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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14. 2017

프롤로그

당연하지만 어려운 고민

‘Life is Strange’라는 게임이 있다. 주인공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매번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시간을 돌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선택도 완벽하지 않다. 결과를 모두 확인하고 나면 더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현실에서 매일 선택을 하고 이 결과는 미래의 어떤 지점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게 최선임을 알 뿐 최고의 결과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시간을 아무리 되돌려도 동시에 여러 선택을 할 수는 없고 결국 우리는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의 어떤 시점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때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게 과연 현재의 시점에서 최선일까?  반대로 과거의 실패가 현재의 나에게 나쁜 영향을 주기만 했을까?


2015년 3월 


여유롭지만 피곤한 주말에 노트북을 열고 커피를 들이마시며 글을 쓴다. 누구나 겪는다는 직장인 3년 차 슬럼프를 무난하게 넘어가며 나는 내 앞의 목표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꿈꾸고 나에게 더 맞는 직업을 찾아 나서지만 대부분 좌절하는 이유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첫회사에서 힘겨워하다 그만둔 후 더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또다시 그 우울의 바다를 건너고 싶지 않았다. 


섬을 탈출하려면 다른 섬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넉넉한 식량과 튼튼한 배로 목적 없는 항해를 할 각오가 되어있던지.


그나마 난 운이 좋은 편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를 통과하며 선망의 직장이었던 금융업계가 신입사원을 적게 뽑기 시작했지만 전반적으로 요즘처럼 심각한 취업난은 아니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반으로 나뉘어 한쪽은 고시공부를 선언하고 자취를 감추었고 한쪽은 스펙을 쌓고 인턴 자리를 구하기 위해 열심이었다.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다. 고시공부는 할 자신이 없었고 각종 자격증 시험과 영어공부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저널리즘 수업이 재미있었지만 그렇다고 기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술을 잘 못 마시는데 수업 뒤풀이를 갔다가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당시엔 그렇게 많이 지원하지 않았던 게임분야의 대기업에 지원했고 다행히 바로 붙었다. 


신입사원 연수에 막 들어갔을 때 내 통장 잔고에는 3만 원이 찍혀 있었다. 대학생 시절 내내 과외를 했고 장학금도 받았지만 여유롭지는 않았다. 연수를 시작할 땐 당분간 밥값이 들지 않겠다는 생각에 안심했다. 40km 행군을 할 때는 이걸 다시 하기 싫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복지카드와 각종 의료혜택, 항상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회사 식당을 보며 열심히 일해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1년 6개월 후 나는 사표를 제출했다. 



그때 회사를 그만둔 게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난 오히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입사를 했던 시점을 돌려보고 싶다. 경제상황, 졸업 후 명확하지 않은 내 소속, 집안의 기대, 나의 불안감 등 주변 상황을 생각하면 내가 취업을 한 상황은 매우 합리적이다. 그래서 매주 링거를 맞고 몸 여기저기에 염증이 생기고 음식을 제대로 소화시킬 수 없게 나를 망친 회사를 미워했다. 


그러나 내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무작정 회사에 기대서 완벽한 상사, 적당한 업무, 개인의 성장을 꿈꾸었던 내가 회사생활을 힘들어했던 건 당연하다. 회사에서 개인을 혹사시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내가 회사에 너무 큰 기대를 한 것 역시 문제가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3개월 만에 몸을 회복했지만 마음은 더 우울했다. 다시 여기저기 신입 공채 공고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소속 없음의 상태를 견디기 어려웠고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어 깊은 어둠에 혼자 웅크리고 있었다. 그 시점에 방송사 공채에 합격했고 나는 다시 웃었다. 남들 눈에는 내가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간 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입사와 동시에 시작된 파업, 혼자 동떨어진 듯한 외로움, 깊은 선후배 관계에서 느끼는 부담감으로 또다시 나는 지워지고 하루하루 힘겨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별나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되었다는 쪽에 가까웠다. 야근도 훨씬 줄었고 예전처럼 몸이 안 좋지 않았다. 오히려 길어진 점심시간과 넉넉한 간식 덕분에 살이 쪘다. 배는 부르지만 머리는 멍했고 가슴은 허전했다. 빈번한 업무상 실수를 윗선에서는 넉넉히 눈감아 주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다를 텐데 업무는 오직 연공서열만을 반영하여 일렬로 줄 세운 후 배정되었다. 부서 이동은 꿈에서나 가능했고 일상을 흐린 날씨처럼 꾸물꾸물하게 살았다.  


분명히 얻은 것은 있었다. 월급이 적지 않아 돈을 모을 수 있었고 틈틈이 결혼 준비를 했다. 부모님은 내가 다시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안심하셨다. 나에게 노후를 기댈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하루 꾸역꾸역 넘기는 알약처럼 살아가는 건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단 내 삶에 대한 고민을 저만치 미뤄두었다. 정시퇴근을 할 수 있으면 취미생활과 각종 모임으로 가득가득 밤 시간을 채웠다. 카페인의 효과를 넘어서는 피곤에 못 이겨 잠이 들면 그나마 괜찮게 느껴졌다. 


전세 대출을 일단 모두 갚자. 그리고 그 돈으로 뭐할지 고민하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 날이 다가왔다.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2016년 3월 


1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심리상담을 통해 부모와 분리되었고 결혼생활의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회사에서 내 목소리 내기"를 조금씩 실행했다. 부서를 옮겨서 흥미로운 일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찾고 방안을 고민하고 결과를 받아들였다. 옆에서 볼 때는 그저 널리고 널린 상품을 만들고 판매를 하고 결과보고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회계팀에서 몇 십억짜리 수표를 만졌을 때 아무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던 때와 전혀 달랐다. 앞에 닥친 과제를 해결하고 내가 벌인 일을 수습하느라 정신없이 6개월을 보내고 나자 다시 허무함이 밀려왔다. 


대기업에서 브랜딩을 이야기할 때 실무 직원 한 명이 컨트롤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대기업은 브랜드에 대한 오너의 의지가 분명하고 방향성이 확실할 때 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여 실행시키는 구조였다. 내가 아무리 혼자 ‘왜’를 묻는다고 해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보다 많은 시청자에게 프로그램에서 주는 즐거운 경험을 이어주고 싶다는 작은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내 위의 관리자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팀을 운영했다. 숫자로 보이는 매출 목표와 달성률, 임원들의 개인적 선호가 훨씬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나는 계속 절망했다. 


회의에 들어갈 때마다 한숨이 길어지고 아침 출근길이 두려워 밤잠을 설치기 시작할 때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진짜 해보고 싶은 건 언제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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