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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새 Oct 17. 2022

처음 뵙는 분의 결혼식

시댁 결혼식 사진의 중앙자리

시댁의 결혼식 행사에 다녀왔다.

한 것도 없는데 왠지 모르게 피곤하다. 몸보다 정신이 그런 듯하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그런 듯하다. 십여 년 만에 오빠를 제대로 봤다는 어머님도 그러신 듯하다. 돌아오는 차 안의 분위기가 왠지 곤두서 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이 주는 불편함이란 무엇일까.



결혼식장은 북한산 자락에 있는 한옥이었다. 너무 멋졌다. 겨울로 달리기를 시작한 듯한 가을 산은 아직까진 드문드문 울긋불긋했다. 나는 초록과 슬며시 노랑,   급한 빨강이 섞인 단풍을 제일 좋아한다. 초록잎이 어느 정도 있으면 단풍의 현재진행형이 고스란히 보인다. 하나의 모습 말고 각자 자기의 모습을 한껏 보여주는 지금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랑 신부를 처음 봤다. 구 년전 내 결혼식에도 오셨다고 했지만 결혼식 당일날 와주셨던 하객을 모두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그날 처음 뵙는 시댁의 어른들과 사촌들은 도저히 기억하기 어렵다.

나도 어릴 적에는 사촌들과 교류하고 서로의 얼굴도 몸집도 목소리도 기억했지만 십수 년이 흘러 사회인이 되어 만난 사촌들은 길에서 만나면 모르고 스칠 정도로 서로 달라져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면 오묘하게 어릴 적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어른의 몸집으로, 차림으로 곁에 새로 만든 가족이라도 함께 있으면 더욱 알아보기 쉽지 않다. 우리 남편도 자신의 사촌들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오늘은 남편의 외종사촌 중 여동생의 결혼식이었다. 어머님의 6남매들이 하나둘 모이셨다. 사연 없는 집과 돈이 얽히지 않은 집이 어디 있겠느냐 마는 미묘하고 오래된 감정들은 오랜만에 모이는 두 시간 이벤트에 다 쏟아져 나오기란 곤란한 감정이면서도 표정 속으로 감추기도 쉽지 않은 감정들이다. (그 감정들은 몇시간 후 올라왔다.)

4년 전 다른 결혼식에서도 뵈었다는데 오늘 처음 뵌듯한 시외삼촌 어르신이 남편을 보자마자 장난반 진심반으로 호통을 치셨다.

- H야! 어른을 봤으면 달려와서 인사를 해야지

우리는 이제 도착한 지 3분이 안되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워서 그러셨나 보다 했는데 식이 끝나고 우리가 식사하는 테이블에 오셔서 거나하게 취하신 듯 상기된 얼굴로 아가씨의 뒤통수를 쓰다듬는 듯 툭툭 치시면서

- S야! 넌 외삼촌 보고 인사도 안 하냐?

- 아까 처음 뵙을 때 인사드렸잖아요

- 네가 언제 했어~! 많이 먹어

이러시면서 계속 머리를 툭툭 치셨다. 술은 마흔이 넘은 조카를 초등학생으로 보이게하는 마술을 부렸나 보다. 시외삼촌이 자리를 떠나시니

- 아니 삼촌은 아까 분명히 눈 맞주치고 인사드렸는데 왜 그래? 라고 아가씨가 황당해하셨고  

- 술취했나보다. 라고 어머님이 재빠르게 정리하셨다.

분명 다정한 터치는 아니었다. 마음에 걸렸었는지 남편도 나중에  

-아니 삼촌은 왜 얘 머리를 툭툭 치고, 나한테도 인사 안 한다고 호통치고

나만 이상하게 봤던 건 아닌 거 같다.


오늘 결혼하시는 시외사촌 아가씨의 남편은 외국인이셨다. 아가씨가 외국대학으로 석사과정을 마치시고 그곳에서 취업을 하시면서 회사에서 만났다고 하셨다. 하격의 절반도 외국인이었다.  그 이야기를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먹을 때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아가씨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 남편분 나이는 어떻게 되시는지 남편분 가족들은 어째서 참석을 못하신 건지, 그 쪽에서도 결혼식을 따로 하신건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궁금증 속에 왔던 결혼식은 끝이나도 아는 것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처음 본 두 사람의 결혼을 마음속 깊이 축하했다. 둘의 표정은 너무 행복해 보였고 끊임없이 눈 맞춤을 하는 그들은 애정이 깊어 보였다. 처음 뵌 분들이지만 사람대 사람으로 충분히 축복할 수 있는 게 결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보의 짜집기가 이루어졌다. 어머님이 들으신 이야기, 아버님이 들으신 이야기, 본 것들이 총망라해서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이야기가 나왔다.


- 아까 들으니 J는 이혼을 했다고 하데?"  (J는 아까 뒤통수를 쳤던 시외삼촌의 딸이다)

- 그래? 그래서 남편이 안온 건가?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그런데 걔 시아버지가 아스팔트 공장 사장이라고 했는데 이혼 보상을 잘 받았나보네?

