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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19. 2017

포트폴리오를 혼자 준비한 이유

어차피 난 주류로 살긴 글러먹었어. 

내가 어느 정도 기분파이긴 하지만 홧김에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일은 점점 많아지는데 의미는 없고 육체적으로 지쳐갔다. 만약 비용을 계산하는 단계에서 모아둔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면 아마 몇 개월이라도 더 다니는 쪽을 선택했을 거다. 아니면 이 계획을 모두 무산시키고 다른 탈출 안을 고민하기 시작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매일 쌀밥에 간장만 뿌려먹고 불확실성이 주는 공포감에 잠을 못 자더라도 빨리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포트폴리오’ 준비에 몰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전공자가 미술유학을 꿈꿀 때 가장 겁을 먹는 순간은 이 포트폴리오라는 정체모를 괴물을 만날 때다. 학교 성적, 영어점수, 자기소개서 같이 일반적인 증빙자료도 준비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포트폴리오는 단지 내 그림 몇 점 올리는 걸로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학미술학원의 문을 두드리고 입시생들처럼 하루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낸다. 거기다 나 같이 잘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결혼까지 한 특이한 종자는 고등학생의 파릇함에 풀이 죽는다. 


나도 처음에 포트폴리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몇 군데 유학미술학원에 찾아갔다. 내가 일단 ‘캐나다’를 말하는 순간 담당자의 환한 미소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띠고 딱딱하게 변했다. 캐나다는 배우자 중 한 명이 학생비자를 받으면 다른 한 사람은 워킹비자를 받을 수 있다. 이 당연한 사실도 제대로 모르는 유학 수속 담당자는 결혼한 여자가 학부로 미술유학을 가는 경우는 없다며 배우자와 함께 가고 싶다면 선금을 받은 이후에 자세히 알아보겠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기도 했다. 


또 어떤 상담자는 나를 조용히 다그쳤다. 캐나다는 3차 산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은 나라다. 학교 졸업해도 어차피 일할 회사도 없다. 한국에 돌아와도 인정 안 해준다. 정도가 주요 요지였다. 그리고 넌지시 권유를 한다. 우리가 아는 미국 대학이나 영국 대학에 지원하면 장학금을 100프로까지 받을 수 있다. 그중에서 골라가면 얼마나 좋은가. 졸업하고 한국에 와도 인정받을 수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학생들의 합격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는데 얼핏 봤을 땐 굉장히 창의적이고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무엇인가 질서와 규칙이 보인다. 창의적인데 규칙이 있다고? 조금 이상했다. 학생 개개인의 개성이 살았다기보단 각 학원의 개성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원 담당자는 어떤 학생의 잠재력도 발견해줄 수 있으며 1년 정도 여기서 그림을 그리면 원하는 대학에 모두 붙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했다. 


자칫하면 내 글이 누군가를 비난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나는 특정한 학원이나 개인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없다. 나는 유학을 가고 싶은 학생이 파슨스 같은 한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학교에 지원하려고 할 때 이미 경험이 많은 학원의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모르는 지역의 아무도 모르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강사의 실력도 좋을 것이고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유명한 미대에 가야만 할까? 한국에서 SKY같이 대학의 순위를 매기고 전공의 우열을 가리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을까? 



내가 글을 쓸 때 스스로 계획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이유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 때문에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남의 이야기가 무조건 맞다고 생각할 수 있는 위험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캐나다가 미국보다 미술 관련 일자리가 적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이 많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경험과 그 사회에 적응해보고 싶은 기회이기 때문에 어떤 학교가 훨씬 유명하기 때문에 가겠다는 자세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나와 비슷한 갈등을 겪었던 사람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내가 혼자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는지 과정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해볼 만한 지점들에 대해 풀어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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