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어 떠난 여행, 그 후 무엇이 달라졌나.
2018년 초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책이 있다. 아마 내가 아닌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그 책의 제목은 <퇴사준비생의 도쿄>. 신기하게도 얼마 전, 트래블코드의 이동진 대표님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는데 '대표님 덕분에 퇴사했다'며 농담을 던졌을 만큼, 당시 나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안한 책이었다.
발견, 차별, 효율, 취향, 심미 - 다섯 가지 키워드로 도쿄를 해석하고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남다른 관점 또한 놀라웠지만 가장 영감을 받은 부분은 사실, 프롤로그였다. '퇴사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제시한 '퇴사준비생'이라는 개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실력이 아니라 독자적인 경제생활을 하기 위한 진짜 실력이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는 말.
그 영향이었을까. 퇴사 후 나는 그 전보다 훨씬 많은 곳을 여행했고, 이전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여행지를 바라봤던 것 같다. 그리고 다녀올 때마다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래서 써 봤다. 나에게 바꾼 도시들에 대해서.
첫 번째로 선택한 곳은 베이징이었다. 열 명도 넘는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가는 '비즈니스 학습여행'이었다. 중국도 처음, 자발적으로 선택한 단체 여행도 처음이었다. 중국이라니! 한자가 싫어서 제2 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던 나다. (하다 보니 일본어에도 한자가 등장한다는 것을 깨닫고 곧 흥미를 잃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 어떤 환상도 기대감도 없는 나라 - 그런 곳을 내가 좋아할 수 있을까. 실망하면 어떡하지. 혼자 여행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인데 단체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결정한 여행. 그러면서 왜 선택한 거냐 묻는다면, 예전의 나라면 생각해 보지도 못한 '완전히 낯선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비즈니스 관점으로 하는 여행이 궁금했고,
나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고,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중국이라는 나라를 다르게 바라보고 싶었다.
지금 와서 그때 찍은 사진을 찾아보니 이런 슈퍼 사진 같은 것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모바일 중심 사회로 변모한 중국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QR코드 하나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생생하게 접하며 상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베이징이 나에게 남긴 것은,
IT적 상상력만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로 인해 나의 세계가 어마어마하게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QR코드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듯, 살아가는 방식이 이토록 다양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퇴사한 후 1인 기업가로 활동하는 사람, 회사를 다니면서도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매진하는 사람, 세상에 없던 사업 모델을 만들어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 가업을 잇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자 고민하는 사람 …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또 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중국의 언어와 문화에도 관심이 생겨났다. 시끄럽고 강하다고만 느꼈던 중국어가 어느 순간 리드미컬한 음악처럼 들려왔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중국의 문화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다.
여담이지만 베이징을 배경으로 한 영화 <먼 훗날 우리后来的我们>를 추천하고 싶다. 베이징이라는 도시를 더 내밀하게 알고 싶어서 찾아보게 되었는데, 기대감 없이 틀었다가 폭풍 오열하며 봤다. 배우 주동우의 매력에 퐁당 빠졌다.
베이징에 다녀온 후 나는,
더 많은 낯선 세계들, 영감이 되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부지런해졌던 것 같다. 이렇듯 베이징은 변화의 시작이 된 도시이자 문화, 사람, 그리고 여행 방식까지 - 나의 모든 세계를 확장시켜 준 고마운 도시다.
재미있게도 베이징에서의 인연 덕에 상하이까지 가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베이징 여행을 만든 회사와 함께 상하이 편을 기획하고 런칭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상하이 곳곳을 보물찾기 하듯 헤매고 돌아다니며 반짝거리는 것들을 골라내고, 현장에서 보다 생동감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더랬다.
