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느새 Nov 15. 2021

나 오늘 친구 기분 신경 안 썼어.

59개월의 기록

2021.02.22

 

하원 후 욕실에서 손을 씻고 수건으로 툭툭 닦으며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 오늘 친구 기분 하-나도 신경 안 썼어"

아이의 한마디에 적잖이 놀랐다.

클렌징 오일을 문지르다 말고 아이의 바라보며 진심으로 놀라움을 담아

"정말?"

"응. 한 번도 지금 기분 괜찮아? 하고 안 물어봤어. 윤서는 윤서 기분만 생각했어"

"잘했어.. 정말 잘했어 윤서야.."

"그런데 윤서는 신경 안 쓰는 게 그냥은 안돼. 그냥 있으면 자꾸자꾸 신경이 쓰여. 그냥 그렇게 돼"

"그럼 노력한 거야?"

"응 윤서 기분만 생각하려고 친구 기분 신경 안 쓸려고 노력했어!"

오일이 묻은 얼굴과 손을 떨어뜨려놓고 아이를 푹 안았다.

"잘했어 윤서야 너무 잘했어"


아이는 타고난 기질의 특성상 다른 사람의 감정에 많이 신경 쓰고 배려하는 타입이라고 했다.

아이는 특히나 나의 기분,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과 특정 친구의 기분만 신경을 썼다.

자기와 긴밀하다고 생각하는 커넥션은 과도하게 신경을 쓴다.(그 와중에 아빠는 없음)

그에 반에 나는 내 감정에 굉장히 몰입하는 타입이라고 했다.

부정할 수 없는 게 나는 어떠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 그 기분이 왜 드는지 어디서 시작됐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곤 한다. 아이는 그런 꼬리를 무는 내 표정을 보며 기분이 안 좋아졌다 생각하고 긴장을 한다.


지난 주말에도 나는 기분을 숨길수 없었고 아이는 어김없이 기분 안 좋은 엄마를 신경 썼다.

아이가 나의 눈치를 본다는 것을 아는 나는 또다시 아이를 배려해 내 기분을 숨겨야 했지만 그날따라 그러기 힘들었다.


"윤서야 엄마는 지금 기분이 쫌 안 좋아. 그건 윤서때문은 아니야. 그냥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가지면 괜찮아 질꺼같아. 윤서는 윤서 마음만 신경 쓰면 돼. 윤서가 기분 좋으면 계속 기분 좋아도 돼. 윤서한테 제일 중요한 건 윤서 마음이야. 엄마한테 제일 중요한 건, "

"엄마 마음이고?!"

"응. 엄마한테 제일 중요한 건 엄마 마음이야. 기분은 항상 좋을 수는 없어. 기분이 안 좋으면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 조금 나아지는 거야. 윤서의 친구도 마찬가지 일거야. 윤서 친구의 기분보다 윤서 기분이 더 중요해."


내 감정에 대한 설명 뒤에 갑자기 친구 이야기도 붙여버렸다.

금요일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상담 통화의 잔상이 아직 남아있던 터였다. 아이가 한 친구(단짝 친구)한테만 신경을 과도하게 쓰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런 성향이 아니다. 그러니 윤서는 매번 상처 받고 그 친구는 숨이 막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이는 끄덕였고 알아듣는듯했다.

나에게는 잠시 시간을 주는듯했고 나는 정말 조금씩 기분이 나아졌다.


며칠이 지났고 갑자기 아이가 친구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다며 나에게 어려운 일을 해낸 보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기특했다.

이 아이는 내가 아무리 신경 쓰지 마라 마라 해도 신경 쓸 아이이다. 자기 기분보다 주변 사람들이 안정돼야 자기도 안정감을 느끼는 성향이다. 그러니 나라도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말고 네 기분만 생각하라고 지속적으로 말해줘야 할꺼같다.


여자아이들에게 있어 친구관계와 그룹핑의 중요성은 나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게 얼마나 그 시절에는 최고로 중요하고 전부인지... 거기에서 즐겁고 거기에서 좌절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 파도에 휩쓸리면 나라는 것은 잃어버릴 수도 있기에 나는 윤서의 마음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편안하고 비슷한 성향을 만나서 지들끼리 단짝이 되어 의지하고 토라지며 초등생활 보낸다면 좀 단련이 될꺼같은데 혹여나 따돌림당하고 배제당하면 견디기 힘들어할 거 같다.


지나고 보니 그게 별게 아니었음을. 지나 봐야 아는 거라지만 윤서에게 조금은 힌트를 주고 싶다.

제일 중요한 건 윤서 자신이라는 것을.

나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나를 상처 주고 너무 힘들게 하면 관계를 끊어버려도 된다는 것을

그래도 죽지 않고 세상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친구란 어렵겠지만 다시 사귀면 된다는 것을.

내가 상처 받으며 얻었던 모든 관계에 대한 기억을 하나로 농축시켜 딱 한 방울 하나의 문장.

 

제일 중요한 건 윤서 자신이라는 것을.

그거 하나는 진심으로 꼭 전달하고 싶다. 아이는 당연하지만 그런 고뇌에 반드시 빠질 것이고 그때 힘들다가 힘들다가 마지막에  고개를 들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심어놓은 씨앗이 아니라 윤서 스스로가 심은 작은 씨앗. 제일 중요한 건 윤서 자신이라는 것.


작가의 이전글 아이가 첫 학원에 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