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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19. 2017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적어도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은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현실적인 조건을 따지는 건 정신건강에 좋다. 


Step 1. 저울을 그려본다. 



10년 후를 상상해보자. 지금 있는 곳에 계속 남아있을 때 예상되는 나의 모습과 새로운 도전을 하고 평균 또는 그 이하의 성과를 낸 상태를 비교한다. 만약 대학교를 막 졸업했거나 사회경험이 거의 없는 경우라면 앞으로 어떤 회사에 들어가서 어떤 상사(!)를 만나게 될지 눈 앞이 캄캄하겠지만 직장인은 그렇지 않다. 


내일 내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롤러코스터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다면 편하게 부장 혹은 팀장의 상황을 곁눈질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앞으로도 내가 부장의 자리에 자연스럽게 올라 여유로운 점심시간, 적당한 급여, 친절한 동료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저울의 오른쪽이 상당히 무거워진다. 10년 사이에 승진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이직의 가능성과 관련 업계의 상황에 나를 대입해보면 된다. 


저울의 왼쪽에는 이 자리를 떠나 내가 얻게 되는 경험과 지식, 인간관계를 대략 그려보고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은 채 빈털터리로 원래 있던 이 자리로 돌아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해서 내가 얻는 것만큼 무게를 올린다. 


물론 책상 앞에 앉아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괴로워질 뿐 상상이 불가능하다는 비판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이 상상의 저울이 시소처럼 매일 왔다 갔다 했다. 막상 그만두려고 보니 내가 누리던 것이 더 눈에 들어왔다. 넉넉하진 않지만 쏠쏠하게 썼던 복지카드, 휴대폰 보조금, 건강검진비같이 뚜렷한 회사 복지뿐 아니라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건강보험, 부모님 용돈, 공짜 점심, 무료 어학교육 등이 꽤 무겁게 느껴졌다. 


저울을 그려보는 과정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마법과 같다. 


회사에는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상황만 좋아지면 바로 여길 뜰 거야.”라는 말을 밥먹듯이 되풀이하는 사람이 있다. 왜 그들은 아직도 떠나지 않은 채 그렇게 떠들고 있을까? 그들의 저울은 오른쪽이 훨씬 무겁다. 하지만 인식하지 못하거나 가만히 있어도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희망에 휩싸여있다. 우리의 저울은 비록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기로 결정할지라도 내가 누리는 것에 조금 더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STEP 2. 돈! 돈을 생각한다.


식량 없이 떠난 배는 구조를 기다릴 뿐 스스로 항해를 할 수 없다. 


나는 유학을 선택했지만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쉬는 시간(gap year)을 준다. 이는 막연한 해외생활보다 익숙한 곳에서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가장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어떤 방법을 고민하든 간에 돈에 대해 먼저 정해야 할 것은 '한 달 예산’이다. 즉 내가 현재 돈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 또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파악하는 과정이다. 내 경험으로 보면 적어도 6개월치는 추적해야 했다. 길면 길수록 좋았던 것 같다. 월 별로 주로 있는 행사가 다르고 기분에 휩쓸려 소비 왕국의 주인공이 되는 때도 있기 때문에 1년 단위로 보는 게 좋다. 


가계부를 일상적으로 쓰는 내 남편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충격받는다. 커피 몇 잔 마시고 스트레스받아서 술자리 몇 번 갔을 뿐인데 돈을 너무 많이 썼다. 나도 생각보다 지출이 컸다는 점을 알고 꽤 놀랐지만 어느 정도는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써야 하는 비용이 있음을 수긍했다. 회사를 그만둔 지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돈을 쓰는 패턴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의 경우는 업무상 의무감 때문에 일에 관련된 상품이 있으면 꽤 많은 돈을 썼다.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허리가 아파 강도 높은 운동학원을 다녔다. 작년과 같은 옷을 계속 입고 다니면 누군가 알아봤기 때문에 옷도 꾸준히 샀다. 아침은 거의 못 먹었지만 꼬르륵 소리가 너무 우렁찼기 때문에 커피전문점에서 자주 사 먹었다. 퇴근할 때는 요리할 힘이 없어 반조리 식품 중에 괜찮아 보이는 음식을 많이 사 먹었다. 


숫자는 몇 자리로 간단하게 찍히지만 그 뒤엔 나의 일상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수액을 맞고 허겁지겁 김밥을 사들고 뛰었던 날도 있고 취업이 안돼서 우울한 친구에게 기분전환시켜주고자 비싼 호텔비를 선뜻 결제한 날도 있다. 이런 일상의 도드라진 부분을 없애고 간단하게 백수로 살 내 한 달을 계산했다. 


그리고 저축, 전셋값 등 현금화할 수 있는 총자산을 합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경험을 위해 충분히 쓸 수 있는 만큼인지 고민했다. 그다음, 내가 당장 다음 달에 회사를 그만두고 가난한 백수생활을 시작해도 된다는 사실에 확신을 얻었다. 


Emily Carr의 학비 예시 (1년에 한화 천6백만원 정도)




STEP 3. 대충 계획을 정한다. 


난 ‘대충’에 밑줄을 쫙쫙 긋고 싶다. 나는 대충하지 못해서 꽤 많은 날들을 우울하게 보내느라 낭비했다. 


한 달 후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데 몇 년 후 내가 망할지 잘 살지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보다 당장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에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에 신나게 노는 게 낫다. 


유학 가고 싶은 목적이 있다면 나라, 도시, 학교, 전공 등을 정해야 한다. 나는 조건에 맞지 않는 항목을 지우면서 좁혀갔다. 남편이라는 존재는 정신적으로 큰 의지가 되지만 어쨌든 현실적으로는 큰 변수였다. '내가 공부하는 동안 이 사람은 뭘 하지?'를 나 혼자 고민했다. 긴 고민 끝에 당사자에게 슬쩍 물어보았고 5초 만에 답을 얻어서 허무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캐나다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이 한 문장을 쓰기 위해 10개월 이상이 걸렸다.)


30년 동안 살았던 한국의 서울은 우리 부모님이 결정해주었지만 앞으로 스스로 살 곳을 정한다는 사실이 꽤 나를 흥분시켰다. 세계지도를 펼쳐두고 비자, 경제상황, 언어 등을 고려해 나라를 정했고 캐나다로 좁혀지자 도시를 정해야 했다. 


재미있게도 난 여기서 내 로망을 하나 실현하기로 했다. 이왕 추운 나라라면 눈에 파묻히더라도 바다 옆에 살고 싶다. 지겨울 정도로 바다를 자주 보고 내 숨결에 바다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우리 남편은 나를 참 한심하게 바라보았지만 어쨌든 수락했다. 


노바스코샤주를 선택하고 낯선 이 곳을 검색해보니 온통 유학원 광고뿐이어서 얼른 창을 닫았다. 영어로 그 지역의 학교를 검색하고 등록금을 찾아보았고 내 예산 내에서 꽤 합리적인 금액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대충 정한 결정을 믿고 난 당장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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