베이징과 달리 화려하고 복합적이면서 또 아기자기하고 귀엽기도 한 글로벌 도시.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주는 사람, 그리고 일하는 사람으로 만나게 된 상하이. 말로만 듣던 해외출장이라는 것을 해 보다니! 언젠가 해 보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해 볼 수 있어 즐겁고 신나는 마음이었지만,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비즈니스화하는 경험, 스타트업의 감각으로 일하는 경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밤낮으로 에너지를 쓰는 경험 -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갑작스러운 모드 전환이 나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아름다운 상하이의 풍경에는,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받았던 사랑만큼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에겐 그리 특별할 것 없었던 나의 이야기를 발견해 주고 가치를 부여해 준 사람들이 많았다.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속에 반복적으로 놓이면서 나 또한 스스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나는 이런 걸 잘하는구나', '나는 이런 게 중요하구나' 하는 감각들과 만났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를 단단하게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색깔,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지금의 나이기에 할 수 있는 무언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내가 움직이는 기준. 그런 걸 계속해서 찾는다는 건 사실 어렵고 귀찮은 숙제다. 하지만 누군가가 대신 정해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나를 움직이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상하이를 다녀온 후 나는,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무엇인지. 상황에 끌려가기보다는 내가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상하이는 나를 주체적인 드라이버(Driver)로 전환시켜 준 도시다. 삶을 드라이빙하는 운전면허증이 발급된다면 아마도 난 발급처에 상하이를 적어 넣어야 할 것이다.
제주도는 나에게 수학여행, 흑돼지, 감귤의 이미지로만 기억되는 섬이었다. 그런데 지난 11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개최한 J:CONNECT DAY 행사에 참가하며 제주를 다른 결로 바라보게 된 것을 시작으로 제주에 밥 먹듯 드나들게 된 사연이 있었으니,
바로 남의집 프로젝트와 어반플레이, 플레이스 캠프 제주의 콜라보 프로젝트 <제주, 살다> 덕분이다. 나는 남의집 프로젝트의 크루, 참새로서 이 작업에 함께 했다. (크루는 본업을 유지하면서 가볍고 느슨하게 결합하는 남의집 프로젝트의 독특한 협업 체계다.) 크루들의 아이디어가 리더들의 빠르고 유쾌한 의사결정으로 인해 빛을 보게 됐다. 진심으로 멋진 프로젝트였고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프로젝트 덕에 제주의 로컬들과 함께 제주를 깊게, 또는 느리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한 방식으로 여행한 제주는 확실히 달랐다. 평소 한 발짝 멀리에서 '멋지다' 생각하며 바라보던 사람들과 파트너가 되어 함께 일했던 경험 또한, 잊지 못할 것 같다. <제주, 살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 여기까지만.
'Seller'라는 주제로 낯선 사람 서른일곱 명이 모여 뜻밖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낯선 컨퍼런스의 스탭으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말로 뜻밖의 연결고리들을 잔뜩 만나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낯컨 이후에도 그 인연들은 이어지고 있다. 퇴사를 결심했을 무렵 큰 영감을 주었던 작가 혜윤 언니, 언제나 닮고 싶은 바이브를 지닌 겉바속촉 윤서 언니, 대화할 때마다 기록 욕구를 자극하는 단단한 친구 민재, 꾸준히 자기 철학을 쌓아나가고 있는 말랑말랑한 아티스트 비치, 그가 벌리는 프로젝트라면 무조건 끼어들고 싶은 에너제틱 시우 오빠 … 그리고 지금 '필로스토리'를 함께 만들게 된 든든한 파트너 자영 언니까지.
