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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Oct 22. 2019

공연을 보고 만든다는 것의 의미

요즘 준비하고 있는 작업 이야기도 곁들여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보기보다는 함께 본다. 공연을 본 후 한껏 부풀어오른 마음과 말랑말랑한 감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으니까. 공연 속의 장면에서 출발해 우리의 삶으로까지 뻗어나가는 대화를 하는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극단 문과 함께, 서촌의 작은 한옥 '가찌'에서 - 1인극 <노래의 힘> (2015)


만들기도 한다. 공연은 커다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일은 나에게는 참 중요하다.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누는 이야기, 힘을 모아 무대를 완성하는 공동의 경험은 다른 날들을 위로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몇 년이 흘러도 가슴 속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 추억으로 남는다.



이런 순간을 좋아해서 자주 찍는다.


그러니까 공연을 보고 만드는 행위의 핵심은, 일견 무용해 보이는 어떤 사소한 것을 주의깊게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또 다른 무언가를 창작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연은 단 한 사람의 생각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눈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야만 가능한 작업이기에.


공연을 만들 때마다 새로운 질문들과 만난다. 일상에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을 그 문제들을 천천히 바라본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주제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생각해 보니 나이를 먹을수록 답을 내기 위한 이야기들을 주로 하게 된다.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답에 도달할 수 있는 대화들을 삶의 중심으로 두다 보면, 이런 시간들이 참 많이 그리워진다. 내가 공연 작업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요즘은 '코끼리들이 웃는다'와 함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코웃다'의 작업은 객석에 앉아서 보는 일반적인 공연과는 조금 다르다. 모두를 '주체'로 만드는 작업을 즐기는 그들은, 공연자의 퍼포먼스보다는 관객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처음부터 그랬다. 2014년 작품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에서 나는 바닥을 구르거나 침대에 눕거나 몸을 구겨 찬장에 들어가야 했으며 심지어 물벼락까지 맞았으니까. 마지막에는 서촌 한복판에서 다 함께 퍼포밍을 했다가 이상한 사람들이 동네에 등장했다며 신고를 받았던 그 순간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매번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그들이지만, 나는 그런 작업 방식과 태도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우리끼리'가 아니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묻어 있달까. 이쯤에서 지금 하고 있는 작업도 잠시 소개해 본다.




키워드 하나. 24시간

당신의 24시간을, 낯선 이 곳에 온전히 놓아볼 수 있는가? 이번 공연의 러닝 타임은 24시간이다. 그 24시간 동안 공연의 참가자들은 이전에는 결코 경험해볼 수 없었던 다양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공연은 언제나,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다. 창작자는 '상황'을 만들 뿐, '경험'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니까.



키워드 둘. 시간의 흐름

이번 작업은, '같지만 다른 시간의 흐름'이라는 말로부터 출발했다. 이전에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는데,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에 한 시각장애인이 '다르지 않지만, 시간의 속도가 우리는 조금 느릴 뿐'고 답했던 것. 다른 시간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시간의 흐름을 같은 속도로 맞추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래서 요즘, 시각장애인 분들과 만나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나에게도 새롭고 너에게도 새로운 것들을. 우리는 위계가 없는 새로운 경계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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