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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Oct 30. 2019

삶에도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제 3의 예술경영 연구일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앞선 작업을 보며 자극과 영감을 받고, 그 안에서 맥락을 읽어내고, 나만의 것을 만드는 과정. 그렇기에 개인의 삶에서도 다양한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쫓아가야 하는 성공사례가 아니라 ‘이렇게도 살 수 있고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하는 감각 말이다. 그 레퍼런스가 다양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또는 가족이 '보통'이라 규정하는 삶의 모습을 닮아가게 된다.


내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삶의 모양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다양한 레퍼런스들을 보여주고 연결해주는 작업 또한 결국 예술경영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번 학기 ‘기업과 문화예술’ 수업은 그 자체로 새로운 예술경영의 실천이다. 다양한 예술경영자들의 삶(레퍼런스)을 엿보며 나는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 것인가, 또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예술경영을 실천할 것인가를 가늠해보는 기회다.


첫 번째 시간은 각종 ‘사이드 프로젝트’로 자신뿐 아닌 다른 이들의 삶에도 영감을 불어넣어 온 록담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그는 ‘예술’의 개념을 재정의해 볼 것을 권했다. 그리고 뒤이어 다양한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시대의 흐름과 예술 개념 변화의 징조들을 읽어내고 있다. 퍼스널브랜딩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북닷컴 박세인 대표가 ‘개인의 감각’을 일깨워 주었고, 경계를 넘나들며 인사이트를 수집하는 김영미 마케터는 BTS의 사례를 빌어 ‘새로운 시대의 단서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한국적 콘텐츠를 모던하게 풀어내는 전통문화 융복합 플랫폼 모던 한의 조인선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경험은 예술, 그리고 예술가에게 분명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 준다. 마음껏 상상해보는 것이다. 예술가의 삶과, 예술의 모양 또한.




직업인(기능인)으로서의 예술가와

창작자로서의 예술가


이 둘은 분명히 다르다. 어떤 면에서는 분명 만나지만. 어떤 면에서는 완전히 엇갈린다. 예술계에 진입하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조인선 대표는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녀는 국내에서 손 꼽히는 아쟁연주자였고,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단의 최연소 수석단원으로 활동했지만, 우울했다. 깊은 우울감이 마음에도, 몸에도 영향을 미쳤다. 


막연하게 생각한 때가 있었다. 무대에 서는 사람은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기에 자유로울 것이라고. 최근에 들어서야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과 '예술가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조인선 대표는 스스로 그 괴리감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매일 예술을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예술을 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아이러니. 


그녀는 현재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적인 콘텐츠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전통문화 융복합 플랫폼 '모던 한'을 경영하고 있다. 그녀가 세상에 '주체'로 서게 된 것도 그 때부터다. 사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스스로는 '창작'활동이라 생각한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이전에 없었던 개념을 제시하고, 사회적으로 가치를 제공하고, 누군가에게는 영감이 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 '예술계'라 일컬어지는 영역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서 예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술 밖의 예술 

삶을 바꾸는 예술


무대에서 서는 날이 많아질수록 관객들의 표정이 보였다고 한다. ‘흥미가 없구나’.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실태조사결과를 보고는 더 놀랐다. 공연장에 발걸음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전통예술공연은 100명 중 1명이 올까말까, 그 중에서도 공연을 보러 온 이유가 ‘무료티켓이 있어서’인 경우가 대다수였던 것.


지루한 표정의 관객들을 앞에 둔 위기의 전통예술이, 다른 공간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났을 때에는 폭발적인 열광과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조인선 대표는 너무나 좋은 콘텐츠들이 시대적 흐름에 맞는 방식으로 소개되지 못해 외면받고 있는 현실, 예술 장르간 협업이 원활하지 않아 시너지를 내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녀는 기존의 예술시장이 아닌 새로운 시장으로 영역을 옮겼고, 장르를 넘나들며 전통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실 내게 가장 영감이 되었던 건, 그녀가 주어진 무대에서 벗어나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며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다시 예술의 본질이 '장르'가 아닌 삶의 '태도'에 있음을 발견한다. 결국 이는 예술과 삶이, 예술과 사회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겠다. 




예술인들이 예술계를 ‘이탈’하는 이유


이 날의 수업에는 나 말고도 다른 청강생이 있었다. 혜진이였다.


혜진이는 내가 처음 학교에서 예술경영을 배우던 때 만난 친구다. 당당한 태도와 웃음이 매력적이었던 아이. 미술이론을 공부한다던 혜진이는 그 때에도 외국을 자주 오가며 큐레이터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뉴욕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몇 년만에 다시 만난 혜진이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었다. '굉장히 다른 일을 하게 되었네' 라고 하니 어깨를 들어올리며 '사실 본질은 비슷해'라는 말을 했다. 난 그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예술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던 예술인들은 왜 예술계를 이탈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가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예술을 사랑하던 마음이 사라져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술계를 벗어난 그들은 삶의 현장에서 어떤 아름다움에 이끌리고 있을까. 그것이 제 3의 예술경영에 대한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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