고 겁나게 만든다. 그런데 나는 내가 어떤 마음인지조차 살피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이 여행은 내가 한 결정이기에 내가 힘들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않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해받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 나는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힘든 나를 스스로 인정하고 수용하게 되는 순간, 또 그 힘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첫째의 따스한 배려는 미안하면서도 너무나 고맙다.
그리고 나는 다시 따뜻하게 나를 채워갈 수 있었다.
이제 새로운 숙소에 가면 동서남북 인근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점심 먹을 만한 곳을 찾아 걷는데 식당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떡하니 아주 큰 식당이 나타났다.
갑자기 나는 무언가를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강제단식의 한계가 온 것 같다. 그리고 팟타이를 시켰다. 물론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드디어 현지식을 먹게 된 것이다!
편식이 심해 굶는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간단한 한국 음식을 챙겨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나는 아마 현지음식을 먹지 않게 될 것이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기는 하지만, 나는 음식은 곧 그 나라의 문화라고 생각하기에 음식을 먹는 것은 여행에서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한식을 찾아먹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은 이렇게 조금이라도 먹게 되는 것이다.
숙소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다시 저녁을 먹으러 나가보았다. 그런데 큰길까지 갔는데도 식당을 찾기가 가 힘들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현지 식당을 발견하고 자전거 네 대를 세워두고는 용감하게 들어갔다.
우리는 또 신년회를 하고 있는 현지인의 옆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직원이 당황한다. 사실 우리의 숙소는 후아인 인근의 조금 더 작은 차암이라는 마을이기에 외국인인 우리를 보고 당황한 것이다. 메뉴판을 주셨는데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번역기를 돌렸으나 번역 불가이다. 그때, 또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분이 자신 있게 우리에게 온다. 그리고 중국인이냐고 묻기에 한국인이라고 하니 괜찮다며 영어로 대화를 시도한다. 나는 밥을 먹고 싶다고 했으나 우리가 간 곳은 '수끼'라는 태국식 샤브샤브를 파는 곳이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유일한 메뉴인 '수끼'를 주문했다. 아이들은 배가 고팠고 신년회중인 테이블이 있었다. 어제와 같다. 나오는 모든 음식이 다 신년회 테이블로 간다. 우리는 다시 인내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어두워진 더운 이곳, 노상식당에는 벌레가 온다. 우리 모두는 너무나 외국인처럼 계속해서 벌레를 쫓기 위해 몸을 흔들었다. 그러자 직원분이 살며시 우리 테이블에 작은 향수병 같은 것을 올려 주신다. 벌레퇴치제. 그 따뜻한 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또 감사하게도 드디어 우리의 음식도 테이블에 차려진다.
노상식당에는 신년회 중인 동네분(테이블 하나에 선물을 쌓아두고 전구를 올려두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것은 분명 신년회이다.), 우리를 도와준 학생과 함께 식사 중인 가족, 그리고 우리 네 명.
그렇게 세 개의 테이블에는 모두 같은 음식이 올라와있었다. 수끼.
우리는 다른 테이블을 보며 어설프게 흉내 내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우리를 도와준 가족들은 계속 우리를 쳐다보신다. 어설픈 우리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부디 이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음식을 잘 먹어주기를 바랐다. 나의 염려가 무색하게 아이들이 너무나 맛있게 음식을 먹는다.
심지어 둘째는 더 시켜달라고 한다. 그럴 수는 없다. 음식 하나가 나오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정말 맛있는 식사 시간이다.
신년회 중인 곳은 이제 통에서 무언가를 뽑아 선물 증정식을 하고 즐거워하는 모습, 외국인인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딸을 자랑스러워하는 행복한 표정으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가족, 그리고 정말 맛있게 행복하게 먹는 우리 아이들까지..
서로 대화 나누지는 않지만 소박하지만 어우러지는 어느 저녁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