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 시절부터 정말 많은 친구들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 주곤 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정작 내 자기소개서보다 친구들의 자기소개서를 잘 쓰는 것이 함정이었지만. 나는 그들만의 매력을 잘 발견했고, 그것이 잘 드러나는 자기소개서를 구성할 줄 알았다. 자기소개서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친구들은 원하는 회사에, 원하는 대학원에, 척척 붙었다.
친구들이 박수를 치며 '너, 이런 거 직업으로 해 봐!' 했지만, 그 때마다 '무슨 소리야.' 했었는데 - 결국 개인 또는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스토리를 끌어내고 콘텐츠화하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 친구들의 말대로 된 것 같기도 하다. 어제 또 친구 하나가 대학원에 제출할 자기소개서를 봐 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친구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 주다가 아예 이걸 글로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록해 본다.
많은 친구들이 헷갈려 하는 포인트다. 자기소개를 하라고 해서 정말 순수하게 자기 소개를 하는 것이다. 마치 소설 속 인물을 묘사하듯 출생지, 가족 관계, 학교와 전공, 지식, 그런 배경들을 자기 중심적으로 주욱 펼쳐 놓는다.
자기소개서를 읽는 사람의 상황을 상상해 보자.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자기소개서를 읽고, 눈에 들어오는 인재들을 선별해야 하는 그들을. 자기소개서의 독자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는 방식으로 글을 읽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 내에 적합한 인물을 선발하기 위한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을 쓰는 방식 또한 달라야 한다. 이건 '나를 선발하라'고 설득하는, 명확한 목적이 있는 글이다. 그렇다면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나는 글을 읽을 때 단어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기보다는 의미 단위별로 읽는다. 요점을 먼저 파악한 후에 관심이 가면 세부 문장들을 다시 살펴보는 방식이다. 보통 한 문단은 같은 의미를 지닌 덩어리다. 어제 받아본 친구의 자기소개서에도 10줄 정도로 길게 서술한 영역이 있었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그게 모두 같은 말이었다.
글을 쓰기 전에 구성부터 기획하는 것이 좋다. 분량보다 중요한 것이 메세지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영역에서 보통 2~3개의 의미 단위(문단)로 구성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하나의 질문에 2~3가지로 포인트를 잡아 대답한다고 생각하고 구조를 먼저 짠 후에,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을 붙이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자기소개)
1. _______________
2. _______________
3. _______________
당신은 왜 이 곳에 지원했나요?
(지원동기)
1. _______________
2. _______________
3. _______________
당신은 이 곳에 들어오게 된다면, 어떤 것들을 이루고 싶나요?
(학업계획 및 연구계획, 성취목표, 비전 등)
1. _______________
2. _______________
3. _______________
면접관이 되어 본 경험이 있는가? 고작 열 명 정도만 지나가도, 처음에 만난 사람이 했던 말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경험상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건 특정한 키워드였다. 그 사람만의 고유성을 담은 '키워드'로 자신을 설명하는 사람은 꼭 기억에 남았다. 나의 성격이나 특징 등 '나다움'을 잘 드러내는 키워드를 소재로 활용하면 좋다. 친구가 붙여준 별명, 자신과 닮은 캐릭터나 사물, 익숙한 단어의 이색적인 조합 모두 소재가 될 수 있다. 디테일한 사연이 궁금해지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키워드면 더 좋다.
'저는 성실합니다.', '저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추구합니다.' 이런 표현은 진부하다. 꼭 내가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은 읽으면 흥미를 잃게 된다. 하지만 이를 설명하는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덧붙여진다면 달라진다. '오,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정말 그렇군!' 공감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덧붙여 주면 좋다.
대학 시절 내가 속해 있던 단체에 친구가 지원을 했다. 친구가 꼭 붙었으면 하는 마음에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다. 친구가 '나는 끈기가 있다'고 말했고, 면접을 보던 선배들이 그 이유를 묻자 잠시 고민하더니 '최근에 디지털 카메라를 사고 싶었다. 가장 완벽한 조건의 카메라를 사기 위해 시중의 모든 카메라를 일일이 비교 분석했고, 결국 마음에 드는 카메라 구매에 성공했다. 뭐든지 꽂히면 끝까지 매달린다. 그게 나의 끈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사례가 너무 예상 밖이라 어이가 없어 죄다 웃음을 터트렸지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에피소드다. 정말 '그 친구다운' 에피소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에피소드라도 좋다. 진정성 있고, 설득된다면.
경험했던 사건이나 이력만 나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건 나도 자주 저지르는 실수다. 연차가 쌓일수록 그렇게 되기가 쉬운 것 같다. 최근에 꼭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 사업이 있어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처음엔 망연자실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았더니 '당연히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나의 성과들(=나의 멋짐)만 나열했던 것이 패인이었음을 알았다. 얼마나 오만한 태도였는지 깨달았고, 부끄러웠다. 무엇을 '했다'는 단순한 사실을 적기보다는 그것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였는지,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느꼈고, 배웠고, 성장했는지. 그로 인해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나 지향하게 된 것이 있는지. 그런 '과정'의 이야기를 함께 적어주자.
어제 친구의 자기소개서에서 '지원동기' 파트를 보며 유독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건 '여기가 유명하고 좋은 학교라서'로 요약이 되는 것 같은데? 라고 말하니 친구가 '그게 사실인데...'라고 말했다. 사실 다들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좋은 학교, 좋은 회사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그 자체가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분명히 뭔가가 나온다. 사람마다 무언가에 끌리는 포인트는 다양하기 마련이니까. 그 자체로도 '자기다움'을 드러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깊게 생각해보면 좋을 문제다. 선택의 이유를 충분히 사유하지 않은 채로 선택하게 되면 그 후폭풍은 후에 더 크게 돌아온다. 그 학교의 커리큘럼을 살펴보고 '이건 진짜 배워보고 싶다'고 느꼈던 과목이라든지, 그 회사에서 최근에 출시한 서비스라든지, 내가 지원하는 그 조직만이 가진 매력을 알아채 주고 짚어주는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과 관계 맺고 싶은, 내가 다른 누구보다도 특별하기를 바라는 욕망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제 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에 기반해서 간략하게 써 보았다. 지금 이 순간 '나다운' 자기소개서를 쓰고 싶은 모두에게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