야단법석을 떨며 해외에서 좋다고 하는 것이 일본에 등장할 때 위화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해외에서 유행하는 것을 그대로 카피해서 일본에 소개하는 방법에 반대합니다. 지금 포틀랜드와 브루클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 지역의 특성에서 태어난 토착적인 것이며 단순히 모방만 한다면 그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그것이 어떤 문맥에서 등장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것을 힌트로 삼아서 자신의 손에 닿는 범위에서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만 할 수 있는 창작을 하는 것이 하나의 올바른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쿠마 유미코 <힙한 생활 혁명>
제주에서 발견한 이 책을 한참을 들여다봤었다. '손에 닿는 범위',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것' - 이 단어들이 마음을 울렸다. 멋진 일을 벌리는 것도 좋지만 - 과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일하는 것, 스스로가 긍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에너지를 조절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느끼던 때였다. 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엔 헷갈리더라도, 마음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면 원하는 답이 보인다. (53p)
많은 시간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느라 나는 생각만큼 무모하지도, 도전적이지도 않았다. 꽤 즉흥적인 면이 있어서 지금까지 여러 경험이 쌓인 것도 사실이지만, 스스로 설정해둔 안전지대 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고 있었다. 26살의 내가 느꼈던 초조함이 사실은 두려움이었다는 걸 몇 년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148p)
가장 나다워진다는 것은 유시민 작가가 말하듯 '자유 의지로 삶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이 원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하는 행동을 하는 것. 즉 자기 주도적으로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 스스로의 인생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나간다는 의미에서 모두가 자기 인생의 크리에이터다. 인생을 살아가는 건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생각, 내 결정에 달려 있다. 나의 미래를 '세세한 부분까지 컬러로 상상해보는 것'이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면 무엇인가. (283p)
정혜윤 <퇴사는 여행>
그리고 낯컨에서 만난 혜윤 언니의 책 <퇴사는 여행>. 이 책은 왠지 꼭 제주에서 읽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책방에서 아침부터 기다려 책을 받아왔다. 밤이 되어 책을 폈을 때, 정말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활자를 통해 그 너머의 언니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요즘의 내가 하는 고민들을 언니는 몇 년 앞서 하고 있었고, 그 때의 생각들을 단단하게 다져 책으로 펴낸 듯 했다. 책을 보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서 종국에는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찔끔거렸다. 내 마음을 알아 주는 것 같아서,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또 그 시간들을 보낸 언니가 너무 멋지고 사랑스러워서.
제주를 다녀온 후 나는,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 보게 됐다. 창조의 섬 제주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온 덕일까. 생각 그만 하고 이젠 움직이자며 ‘하고 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민재와 함께 프로젝트를 열기도 했고, 오랫동안 꿈꾸던 멤버들과 힘께 연극을 만들어 올렸고, 조금씩 글도 쓰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해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 그간 찍어온 점들이 스토리디렉팅그룹 ‘필로스토리’를 공동 창업하는 일로 이어졌다. 사업이라는 건 적성에 맞지도 않고 내 팔자에는 없을 일이라 믿어왔는데 이를 결정하게 된 건, 이 일이 '내 손에 닿는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어떻게 생산적이기만 할 쏘냐. 치앙마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을 외치며 떠난 곳이다. 그리고 정말 별 것 하지 않는 일주일을 보내고 오기도 했다. 노란 고양이와 낮잠을 자고, 이른 아침 수영장에서 책을 읽고, 이국의 물건들을 모으고, 여름의 햇살 아래에서 차가운 커피를 마시던 순간들.
그리고 다음 주 도쿄에 간다. Brand Thinking Platform B my B에서 기획한, <공간은 경험이다>의 저자 이승윤 교수의 시선을 따라 걷는 브랜드 인사이트 트립이다. 브랜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험은 또 어떨지. 이 여행은 또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퇴사하기 전, '나는 대체 무엇을 좋아하는 걸까?' 고민했다. 막연하게 여기, 지금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으나 대체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알 수 없는 무기력함에 젖어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이직을 할까, 채용공고를 뒤적이기도 했지만 일하고 싶은 곳이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매일 생각만 했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퇴사했다.
그러면서 결심했던 것이 있다면 '배우는 일에는 아끼지 말고 투자하자'는 것이었다. 돈이든, 시간이든. 나에게 새로운 전환을 선사할 거라는 느낌이 들면 무조건 뛰어들자고. 조금 무식할지 몰라도 나는 그런 방법을 선택했다.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을, 나의 일상에 (어쩌면 강제로) 등장시키기로 한 것이다. 머리로 말고 몸으로 대처하게 하는 방식이랄까.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나의 답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지난 여행들은 언제나 다음 선택으로 이어지는 실마리가 되어 주었고, 변화의 흔적들을 남겼다.
물론 그 과정들이 늘 유쾌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통스러운 순간들도 많았다. (특히 나의 부족한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은 정말 괴롭다.) 이렇게 9개월 간의 이야기를 모아서 쓰니 마치 완성형인것 같지만, 나의 여행과 방황은 언제나 진행 중이다. 완벽한 사람일 수 없기에, 계속해서 변화하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