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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20. 2017

시작은 주제 찾기부터

관심 있는 주제를 찾으세요. 

요즘 인생 커피, 인생 책, 인생 바지 등 인생템으로 넘쳐나는 태그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수많은 상품에 둘러싸여 그중 가장 맘에 드는 것에 ‘인생’이라는 붙이는 이 유행이 진짜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냥 유행어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줄이긴 어렵다. 특히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삶을 ‘인생 주제’에 바쳤던 사례를 몇 개 읽어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렸던 <유영국, 절대와 자유>은 ‘산’이라는 주제를 한 작가가 일생동안 어떻게 풀어냈는지 차근차근 보여주었다. 폴 세잔도 프랑스 남부의 산을 많이 그렸고 그 후에도 수많은 작가들이 고향의 자연을 담으며 산을 그렸지만 유영국 작가의 ‘산’은 깊고 오랜 탐구와 실험으로 아름다운 연작을 탄생시켰다. 

유영국 ‘작품(work)’ 1999년

나는 ‘인생 주제’가 고귀한 운명을 타고난 예술가만이 가지고 있다거나 이미 성공한 사람들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관심사를 가지고 있고 앞에 닥친 현실적인 어려움을 넘어서는 인생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한다. 


예술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한 언어일 뿐이고 개인은 다양한 언어 중에 자신에게 맞는 걸 선택할 수 있다. 


명목상으로는 학교 입학을 위한 포트폴리오지만 이 준비 과정은 내 주제를 찾고 질문하고 답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거운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중간에 주제가 바뀔 가능성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나도 누가 봐도 괜찮은 주제를 선택하기 위해 찾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무모한 시도는 ‘파랑새 찾기’와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흥미롭고 그리고 싶은 주제를 많이 스케치해보는 게 좋다. 나는 마인드맵 그리기를 좋아해서 어떤 날은 ‘춤’이라는 주제로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마인드맵만 그리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 자유롭게 지나가는 사람을 그려보며 시간을 보내거나 하루 종일 찰흙만 만져도 된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재미있어야 하고 생각의 뿌리가 여기저기 닿아 뻔하지 않은 나만의 주제로 키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하다 보면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나 더 이상 재미있는 게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또 다른 주제를 만들면 된다. 


'춤'에서 시작된 스케치

그렇다고 주제를 버리거나 기존에 그렸던 게 무용지물이 되는 건 아니다. 생각의 흐름은 이어지기 마련이고 어떤 지점에서 도움이 되기도 한다. 또 이런 스케치는 나중에 ‘스케치북’으로 엮을 수 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적어도 다섯 점 이상 그림을 그려보는 게 좋다. 


만약 무엇부터 그려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면 3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자화상 그리기


거울을 앞에 두고 보면서 그려본다. 재료는 무엇이든 상관없는데 여러 장을 그려보면서 다양한 재료를 써보는 게 좋다. 비례에 맞게 그리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고 자유롭게 표현해볼 수도 있다. 자화상을 그리면 망쳐도 되고 오래 걸려도 되고 못생기게 그려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다른 사람을 그려서 보여주면 대부분은 본인을 실제보다 못생기게 그렸다고 실망한 적이 많았다.) 형태를 그리면서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 들여다본다. 표정을 바꿔보면서 생각나는 사물이나 상황을 상상해본다. 예를 들어 주말에 백화점을 갔을 때 느꼈던 답답함을 떠올려보고 그때 감정을 얼굴과 손으로 표현해 본다. 나는 입김을 불어 사람들을 다 날려버리면 어떨까 상상했다. 


정물화 그리기


재미있는 물건을 평소에 모은다.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쉽게 상하지 않는 채소나 과일도 좋다. 소파에 천을 두르고 맘에 들게 배치한다. 여러 구도로 그려 본다.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한 가지를 크게 그리거나 사람이 갑자기 등장하면 어떨까 생각하는 것도 좋다. 수채화나 색연필, 아크릴, 파스텔처럼 색감을 표현할 수 있는 재료를 추천한다.  


드로잉 책 참고하기 


‘성냥갑, 뒤통수, 로봇, 울퉁불퉁한 손, 음식, 자는 사람, 숨겨진 이미지, 그림자, 신화 , 나이 든 사람, 가족의 초상….’ 


버트 도드슨의 책 <크리에이티브 드로잉>, <드로잉 수업>을 보면 다양한 테마와 함께 재미있는 예시들이 많다. 책에 나온 주제를 참고해보는 것은 좋지만 똑같이 그리려고 한다거나 잘 그린 그림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에 그림이 너무 서툴러서 이런 책을 보면 부러워서 똑같이 그리려고 모사를 시도했던 적이 있다.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휘트니 셔먼의 <플레잉 위드 스케치>,  샘 피 야세나 & 비버리 필립의 <저스트 페인트 잇!> 같은 책을 보면 완벽하게 그린 그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 주변에 있는 평범한 소재로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잘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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