보상? 위자료를 말씀하시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찰나

- 남편이 바람을 폈나 왜 이혼했데?

헉.. 마음속 말문이 막혔다. J는 삽시간에 남편이 바람 펴서 이혼 보상을 많이 받은 분이 되버렸다.

나는 어머님의 화법에 적응할만한 구 년 차임에도 놀랐다. 어머님은 유독 똑같은 말을 처음 하시는 말씀처럼 되풀이하시거나 가끔은 쉽게 단정 지으신 의견을 사실처럼 말씀하신다. 지금처럼.

외자차를 끌고 명품백을 들었던 J는 그렇게 하나의 이미지로 어머니께 고착되버렸나보다.


겪어오신 세월을 존중하기에 어머님을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가끔은 불편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우리 엄마한테서도 보이는 억울함, 한 같은 씨앗에서 발현된 것들 같았다.

그래서 조용히 어머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어머님은 '뒷통수 시외삼촌'이 얼마나 아버지 돈은 가져다 썼는지 반복해서 말씀해주셨다. 성수동 땅을 팔고 집을 팔고 엄청 보상을 받았는데 사업을 하고 중국에 공장을 차리고 망하고 지하방으로 이사까지 했는데 손주가 친구들한테 두더지라고 놀림받으니 아버지가 다시 집해 주고 나중에 아버지 아프시니깐 아버지 모신다면서 아버지 아파트도 팔고 그걸 J명의로 하고 아버지 땅도 혼자 다 가져가고, 아버지도 그렇지 우리 형제들한테 땅 공동명의로 해줄 테니 도장 파오라고 하더니 싹 첫째한테 다 주시고,, 어머님은 속사포 래퍼처럼 50년 치의 이야기를 숨도 쉬지 않고 풀어놓으셨다.


이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앞 좌석에 있는 남편과 아버님은 어머님 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앞을 보고 운전을 하며 슬쩍슬쩍 도로 상황이나 길 이야기를 하고, 어머님은 유일한 청중인 나에게 지난 세월을 쏟아내셨다. 오늘은 어머님의 친정 이야기이지만 어느 적에는 어머님의 시어머니, 시동생 여럿을 데리고 살던 대식구 시절 이야기,(아버님이 옆에 떡하니 계셔도) 아버님의 개인주의적 무심함 등등 어머님은 온갖 이야기에서 피해자였고 동시에 착한 사람이었다. 어머님과 나 사이에 앉아있던 아이는 그런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가져온 책만 열심히 보았다. 신기했다. 어머님 말씀이 나만 들리나? 그건 아가씨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많이 들은 스토리라서 그런지 그이도, 아가씨도, 아버님도 어머님의 억울한 마음이 안 들리는 거 같았다. '어머 그러셨어요?'라고 맞장구를 치고 앉아 있었지만 1인칭 시점에서 해주시는 이야기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본 어머님은 감내하셨을 분이기도 했다. 과장된 부분과 오해가 뒤섞인 반죽은 공갈빵처럼 부풀어올라 어느 게 사실이고 어느 게 의견인지 분간이 가진 않았지만 그냥 어머니 힘드셨겠어요 라는 말로 어머니의 한 혹은 화를 들어들이고 인정해드리는 어느 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 시절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견뎌야 했던 소녀들의 삶의 무게는 대를 이어 슬픈 옛날이야기처럼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엄마의 들을 때도 그 시절 순하고 착했던 소녀들이 안쓰럽다.


어머님 아버님을 모셔드리고 돌아오는 차에서 긴장이 풀어진다. 그리고 종일 들었던 많은 이야기와 목소리를 창밖 풍경에 빠르게 흘려보낸다. 또 누구 결혼해야 볼 수 있는 사람들, 4~5년 지나야 볼 수 있는 사람들, 길에서 만나도 몰라볼 사람들, 그냥 각자 알아서 제 식구나 잘 다독이며 살면 되는 사람들.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집단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애정과 무관심을 2시간 동안 각자스럽게 표현하고 50년 전으로 타임머신도 타보고 헤어졌다. 얼굴 붉히며 삿대질하며 헤어지지 않은 게 어딘가!  부모님 돌아가시면 형제간도 볼일이 별로 없다고 하신 어머님 말씀처럼 세월은 쉬지 않고 흘러 어머님을 그 부모님 나이에 앉혀놓았고 이제는 어머님이 낳으셔서 꾸려진 식구만 모여도 부족함 없으니 억울했던 소녀의 마음이 조금은 위로되길 바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오늘 왜 그리 피곤했는지 알 거 같다.

결혼식은 내 결혼식이 아니어도 감정 소모가 크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결혼식 사진 찍을 때 밀리고 밀리고 밀려서 원치 않게 혼주분들 사이에 떡 하니 서버리게 된 것이다. 나를 기억이나 하실까? ㅠ 왠 모르는 여자가 사진 중앙에 있지?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나의 결혼식 사진 중앙 자리에 서 계신 분도 누구신지... 아직도 모른다. 그분도 나 같았겠구나.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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