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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19. 2017

'잘' 그린 그림은 뭘까?

판단의 기준은 스스로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질문했다. 


“선생님, 예 와 아니오 둘 중에서 선택하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요?”


알고리즘과 순서도를 배웠던 시간이었는데 세모와 네모 박스를 잇는 화살표의 선택 기준이 ‘예’와 ‘아니오’밖에 없는 게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내가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혼이 났는지 아니면 선생님이 신통치 않은 답을 해주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 질문이 아직까지 내 머리 속에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거 없는 추측과 두려움

꼭 단편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예’와 ‘아니오’밖에 없는 교육에 익숙해져 있다. (‘글쎄요', '둘 다 아닌 거 같아요.’, ‘뭐가 맞고 틀린 거죠?’라는 답이 더 매력적이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주어진 질문에 만족하고 정해진 기준을 따라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나도 회사에서 나름 자유도가 높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업무도 사실 세세한 진행사항도 상사에게 보고하며 암묵적인 규칙에 따라 일을 진행해야 했고 결국 누가 하더라도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이런 방식의 장점은 결과에 대해 내가 모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쳤고 교육제도가 그 정도이고 상사가 나에게 시켰고 회사문화가 이렇다.라고 피해갈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그게 맞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수준에 머물러있을지 아니면 내 몫으로 전부 안고 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인생의 대단한 순간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포트폴리오라는 과제를 준비할 때도 이 점은 중요하다. 나는 시작을 하자마자 몇 가지 혼란을 겪었는데 대표적으로는 ‘기준’에 대한 모호함이었다. 


얼마나 많이 만들어야 할까?

얼마나 완벽하게 해야 할까?

어디까지 해봐야 충분하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


어린아이가 점토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어른이 지켜보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아이는 동그란 알사탕을 만들고 싶은데 잘 안된다. 어른이 답답해서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길쭉한 막대 형태를 만들고 동그란 구형태의 반죽을 붙여서 아이에게 쥐어주었다. 그 작품은 아이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이가 생각하는 알사탕은 옆면이 조금 깨진 자연스러운 모양일 수도 있고 먹다가 뱉었을 때 작아진 구슬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어른이 만든 평범한 알사탕을 보고 잘 만들었다고 칭찬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전부다. 


5년 전 어느 까페에서
내 작품의 기준은 내가 만들면 된다. 


좀 더 현실적인 기준을 만들자면 어떤 과제의 완벽함이나 최선의 유무는 마감기한에 달린 경우가 많다. 마인드맵을 상상했을 때도 시간이 무한정 주어진다면 공을 들여 더 넓고 다양한 생각의 뿌리를 뻗어내릴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은 한정적이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제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포트폴리오의 수준과 양은 내가 준비에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내가 지원하려고 했던 학교의 제출 마감기한은 1월 말에서 2월 말 정도였고 나는 6개월의 여유시간을 생각했다. 시간과 작품 양은 비례하진 않는다. 열심히 하는 것과 충분히 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몇 개 더 그렸나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나는 실제로 그림을 그려나가기 전에 내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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