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삶을 상상하다
스톡홀름을 회상하면
오렌지빛이 떠오른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도시 전체의 이미지라기보단
내가 머물렀던 공간의 상징에 가깝지만,
결국 그것이 나의 스톡홀름이다.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을 앤더슨 가족의 집에서 보냈다. 장기 여행 중이라 짐이 무거웠다. 공항에서 스톡홀름 시내까지 오는 길이 수월해서 안심을 했지만, 동네에 도착하자 역시나 - 유럽 특유의 울룩불룩한 돌길이 나를 반겼다. 캐리어와 사투를 벌이다 보니 이걸 그냥 발로 뻥 차 버릴까, 하는 마음이 절로 솟아오른다. '더 이상은 못 하겠다!' 싶을 때쯤 집에 도착했다. 페르는 문을 벌컥 열고 Welcome!을 외쳐 주었다.
직전에 여행했던 헬싱키에서는 호스텔에 있었는데, 무색무취의 공간에 있다가 넘어와 그런지 알록달록 개성만점인 이 방과 집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창문 너머로는 스톡홀름의 구시가지, 감라스탄의 풍경이 펼쳐졌다. 내가 이 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지어진지 200년은 족히 넘었다는 오래된 건물의 문은 여닫을 때마다 끼익거리는 소음을 냈고, 이전엔 분명 촛불로 밝혔을 어두운 복도에는 어스름한 조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묵묵한 색감의 타일이 깔린 복도를 걸을 때면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비밀스러워지곤 했다.
페르는 음식이 가득한 냉장고를 열어 보이며 '마음껏 먹어도 좋다'고 말했다. 식량이 이렇게나 많다니! 헬싱키에서는 제대로 먹지 못했다. 마트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 온 소세지는 아무리 구워도 물렁물렁했고 결국 가장 안전한 음식, 시리얼로 연명해야 했다.
그는 잠시 나갔다 돌아와 버터와 빵, 오렌지 주스까지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팠다. 이른 비행기를 타느라 아침도 못 먹었다. 바로 토스트를 해서 먹는데, 이걸 먹으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나보다 싶은 그런 맛. 게다가 홈메이드 라즈베리잼까지 내어주는, 여행자에게 너무나 황송한 식탁이다. 뭘 사야할지 몰라 마트를 방황하던 나는 안녕. 애써 골라온 음식에게 공격당한 과거도 안녕. 나에게는 현지인이 사다준 로컬 푸드가 있다! 이렇게 고마울데가. 이 곳이 천국처럼 느껴졌다.
호텔의 자본주의 서비스와는 다른 환대, 그리고 로컬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날 것의 문화, 그것이 에어비앤비를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도 내가 낸 돈에 포함된 서비스야'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는 인간적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에어비앤비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집에는 페르와 페닐라, 단테 그리고 노아 이렇게 네 명의 사람과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페르의 아들인 단테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중학생 정도 되는 나이의 녀석이 성큼성큼 걸어와 반갑다며 악수를 청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잠결에 피아노 소리를 들은 걸로 보아 단테는 피아노 연주가 취미인 모양이다.
막내아들 노아도 만났다. 10살 정도의 노아는 아직 영어를 잘 하지 못하고 단테에 비해 수줍음이 많다. 몸을 배배 꼬며 헬로우~ 하고는 도망친다. 그래도 자꾸 말을 붙이고는 싶은 모양인지 마주칠 때마다 헬로우~를 속삭이는데 너무너무 귀엽다.
단테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다. 요즘에는 음악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페닐라는 단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단테가 하고 싶은대로 선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가끔은 그런 방식이 맞는건지, 너무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고 했다. 요즘 북유럽에서는 아시안 스타일 교육을 다룬 책이 뜨고 있단다. 제목이 ‘호랑이 엄마’였던가.
어느 날은 아침부터 집안이 분주했다. 여름을 맞이해 단테가 친구들과 트레킹을 떠나는 문제로 부모들이 모여 상의를 하고 있었다. 부모나 인솔자 없이 십대 소년들끼리만 가는 여행이다. 이 곳에서는 으레 벌어지는 일이란다.
