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쉬커피와 MCC(Mesh Coffee Culture)에 대한 이야기
메쉬커피 지하실로 성수동 사람들이 복닥복닥 몰려왔다. 페인트칠을 하다 말고, 강아지를 데리고, 와인과 케이크를 들고, 웃는 얼굴로. 어느새 공간이 가득 메워졌다.
조명이 켜졌다. 예쁜 모양과 빛깔의 램프였다. 동네 어디에선가 구해온 듯하다. 무대가 돋보이도록 조명의 각도를 비스듬하게 맞춘다. "연주자들은 이 쪽으로 오세요!"
연주자들이 당구대 옆에 마련된 대기석에 줄지어 앉았다. 잠깐 덧붙이자면 이 당구대는 당구를 몹시 좋아하는 메쉬커피 기훈 사장님의 애장품이다. 그러니까 주워오거나 얻어온 게 아니고, 산 거라는 말씀. 여기에는 이렇게 좀 이상한 물건들이 많다.
다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배운 데까지만 치는, 틀려도 좋은 그런 학예회라지만 그래도 잘 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연습했다. 이게 뭐라고 손에 땀을 쥔다. 그러고 보니 무대를 만들어 본 적은 많았어도, 내가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웬 학예회냐고?
성수가을학예회는 여름 내내 메쉬커피에서 피아노를 배우던 어른 학생들의 학예회다. 어릴 때 배우다가 손 놓아버린 피아노를 다시 치고 있다는, 그런데 피아노를 배우는 장소가 '메쉬커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백이면 백, 눈이 동그래진다. 카페에서 피아노를 배우게 된 사연에 대해서 말하려면 메쉬커피라는 특수한 장소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메쉬커피는 카페이지만, 카페가 아니다.
사진으로도 가늠할 수 있듯 메쉬커피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실내에는 두 세명만 서도 꽉 찬다. 그런데 그 공간에 매일 여러 사람들이 틈도 없이 빽빽하게 서서는 커피를 마신다. 의자 하나, 테이블 하나 안락한 것이 없는 이 좁고 불편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이렇게나 모여들어 시간을 보내는 이유가 뭘까.
메쉬커피는 일찍 열고 일찍 닫는다. 그래서 여기는 성수동을 터전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동네 주민들이 주로 찾는다. 하루를 열기 전에, 또는 일하다 말고 잠시 짬을 내서 들른다. 아침에 온 사람이 점심에도 오고 저녁에도 온다. 서로 '메쉬 벽지' 아니냐며 농담을 던질 정도다. 다닥다닥 붙어 서서 이웃인 빅토리아 베이커리에서 사 온 디저트를 나누어 먹고, 신메뉴도 맛보고, 중고 거래도 하고, 산책 나온 동네 강아지 또는 성수동 유명 고양이와 인사하고, 소식을 나눈다.
안녕, 오랜만이야, 아프리카 다녀온다더니 벌써 왔네, 준비하던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어가?, 참! 새로 오픈한 국수 가게 가 봤어?, 맛있던데, 우리는 어제 다 다녀왔잖아, 밥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래?, 어제 성수동에 방송 촬영 왔던 거 알아?, 어제 뭐 했어? ─ 그런 대화들.
메쉬커피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여러 이웃들에게 애정이 생겨난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취향을 따라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귀여운 강아지 코지를 키우고 있는 '이스트 오캄'에서 함께 영화를 본다. 개성 있는 두 부부가 리폼한 빈티지 의류들을 구경하다가 평소의 나라면 시도하지 않았을 꽤 실험적인 의상을 입어본다. 요즘 동네 사람들이 밤마다 찾는다는 비밀스러운 바에 가서 위스키를 마신다. 얼마나 비밀스럽냐면, 가게에 들어가면 지키던 이가 놀라며 '여기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한다. 모멘토 브루어스에서 호주식 커피를 맛본다. 듣지 않았던 음악을 듣게 된다.
