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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15. 2017

완벽한 선택이 불가능하다면

이기적인 선택을 해보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세요!” 


성공한 연사가 무대 위에서 청중을 바라보며 외치는 이 말에 요즘 감동받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싶은 일, 여행, 취미활동만 하며 살고 싶다는 희망은 아무런 역경 없이 달콤한 열매만 따먹겠다는 욕심이다. 


우리가 여행의 기억을 즐겁게 간직할 수 있는 이유는 고생한 만큼 즐겁고 짧은 순간이 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면 변화 없는 일상은 지루하지 않은 대신 빠르게 흘러간다. 크게 얻는 것도 없지만 크게 잃는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추구하기로 결심한 순간 고난이 시작된다. 


하루하루 우울에 젖어 사는 이유는 회사가 잘못 돌아가고 있고 동료가 나쁘기 때문만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나처럼 매일 힘겹게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 텐데 내 주변을 바라보면 그렇지 않았다. 


문제는 나의 성향과 지금 있는 곳이 맞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바로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심리상담을 받고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선택을 하고 결과를 책임지기 위해선 내면의 힘을 키워야 했다. 


요즘엔 심리상담이 예전보다 보편화되었고 문턱도 낮아졌다. 스스로를 발견하게 해 주고 타인의 성장을 도와주는 일에 매력을 느낀 친구들이 상담사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나는 처음에 남편과 함께 서로의 성향을 알고 싶고 애니어그램, MBTI, 그림검사 등을 해보고 싶어서 친구에게 상담 선생님을 추천받았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 진짜 모습과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충돌하여 잘못된 결과가 나왔고 그림검사를 통해 가족에게 느꼈던 중압감과 정신적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지금 돌이켜봤을 때 이후의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부모님이 나에게 바라는 성향이 아니라 나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일반적인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바라는 건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 부모님도 공부를 잘하고 (암기와 노트필기를 잘하고) 정해진 규칙을 잘 따르고 부모님이 추천하는 길을 묵묵히 잘 따라가는 착실한 아이로 크길 바랐다. 하지만 내면의 나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그중에 한 두 가지에 재미를 느끼지만 싫증도 금방 내고 정리정돈을 제일 못하고 즉흥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나는 상담 기간 동안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 마구 짜증도 내고 어리광도 부리고 방도 어지르면서 빠르게 그 기간을 다시 보냈다. 어렸을 때 못해봤던 놀이를 하고, 부모에게 받을 수 없었던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으며 다시 시간을 되돌려 빨리 감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자, 과거의 상처도 많이 아물었고 나 자신도 찾아가고 있는데 이제 뭘 하고 싶니?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답은 ‘유학 가고 싶어요.’였다. 너무 뻔하다고? 그럴 수도 있다. 요즘 더욱 교환학생, 워킹홀리데이, 어학연수 등 외국에 나가서 살아볼 기회는 흔하게 널려있다. 4년 꽉 채워 학교를 다니고 바로 취업해서 회사생활을 견디는 동안 나도 남들처럼 틈나는 대로 여행 다니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었지만 항상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조곤조곤 내가 왜 유학을 가고 싶은지 적어내려 갔다. 



1. 공부하고 싶다.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 미디어학을 공부했지만 내가 선택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누구나 그렇듯 고3 때는 점수대별로 쭉 늘어선 학교와 전공을 선택했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나름 좋은 학교와 좋은 학과에 붙어서 좋아했을 때도 내가 과연 무엇을 공부할지, 어떤 진로를 꿈꾸고 있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을 다닐 때는 한 강의실에 300명, 400명씩 차 있는 대형강의에 질려서 비교적 소규모 강의와 토론이 활성화되어 있던 미디어학 전공 수업을 더 치중해서 들었다. 현대철학, 언어학, 미학 교양 수업이 훨씬 재미있었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더 공부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2학년부터 시작된 취업 압박과 갑자기 밀려들어온 질문들, ‘뭐 먹고살래?’를 답하려면 한가하게 철학책을 보고 있기보다는 최신 정보를 습득하러 여기저기 세미나를 뛰어다녀야 했다. 


그리고 지금 후회한다. 그때 뿌듯하게 여겨졌던 최신 정보는 그렇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고 고만고만한 학생들과 밤새 나눈 고민은 빙빙 맴돌았다. 가장 크게 느껴졌던 학교와 전공은 입사와 동시에 물거품이 되었다.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수업을 맘껏 들었다면, 종이 한 장에 표현할 수 없는 나를 다양하게 고민해 보았더라면 첫 회사생활에서 느꼈던 좌절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2. 해보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


대학생 시절에는 열심히 과외해서 학비와 용돈을 벌어 쓰기 바쁜 와중에 교환학생을 꿈꾸기 어려웠다. 토플 시험까지 다 보고 마지막에 지원서류를 넣지 않았다. 빨리 돈을 벌어서 공부하러 가야지라는 마음을 품고 살기엔 회사 생활이 여유롭지 않았고 통장에 돈도 빨리 쌓이지 않았다. 어느 시점이 되면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겠지만 난 불행할 것 같았다. 


방송사에서 상품 기획 업무를 하다 보니 내가 담긴 디자인을 직접 하고 싶었다. 한국에는 이미 디자이너가 너무 많고 디자인 툴을 가르쳐주는 곳은 넘쳐나고 있다. 그동안 일했던 마케팅과 디자인을 어찌어찌 엮어볼 수는 있겠지만 다른 환경에서 공부해보고 싶었다. 내가 낯선 환경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것을 흡수하고 또는 부담스러워할지 궁금했다. 


3. 난 돈 버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가 돈을 열심히 버는 건 나중에 모두 쓰기 위해서인데 그러기엔 너무 열심히 번다. 나는 큰 집도 필요 없고 딱히 사고 싶은 것도 많지 않다. 오히려 집이 좁고 물건이 적으면 느껴지는 아늑함을 더 바란다. 그런 나도 돈을 벌지 않는 상태를 매우 불안해했다. 전세자금 대출을 모두 갚고 다행히 전세금을 올리지 않은 주인 덕에 돈을 조금씩 더 모을 수 있었다. 돈을 벌지 못하는 불안감을 치워두고 냉정하게 유학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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