냉장고에는 단테와 노아 말고도 다른 아이들의 사진이 많이 붙어 있다. 이미 독립했다는 형과 누나는 노아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것 같다. 알고 보니 페르와 페닐라는 최근에 가족을 이뤘고, 각자 또 다른 가족이 있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모여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페닐라는 유쾌한 얼굴로 손가락으로 사진을 짚으며 ‘여기가 첫 번째 가족, 이쪽이 두 번째 가족이야’ 말하며 ‘우리는 전부 가족’이라 덧붙였다.
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내 경험은 단촐한 편이다. 이상할 것도 없고 감출만한 일도 아닌, 그런 일들을 이상하게 여기고 감추게 되는 문화권에서 자랐다. 페르의 집에서 나는 잠깐이나마 조금 다른 가족과 교육의 현장을 경험하며 나아가 다양한 삶의 모습들, 더불어 그 모든 것들이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상상해 보게 됐다.
책이 굉장히 많다 했더니 집주인 페르는 작가였다. 그의 책 중 한 권은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었다고. 그는 인도 문화에 심취해 일 년에 한 번은 꼭 인도에 간다고 했다. 그 책도 그의 인도인 친구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라 한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기쁜 얼굴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자기는 읽을 수 없지만 기념으로 가지고 있었던 한국출판본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책을 건네주고 그는 짧은 바캉스를 떠났다.
그리고 비가 오는 어느 날, 바캉스에서 돌아온 페르와 아침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가 쓴 책을 그 사이 다 읽었기 때문이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온갖 역경을 겪다 특유의 그림 재주로 이름을 알리고, 우연히 운명의 여인을 만나 그녀가 사는 스웨덴까지 자전거로만 여행한 독특한 인생의 소유자 '피케이'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은 <그녀에게 가는 길>. 제목만 봤을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 남다른 인물의 이야기에 푹 빠져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이 이야기가 가상이 아닌 실제 인물의 이야기라는 것이 놀랍다. 피케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도움을 받았다. 그를 방에 몰래 숨겨 재워주고 먹여준 인도인 친구, 그에게 살 곳을 마련해주고 여러 행정적 도움을 준 정치인, 스웨덴으로 가는 길에 만난 수많은 여행객들. 아마도 그건 피케이 특유의 순수한 에너지와 긍정적인 태도 덕분인 것 같다. 페르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그는 누구든 만나면 순수하게 호감을 갖고 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해 준다고 한다. 상대방 역시 그런 피케이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
페르는 그와 20년 지기 친구이고, 오랜 세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페르는 인도 문화에 관심이 많아 나에게도 차이 티를 타 주기도 했다.
내가 이 곳을 여행하던 시기는, 나의 일상에 도무지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다 기어이 회사를 휴직하고 만 시기였다. 무엇에 목이 말랐던지 3개월 동안 해외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살고 싶어서,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어서, 그 대안을 찾아 헤맸던 건 아닐까 싶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나에게 삶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부여해 주었던 고마운 페르의 집, 앤더슨 가족.
매일 아침을 먹으며 서로의 다른 문화, 이전의 여행, 어제 일어난 일, 또는 가족들에 대해서 나누는 대화들이 좋았다. 그들에게 익숙한 것은 나에게는 생소한 것들이었고, 나의 일상은 그들에게는 또 새로운 것들이라 늘 재미있었다. 의젓한 단테가 피아노를 치거나 요리하는 소리, 꼬마 노아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는 소리, 이른 아침 헝클어진 머리로 수줍게 인사하고 도망가던 모습, 토끼가 철창을 기어오르며 냄새를 맡던 것, 단테의 트래킹 여행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던 집안 분위기, 페르가 만드는 묘한 맛의 차와 음식들, 그런 사소한 일상들에 끼어들 수 있어 즐거웠다. 안아보고 싶었지만 힘찬 뒷발길질에 데여 다시는 용기내지 못했던 내 생애 첫 애완토끼도, 매일 편안하게 쉴 수 있었던 오렌지빛 방도 잊지 못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