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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Mar 08. 2020

마하키친의 팝업 식당에
끼어든 이야기

제철 재료로 만드는 건강하고 맛있는 스페인 창작 요리



내가 좋아하는 극단의 소개글이다. 지난 번 공연에서 받아 온 리플렛을 방에 붙여 두었는데, 문득 저 소개글이 나의 일부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슬쩍 끼어들 수 있는 작품으로 여기저기 출동/충돌하고 있다'는 저 부분. 지난 주말,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마하 키친이 오랜만에 새로운 음식을 한다고 해서 손 번쩍 들고 슬쩍 끼어들었다.


제철 재료로 창작 스페인 요리를 하는 신소영 셰프 1인이 운영하는 마하 키친. 스페인어로 '마하'는 친절하고 성격이 온화한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는데 셰프님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단어다. 원래 예술기획을 하던 그가 돌연 스페인 요리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신기했었다. 아름답고 건강한, 게다가 너무나 맛있는 요리에 반해 그가 자리를 옮길 적마다 꼭 한 번은 찾아갔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내 몸이 조금 가벼워진 시점부터는 함께 무언가 해보자며 프로젝트를 벌이기도 했다.


2019년 1월에 신소영 셰프님의 집에서 진행했던 남의집 인생식탁


2019년 9월 스토리 살롱 BE AN ARTIST


그리고 최근 셰프님이 시흥의 제철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 바오스앤밥스를 총괄하게 된 후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그 곳을 찾았다. 그가 만드는 음식은 편안하고 신선하며 풍요롭다.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 너무나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 '그러고 보니 전부 채소였잖아?'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재료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정성스러운 태도까지, 그러니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하키친과

친구들




그런 마하키친이 오랜만에 서울의 손님들과 만나는 자리. 게다가 1인이 진행하는 팝업 식당이라니. 무엇이든 손을 보태고 싶었다. '설거지나 홀서빙 할 사람 필요하지 않나요?'로 시작된 대화에서 '손님들께 식후에 좋은 커피를 내려 드려도 좋겠네요.'하다 커피 하는 친구들이 모였고, 나는 이 멋진 사람들과 작업을 보다 잘 소개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다른 영역에서 다른 맥락으로 만난 이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 시도하는 느낌. 참 좋았다. 예전에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관객이자 동반자가 되어 주면 좋겠다고. 서로가 작업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기꺼이 지켜봐주고 함께해 주면 좋겠다고. 그러고 보니 그 대화를 한 것이 일년 전쯤인데, 작지만 그러한 현장을 함께 꾸미게 된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게 너무 좋아서, 각자의 이야기를 조금 정성스럽게 스토리 카드로 기록해봤다.



현장에도 이렇게 붙이고 말이지.




계절의 재료로 만드는

스페인 창작 요리



예약 손님들께 카드를 보내 드렸다.


스페인 요리면 요리지, '스페인 계절 창작 요리'는 뭐야? 라는 궁금증이 생긴다면 마하키친의 작업을 한 번 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계절의 신선한 재료들을 생산자에게 직접 받아 스페인 방식의 요리를 만든다. 표현하는 방식은 어찌나 창조적인지. 독특한 메뉴명, 세세하게 쓰여진 재료들, 생산자의 이름까지 - 매번 메뉴판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타파스에 올라간 재료만 몇 종류인거야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언제나 진심 어린 태도로 요리를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어려운 선택들을 꾸준히 해낸다.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 같은 음식을 낸다. 그 날도 그랬다. 효율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음식들을 만들고 소개했다. 



나는 당근이 이렇게 맛있는 재료인 줄 이제야 알았네.


마하키친의 작업은 늘 나에게 재료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 재료를 길러낸 생산자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마하키친을 찾는 손님들도 그저 식사를 하러 온 손님이라기보다는 그의 작업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응원하는 팬에 가깝다. '이번에는 어떤 음식을 할까', '어떤 재료들을 썼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현장을 찾는다.



이 날 나의 원픽. 빠따따스와 브라바스. 너-무 맛있다.





어쩌면 한 편의 

공연을 함께 올리는 일




사실 일하는 사람으로 식당에 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왠지 이 감각이 낯설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식당을 운영하는 일은 공연을 만들고 올리는 과정과 참 닮아 있었다. 어떤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그 작업의 의미를 읽어내는 일, 그 이야기가 잘 전달되도록 소개하고 알리는 일, 모두가 마음을 모아 하나의 좋은 경험을 완성하는 일. 



수집한 빈티지 종이를 가져가 주문서로 사용했다. 역시 모아두면 어딘가 쓸 데가 있다니까.


그 순간 연기를 하다 레스토랑을 운영하게 된 민재도, 예술을 기획하다 요리를 하게 된 소영 셰프님도, '본질적으로 같은 선택을 한 것이었구나' 느끼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이끌리는 현장 또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깨달은 하루.



금요일에 함께 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동양가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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