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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새 Apr 05. 2023

두 소년

- 큰 아버지 어릴 적 모습 기억나세요?

- 그럼, 다 나지... 그때도 우리 형님은 참 순했어. 그 시절 애들은 지금보다 억세서 동네별로 싸움도 많이 했는데, 형님은 싸움 한번 하는 걸 못 봤어. 차라리 맞고 왔지. 그럼 내가 가서 그형들 혼내줬지.

- 아빠랑 거의 열 살 차이 나잖아요?

-그래도 난 그런 거 몰랐어 그때는 그랬어. 울 아부지가 절대 맞고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 때리고 오면 그 뒷수습은 해줘도 맞으면 집에 못 들어오게 했어. 그래도 우리 형님은 순해서 싸움 안 하고 차라리 맞았어.


60년전 이야기를 아빠는 어제일 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하셨다. 지평선 끝에 태양이 걸린 호남평야를 달리고 있는 어린 아빠를 상상했다.

그때도 말수 적고 인자하셨을 큰 아버지도 그려보았다. 시골 초가집에 오 남매가 옹기종기 어렵게 살았을 그 시절이 설핏 눈앞에 보인다.


ⓒ Matthew Smith



삼일전, 큰아버지를 호국원에 모시고 왔다.

일흔이 되어가는 우리 아빠는 장례를 치르는 삼일과 안장되시는 순간까지 형님 곁을 묵묵히 지키셨다.


같은 부모 뱃속에서 나왔음에도 아빠랑 큰아버지는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

큰아버지는 마른 장작 같이 키는 크고 마르셨고 우리 아빠는 부싯돌같이 작고 단단하다.

외모도 다르고 성품도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큰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전까지 정기적으로 둘만의 식사데이트를 하시며 서로의 안부를 챙기셨다.


마른 장작처럼 깡 마르셨던 큰아버지는 12월 말쯤 본인도 기억하지 못하신 채로 넘어지셨다고 한다.

그때 약하게 뇌출혈이 왔고 치매초기증세도 보이셨단다. 호전되셔서 퇴원하셨다가 나빠지셔서 다시 입원하시기를 겨우내 반복하셨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큰아버지의 삼 남매는 재활이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고 입원절차를 위해 검사와 서류준비등을 마쳤는데 입원하시기 바로 전날, 큰아버지는 의식을 잃으셨다.


중환자실에 계셨는데 입원 때부터 임종이 임박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자식들에게는 오분 안에 돌아가실 거 같다는 콜이 수시로 날아왔다. 달려간 자식들은 중환자실 앞에서 16시간씩 대기했다. 큰아버지의 몸의 모든 숫자들은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180가까이 되는 키가 무색하게 몸무게가 40킬로 밖에 남지 않으셨다. 힘들게 견뎌내셨다. 그렇게 3주가 지났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1인실로 옮겨 몸에 달고 있던 무거운 기계들을 거두고 편안한 상태에서 임종을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1인실로 오셔서도 5일을 계셨다고 한다.


자식들은 힘들어 하시는 큰아버지에게

"아빠 이제 편히 쉬세요. 우리 삼 남매 안 싸우고 오순도순 잘 살게. 하늘나라 가서 엄마 만나면 둘이 잘 쉬고 계셔요. 아빠 그동안 너무 힘들었잖아. 이제 푹 주무세요"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런데 큰아버지는 맥을 놓을 듯이 끝까지 안 놓으셨단다. 수치가 40,30 떨어지시다가 급격하게 다시 100이 되셨다. 누구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손주들과 영상통화와 음성통화도 하셨다.

"아빠 기다리는 사람 있어? 아빠 혹시 여자친구 있었어? 아빠 누구 기다려~”


가느다란 명주실 한가닥을 놓지 못하고 계신 듯한 큰아버지는 결국 요양병원으로 옮겨지셨다.

우리 아빠는 기다린 시간만큼 서둘러 달려가셨다. 그동안은 자식들만 면회가 된다고 하여 못 뵈고 병원 주변만 서성이셨다. 면회 가능하다고 해서 코로나 검사까지 하고 병원에 가면 도로 안 된다고 하기를 반복했다. 형님이 의식을 잃은 삼주동안 동생은 생활을 잃고 안절부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요양병원으로 달려간 동생은 형의 손을 꼭 잡았다.

" 형님 나왔어요. 어째 이렇게 말랐어요. 너무 힘들어 보이네 우리 형님..."

그렇게 한참을 머물다 돌아오셨고 몇 시간이 지난 새벽. 큰아버지는 소천하셨다.


"아빠가 작은아버지 기다리셨나 봐. 동생한테 인사하고 가시려고 끝까지 붙들고 계셨나 봐... 작은 아버지 다녀가시고 몇 시간 있다가 돌아가신 거 보면.. 정말 누구 기다리시는 거 같았거든.."


천천히 말해주는 사촌언니의 옆얼굴이 담담하다. 삼주동안 거의 매일 큰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연습을 했단다. '부모님 옆에 계실 때 잘해드려'라는 언니의 말이 뼈에 박힌다.


나이 든 형제는 그렇게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마지막까지 표현했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소중하고 자매들 사이도 나이가 들수록 없어서는 안될 사이라고 한다.

아무도 몰랐다. 나이 든 형제가 이렇게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할 줄은..


소년 둘이 너른 들판을 뛴다. 키가 크고 마른 형은 밤톨만 한 막내 동생이 귀엽고 짠하다.

이십 대가 되어 도시로 상경한 막내는 형을 불러 올린다. 둘은 자취방에 함께 살며 팍팍한 도시의 삶을 견뎌낸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큰 형님이 돌아가시는 걸 받아낸다.

근처에 살며 각자 살림을 꾸린다. 아이가 태어나면 서로 축하해 준다. 여전히 도시의 삶은 팍팍하지만 형님이 있어서 아우가 있어서 타지의 삶은 같이 기울이는 소주 한잔과 국밥 한 그릇으로 위로가 된다.

젊었던 청년들은 어딜 가고 형제는 이제 발걸음이 느려지고 숨이 가빠지는 나이 든 장년에 되었다.

아이들은 출가하고 손주들 사진을 서로 보여주기 바쁘다. 아무도 서로의 애틋함을 몰라도 둘은 서로 의지하고 챙기며 나이 들고 있었다. 서로의 건강을 챙기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었다. 떠들어대는 애정은 아니었지만 묵묵한 의리는 여전히 팍팍한 인생에 작은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형님을 떠나보낸 아빠가 우울해하신다. 축 처진 어깨를 내가 위로할 수 있을까. 내가 모르는 두 분의 삶과 사랑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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