요즘 생각한다. 커뮤니티라는 건, 결국 호스트의 성향이 그대로 녹아들어 가 그 성격이 결정된다고. 메쉬커피를 중심으로 모여든 커뮤니티에는 성수동과 그 안의 이웃들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깔려 있다. 새롭게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 응원해주고, 무언가 좋은 것이 있으면 선뜻 나누고, 이익이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함께 재미있는 일을 벌인다. 문득 손님들에게 동네를 소개해주며 성수동 가이드 역할을 자처했다는 메쉬커피의 초창기 스토리가 떠올랐다. (그 이야기는 아래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어느덧 나에게 메쉬는 ‘교류’를 상징하는 기분 좋은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 가면 언제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된다는 기대감. 갈 때마다 반갑게 아는 척을 해 주는 바리스타들도 사랑스럽다. “오늘도 라떼에 시럽?”하며 내 취향을 기억해 주는 것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짤막한 순간들이 큰 기쁨이 되었다. 그런 찰나들이 일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실감했다. 집이 가깝다는 핑계로 하루가 멀다 하고 메쉬에 드나들었다. 특히 MCC(Mesh Coffee Culture)가 열리는 날은 빠질 수 없었다.
비밀의 공간으로 함께 가보자. MCC는 저 아래, 평소 손님들에게는 개방하지 않는 지하실에서 열린다. MCC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영역들을 탐구하며 만들어가는 메쉬커피의 문화다. 올해 지하 워크룸을 오픈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기부터는 내가 참가한 MCC 이야기.
MCC커핑
에티오피아 대잔치
커피인들 사이에 섞여 용감하게 참석한 MCC. 부산과 서울의 특색 있는 로스터리 카페들의 커피들을 마셔봤다. 메쉬커피의 바리스타 크리스가 여름에 어울리는 에티오피아의 커피빈들로만 모아왔다. 농장에 따라서도 가공법에 따라서도 로스팅에 따라서도 맛이 다 다르다니! 내가 받아 드는 한 잔의 커피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들이 담길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커피라는 것은 카페인 충전하려고 먹는 건 줄만 알았지. 미세한 감각에 집중하는 색다른 경험. 그냥 마시는 게 아니라 즐기는 법, 그리고 커피 문화에도 관심이 생겨났던 시간.
이처럼 커피를 내리는 기술, 재료를 구하는 방법, 로스팅 등 전문적인 커피 지식과 노하우를 나누기도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건 ─ 메쉬의 단골손님들(a.k.a 성수동 친구들)과 함께 여는 MCC다. 음악, 초콜릿, 자전거, 여행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 든다. 커피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쩌면 가장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메쉬커피를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결국은 성수동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면 이런 거.
MCC 친구들
자전거 만들러 미국 다녀온 이야기
자전거를 배우기 위해 포틀랜드에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 전혀 몰랐던 사실이지만, 자전거 프레임 빌더라는 직업이 있다고 한다. 핸드메이드로 자전거를 만드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국내에는 세 명 정도밖에 없다고. 자전거에 대한 경험은 따릉이가 전부이지만 이야기를 듣는 내내 (반은 못 알아 들었음에도)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자신만의 업과 개념을 만들어가는 사람의 에너지 자체가 너무나도 긍정적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MCC 문화산책
피아노를 알아보자
메쉬커피의 단골이라는 그녀가 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언제였지. 대학 때 교양 수업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피아노 선율이 울리기 시작하자 마음이 요동쳤다. 베토벤의 비창과 드뷔시의 달빛을 들을 땐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피아노가 이렇게 아름다웠었구나, 생각했다. 그녀는 앞으로 메쉬커피 지하에서 피아노 레슨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 앞에 다가섰다. "저, 등록할래요."
피아노는 더 이상 치지 않게 됐지만, 내 방엔 여전히 피아노가 있다. 할머니가 사 주신 피아노라 버릴 수가 없었다. 그 피아노를 볼 때마다 다시 치고 싶었지만 단순히 기술만 연마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기 싫은 숙제처럼 떠밀려 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였다.
올여름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메쉬커피에서 대화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고, 함께 웃으며 피아노를 치는 일. 반짝반짝 보석 같은 순간들이었다. 메쉬커피에서 피아노를 치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선사한 가을학예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